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다들 아시겠지만 1994년 영화 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찍은 인디 단편이고 런닝 타임은 30분 정도.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세 명의 한국 권력자(?)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삼은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씩 전개된 후 에필로그가 붙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1.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학 교수입니다. 사회 심리학 교수라는데 뭐 암튼 겉으론 근엄하지만 사실은 욕정에 불타는 사람이죠. 교정에서 앞서 걸어가는 여학생의 살짝 어깨가 노출된 의상을 보고 쫓아가서 어깨를 확 내려버리는 망상에 잠긴다든가... 교수실에서 남 몰래 불법 수입 야한 잡지를 정독한다든가...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수업을 듣던 여학생에게 야한 잡지를 들킬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슬랩스틱 코미디가 펼쳐지죠.


 2.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부자 동네에 사는 어떤 할아버지인데... 아침에 조깅을 하면서 남의 집 대문 앞에 놓여진 배달 우유를 훔쳐 먹는 게 삶의 낙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괜히 신문 돌리던 동네 청년에게 훔친 우유 하나를 권했다가, 그 청년이 집주인에게 도둑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동네 골목길을 배경으로 한 톰과 제리 식의 추격전이 펼쳐집니다.


 3.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떤 중년 아저씨인데 뭔가 권력 같은 게 있는 사람인가봐요. 이 양반이 누군가에게서 거하게 술을 얻어 먹고 깊은 밤에 집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격한 배설 욕구 때문에 거리를 방황하고 아무 아파트 단지에나 들어가서 똥을 싸려다가 경비에게 걸리게 되는데...


 4. 에필로그 얘긴 안 하는 게 좋겠네요. 나름 스포일러라서요.



 - 전체적으로 그냥 소소한 재미를 주는 풍자극입니다. 요즘 '기생충' 열풍 때문에 봉준호가 대학생 시절에 그렸던 만평, 네 컷 만화들이 발굴되어 돌아다니던데 딱 그 정도 센스를 예상하면서 딱 그 정도만 기대하시면 되겠습니다. 

 아주 무엄한(!) 얘기지만 사실 2020년에 보기에 딱히 되게 재밌거나 되게 훌륭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전반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들에 비해 전개가 조금 느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물론 1994년에 극장에 걸리던 한국 영화들 퀄리티가 어땠는가도 감안해야 하고 이게 '졸업 작품'이라는 것도 감안하고 해야겠지만 어쨌거나 '오오 클라쓰!!!' 같은 느낌으로 여건과 시대를 초월한 명작 수준은 아니라고 느꼈다는 얘기입니다. ㅋㅋㅋ



 - 그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아, 이 때부터 이런 거 좋아했구나 ㅋㅋ' 라는 봉준호 스타일에 대한 때늦은 발견 같은 재미겠죠.

 이 때부터 이미 어두침침한 지하에 사는 사람 이야기를 좋아했었더라구요. 생각해보니 장편 상업 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 변희봉 할배도 그런 곳에 살고 있었죠.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김뢰하라는 것도 그냥 쓸 데 없이 반갑고. '조선일보 사절' 같은 드립을 보면 요즘 봉준호 칭찬하는 보수 진영 사람들 참 기분 안 좋겠다... 싶어서 웃기기도 하구요. ㅋ



 - 마지막으로,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제게 많이 정들고 익숙한 곳의 풍경이 한 십여초 정도 비춰져서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그곳이 사라졌거든요. 쌩뚱맞은 소감이죠. 네(...)



 - 암튼 그러합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시간 날 때 한 번 보세요. 이 시국(...)이 아니면 언제 또 챙겨보겠습니까.



 - 마지막에 봉준호 본인이 잠깐 출연합니다만. 얼굴을 열심히 가리면서 몇 초만 나오기 때문에 못 알아봤어요. 엔드 크레딧에서 이름을 보고 다시 돌려봤지만 여전히 얼굴은 거의 안 보이더군요. 수줍은 양반 같으니. ㅋㅋ



 - 아. 저는 올레티비 vod로 봤습니다. 근데 비율이 티비에 꽉차도록 억지로 펼쳐진 와이드 화면이라 티비 설정을 바꿔서 봤네요. 올레 티비 옛날 영화들이 대부분 이렇습니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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