- 결혼 이야기.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절대 묘사할 수 없는 디테일과 맛깔난 연출로 가득 차 있네요. 제목이 왜 이혼 이야기가 아니고 결혼 이야기인지도 알 것 같았고요.

스칼렛 요한슨의 짧은 머리칼이 산뜻하고 참 좋았어요. 아담 드라이버는 <패터슨>에서 처음 봤을 땐 잘 모르겠더니 자꾸 볼수록 매력이 있군요. 패터슨의 도시락통이 맘에 들어서 사려고 찾아보기도 했었는데.. 부부가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에서, 특히 찰리가 네가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어!!!’하고 엉엉 우는 대목에서 한참 소리 내서 웃었는데, 웃음 끝에 결국은 눈물이 나더라고요.. 정말 현실적이고도 웃픈장면이었어요.

 

결혼도 이혼도 안 해본 입장이지만, 관계 속에서 살다 보면 주제넘게도 이혼을 왜 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좋으면서도 밉고, 쉽게 끊어낼 수 없이 매일 보면서 살아야 하기에 가끔 서로의 밑바닥까지 봐야 하는 관계, 애인과 헤어질 때도 서로 별 꼴을 다 보는 경우가 많은데 부부에 아이까지 있으면 그 몇 배는 더 할 거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혈연관계 속에서도 그 지긋지긋함을 때로 느끼며 살잖아요. 묘하게 멋대로 하는 쪽과 맞춰주고 져주는 쪽이 종종 설정되게 마련이고.. 사회활동 면에서 주로 아내 쪽이 접어야 하는 건 여전하구나 싶기도 하고요. 윤여정 씨가 어떤 tv프로에서 이혼 얘기를 하면서 장렬하게 끝이 났다고 표현하던 게 생각이 났어요.

 

남들처럼 변호사 끼고 지지고 볶지 말고 우리는 대화로 쿨하게 하자, 말이 쉽지요.. 찰리의 첫 번째 변호사는 찰리에게 인간적인 조언을 건넸지만, 사실 들을 준비와 때가 안 된 사람에게는 어떤 좋은 말도 그저 훈계에 불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저 업무적인 관계에서는 돈 확실하게 받고 원하는 일 야무지게 해주는 게 가장 뒤끝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그 변호사가 LA에 집을 구해 두라고 했던 건 불리하게 되어 돌아왔고.. 니콜의 변호사는 내내 깍쟁이처럼 보였는데, 엄마 역할을 마리아에 빗대어 열변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공감이 되는 한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이혼의 원인은 거의 찰리 쪽에 있어 보였기에 마지막 무렵의 찰리와 니콜의 모습은 꽤 통쾌했어요. 그 폭풍이 지나가고 이제 서로 배려하며 아이를 키우는 모습도, 마지막을 인상적인 가사의 노래로 마무리 하는 것도 좋았고요. 너무 잘하는 것보다 찰리처럼 그렇게 말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노래할 수 있는 건 늘 부러워하는 재능입니다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프랑스 감성이 충만한 느낌이었어요. 손의 모험은 흥미진진했습니다. 손이 자아를 가지게 되는 설정은 기생수의 미기(오른손이)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여기 나오는 손은 너무 현실적인 잘린 손 모양 그대로 막 돌아다니는 게 뭔가 프랑스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ㅋㅋ  보다보면 귀엽기도 하고.. 별 이유 없이 자꾸 쫓겨 다니는 처지이니 안됐기도 하고요. 손의 활약이 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하는 재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재미 담당이자 주인공을 응시하는 시선 담당인 것 같아요.


주인공 나우펠은 아무래도 배달 같은 일 보다는 손을 사용하는 일에 적성이 있어 보였어요. 여러모로 찌질스럽긴 한데, 불행한 일을 겪고 되는 일이 없는 입장이다 보니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 피아노를 잘 치는 듯하며, 어쩌다 하게 된 일이지만 목수 일이 손재주가 있어서 꽤 맞아 보였어요.

안 그래도 처지가 별로인데 유일하게 재능을 가진 손마저 사고를 당한 건, 마치 반지하가 끝인 줄 알았는데 완전 지하로 이사 가는 기택이의 상황 같았어요. 잃을 게 없어 보였는데 아직 남아 있었다니.. 그러나 의식하지 못했지만 가장 소중했던 것마저 잃게 된 그때, 무모한 도전이 작은 성공으로 이어져요. 아마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죽어버리려고 했던 거 아닌가 싶은데, 성공했으니 이제 나우펠은 열심히 살아가겠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손.. 험난한 모험 끝에 찾아와 잠든 나우펠 옆에 가만히 눕는 손이 참 짠했어요.



kbs 씨름의 희열 3.. 존잼.ㅠㅠ 또 혼자 박수를 치면서 봤어요. 체급 간 대항전이라 일방적인 경기가 될까봐 걱정했건만, 아니 웬걸? 박빙의 명승부가 속출했어요! 비디오 판독이 여러 번 나올 만큼 아슬아슬한 승부의 연속이었고, 지는 쪽도 결코 쉽게 지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낮은 체급은 지능적으로 임해야 하고 높은 체급은 이겨야 본전인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서로 신중하게 임하다 보니 재밌는 경기들이 나온 것 같아요. 낮은 체급인 태백급이 지명권을 가져서 초반에 금강급의 대학생과 신인 위주로 지명한 전략도 잘 먹힌 것 같고요. 심지어 모래와 머리카락까지 재미있더라는.. 두 선수 팔이 동시에 떨어졌는데 한 쪽은 운 좋게 푹 파인 웅덩이에, 한 쪽은 볼록한 모래에 먼저 닿는 바람에 승부가 결정.. 동시에 떨어졌는데 머리카락이 먼저 땅에 닿아서 승부 결정ㅠㅠㅋㅋ

덩치 차이가 확연한데도 작은 쪽이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이겨내는 묘미, 모래판과 거의 평행이 된 자세에서도 넘어가지 않는 힘과 유연성.. 정말 감탄스러웠어요. 다음 예고편에서는 거의 림보 자세에서도 뒤집을 듯한 장면이 나오던데, 거기서 화면을 끊는 방송국 넘들아.ㅋㅋ 다음 회도 허니잼 예약이로군요. 이거 오랜만에 kbs가 수신료 값 한다 싶고 재미난데, 생각보다 인지도는 아직 높지 않은 듯.. 12회 짜리인데 마지막 회 챔피언 결정전은 생방송이래요. 유종의 미를 꼭 거두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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