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작이니 딱 10년 됐습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40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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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터 센스 있게 잘 만들었네요.)



 - 불법 도박의 현장입니다만. 영화 예산 사정인지 뭐 본격적인 '하우스' 같은 건 안 나옵니다. 그냥 마굿간(?) 운영하는 아저씨, 그 조카, '최여사'라는 아줌마 한 분과 대학 교수라는 아저씨 하나. 이렇게 넷이 멤버인데. 교수 아저씨가 어느 날 그 조카놈에게 제안을 합니다. 야 너 사채 써서 힘들다며? 니 삼촌이 너한테 해 주는 게 뭐 있니. 내가 사기용 화투 한 벌 갖고 있는데 기리가 중요하거든. 니가 판에 끼어서 딱 기리만 도와주면 내가 딴 돈 절반은 너 줄게.


 근데 이 교수 아저씨 뭔가 이상합니다. 분명히 사기용, 그러니까 그대로 사용하면 그 판의 사람들이 받을 카드와 바닥에 깔릴 카드, 넘겨서 나올 카드들까지 다 셋팅되어서 결과 조작이 가능한 화투를 쓰는데도 자꾸 돈을 잃어요.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의 주인공, 그러니까 그 '조카'님은 참 괴상한 기분이지만 어쨌든 돈은 받으니 그러려니 합니다만. 어느 날 그 교수 아저씨가 깜빡하고 두고 간 수첩을 펼쳐 본 주인공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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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불법 도박의 현장... 입니다만. 오가는 돈이 저희 같은(?) 서민들 기준으로는 적지 않습니다.)



 - 듀나님께서 10년 전에 남기신 리뷰의 도입부와 똑같은 이야길 해야겠네요.

 제목만 봐선 이게 화투 룰과 연결된 퍼즐 미스테리풍 살인, 추리극일 것 같잖아요? 근데 아닙니다. 전혀 달라요. 이건 그러니까 화투를 활용한 데스 노트 같은 이야깁니다. ㅋㅋㅋ 여기서 핵심은 최여사님인데요. 이 분에겐 자신도 모르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거죠. 이 분이 화투판에서 '났을' 때, 이 분이 먹은 화투 카드들을 각자가 대표하는 숫자들로 치환해서 나온 숫자 배열과 일치하는 대한민국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사람이 죽어요. 으하하. 그런데 이 사실을 눈치 챈 건 교수 한 명 뿐이고, (대체 어떻게??) 그래서 이 교수님은 그걸 갖고 실험(...)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제 그 사실을 주인공도 알게 되었고. 주인공에겐 본인 사정으로 인해 좀 신속하게 세상을 떠나줬음 하는 사람이 몇 있습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이야기가 흐르며 스릴러 분위기를 조성하겠죠. 환타지 범죄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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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 분 참 한국 인디 영화 나오게 생기셨다... 는 느낌의 주연배우 이승준님.)



 -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합니다. 영 이상해요. ㅋㅋ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음악이 거의 한 가지 음악만 반복되는데, 그게 무슨 일일극에서 온가족이 미소 지으며 소풍 가는 장면에나 나올 법한 가볍고 귀엽고 소소하게 해피해피한 음악이에요. 배우들은 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해도 다들 무덤덤한 얼굴로 느릿느릿 차분하게 대사를 읊습니다. 장면 연출도 거의 일일극 느낌으로 하찮은 일상성 분위기를 유지하구요. 그러니까 스토리상으론 '스릴' 같은 게 있어도 장면 연출상으론 늘 평온하고 차분해요.


 거기에다가 유머가 매우 강합니다. 사실 클라이막스 즈음에 벌어지는 많이 부담스런 사건 하나가 있는데. 그 전까지는 범죄 같은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나오는 환타지 코미디에 가까워요. '무덤덤 일상적 분위기'도 그에 상응하는 전략인 거죠. 그리고 보다 보면 이게 꽤 현명한 작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말하지만 이게 워낙 극저예산 영화라 잔재주를 부리기에 어려움이 있는데, 그걸 그냥 돈 안 드는 무덤덤 일상으로 도배하면서 거기에서 유머 코드를 끌어냅니다. 


 그러니까 화투 득점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괴상하면서 다크한 아이디어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관계도 어두컴컴하기 그지 없는데, 정작 영화의 분위기는 순박하게 일상적인 코믹 드라마에요. 그리고 아마도 이게 다른 대단한 의도가 있어서라기 보단 그냥 제작 여건의 제약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린 느낌이고. 이렇게 내용과 표현의 부조화가 시작부터 끝까지 가면서 살짝 괴상한 재미를 자아내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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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쌍한 우리 능력자 최여사님. 자기도 모르게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겠지만 암튼 불쌍합니다. ㅋㅋㅋ)



 - 일단 장점부터 말하자면, 아이디어가 참신하잖아요? 화투장 득점 조합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도 황당한데, 능력 보유자 본인은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모른다는 것도 재밌는 설정이구요. 비밀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어떻게든 우리 최여사님의 득점을 조작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애쓴다는 설정도 유머나 스릴을 뽑아내기 좋습니다. 여기에다가 주인공에게 '인생 쓰레기처럼 대충 살다가 방금 막 정신 차려보려는 젊은이'라는 서사를 부여해서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 것도 좋았구요. 덕택에 막판의 심각 진지 파트에서도 꽤 집중을 하게 되더라구요. 

 개그 센스도 나쁘지 않아요. 되게 참신할 건 없어도, 폭소 만발까지는 못 가더라도 그냥 소소하게 많이 웃겨줍니다. 내내 뚱한 표정으로 연기하는 배우들도 영화 톤에 맞게 내내 잘 해주고요. 대체로 무난무난하게 쭉 재밌는 영화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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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코패스 매드 사이언티스트 박사님. 걍 내내 무덤덤 뚱한데, 그게 의도적으로 쓰여서 웃음을 자아낼 때도 있고, 그냥 어색할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 단점은 뭐, 이런 '강력한 한 방 아이디어'류 영화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마무리와 수습에 문제가 좀 많습니다. 

 이게 애초에 멀쩡한 이야기로 만들어지기 힘든 아이디어잖아요. 일단 주인공들은 최여사님이 생성해낸 주민등록번호의 주인들을 대체 어떻게 찾아냈을까요. 아니 애초에 박사님은 이걸 어떻게 눈치를 챈 겁니까? ㅋㅋ 시작부터 개연성에 심각한 문제들이 많지만 걍 대충 덮고 이해해달라는 식의 이야기구요.

 그걸 다 대충 납득하고 넘겨주더라도 막판 전개는 정말 그냥 대충이에요. 기존 룰에 심화 버전 룰을 하나 추가하는 아이디어는 괜찮았는데, 그게 매끄럽게 결말로 연결되지 않고 그냥 '작가 맘대로' 풀려 버리다가 대충 끝나 버리더라구요. 많이 아까웠습니다. 그래도 그 전까진 많이 덜컹거리나마 재미가 있으니 납득해줄 수 있었는데 그게 다 결말에서 김이 빠져 버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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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의 개인사는 딱 적당한 수준으로 잘 활용된 느낌이구요. 되게 설득력 있진 않지만, 이야기를 불필요하게 잡아 먹지도 않습니다.)



 - 대충 마무리하자면 뭐,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하는 매우 많이 저예산 장르물입니다.

 아이디어가 좋고 그걸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도 나쁘지 않아서 런닝타임의 2/3 정도까진 잘 버팁니다만, 끝까지 잘 해내기엔 뒷심이 많이 부족했네요.

 그래서 적극 추천까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장르적 아이디어로 이만큼의 재미를 뽑아내는 한국 인디 영화가 흔치는 않아서요.

 걍 기본 아이디어가 웃기거나 재미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한 번 보세요. 결말의 아쉬움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본다면 나름 즐겁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전 이래저래 아쉽지만 그래도 좋게 봤어요.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하필 주인공이 자신과 자기 아들을 위협하는 사채업자를 죽이기로 결심한 그 순간, 우리 최여사님이 자꾸 돌발 행동을 해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대체 이 아줌마가 왜 이러나... 했더니 이 분이 주인공에게 연심을 품으셔서 승부를 주저하게 되신 것. ㅠㅜ 심지어 이제 더 이상 화투를 안 치겠다고까지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은 최여사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가짜로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하며 데이트까지 하시구요.


 그리고 주인공은 박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뒤늦게 자신의 행동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이게 결국 살인 아닙니까. 직접 죽이진 않지만 결과적으론 자기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거죠. 그런데 우리 박사님은 거기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 없는 사이코패스놈이고. 그래서 우리 주인공은 착하게도 박사님과 결별을 선언합니다. 다만 사채업자놈은 어떻게 해야 하겠기에 박사님 수첩의 일부를 빼앗아서 이미 최여사님이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들 중에 죽을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사람('다방 레지'입니다)을 찾아내구요. 그 사람이 죽을 예정 시각에 사채업자에게 커피 배달을 보내요. 이 고스톱 데스노트의 좋은 점이 '어떻게든 최대한 자연스런 방식으로 죽는다'여서 그 다방 레지는 사채업자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실족사하고. 사채업자는 체포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직전에, 우리 박사님은 무시무시하게도 주인공의 아들을 살해해 버렸어요.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러지? 했는데. 이 박사님에겐 아직 실험해보고픈 게 남아 있었고, 그걸 해 보려면 최여사에게 화투를 더 시켜야 하는데 최여사를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주인공 뿐이었기 때문이죠. 

 주인공은 완전히 빡쳐서 쇠파이프로 박사 머리통을 후려 갈깁니다만, 이후에 이어지는 박사의 설명을 듣고 낚여 버려요.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최여사의 싱기방기한 능력은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죽을 시각을 정할 수도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의 원흉이 된 인간을 지정해서 과거에,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에 죽게 만들어 보지 않겠나?'라는 제안을 합니다. 뭐 이제 선택지가 없는 주인공은 당연히 하자는대로 하구요. 그랬더니...


 그게 정말로 먹혀서 모든 등장인물들의 현재가 뒤바뀌어 버립니다. 최여사님은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삼촌과 눈이 맞아서 해피하게 이민 떠나구요. 주인공의 아들이 살아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덩달아 최근에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애 엄마까지 살아나요. 그래서 주인공은 이제 개과천선하고 애인과 자기 아들과 함께 오붓하게 살아가는 새 삶에 도전하게 되구요. 우리 매드사이언티스트님께선 세상엔 최여사 말고도 이런 능력자들이 많을 거라며 새로운 능력자를 찾기 위해 동네 정자에서 할배들이 벌이는 화투판에 끼어들어 신명나게 패를 돌립니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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