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존 윅 4] 보고 왔습니다

2023.04.28 17:32

Sonny 조회 수: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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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4]를 과연 한 작품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액션 영화 한편이 클리셰적인 연출과 액션 코리어그래피의 틀을 깨부수며 나타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존 윅] 1편이 누린 인기도 다소 컬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 후속편을 연달아내며 다시 한번 작품의 최고점을 갱신하는 현상은 거의 없었다. 톰 크루즈가 주연과 제작을 맡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빼고는 한 시리즈물이 고른 완성도를 자랑하거나 계속 평점을 끌어올리는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최초의 성공을 자산으로 동어반복과 규모의 팽창만을 거듭하며 시리즈 말미에 자멸하는 작품들은 얼마나 많았나. [존 윅 4]는 영화산업에서 눈여겨볼만한 현상이다. 이번 최신편의 지독하고 광적인 액션들은 분명히 [존 윅 3: 파라벨룸]의 실패를 쇄신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존 윅 3: 파라벨룸]의 가장 큰 단점은 키아누 리브스가 맨몸 액션을 매우 못한다는 것이었다. 원래도 존 윅 시리즈는 적들이 주인공인 키아누 리브스의 알 수 없는 자력에 이끌려 그의 액션에 죽어주는 그런 기묘한 액션 영화였다. 그럼에도 존 윅이 적들을 처단하는 액션씬들은 건푸, 혹은 건짓수라고 불리는 근접총격 액션 때문에 그 합리성을 충분히 무시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제작진들은 존 윅이라는 캐릭터의 위상으로 키아누 리브스의 액션구멍들을 다 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3편은 총을 배제하고 맨몸으로 적들을 상대하는 액션씬들이 많았는데 이 경우 키아누 리브스의 굼뜬 움직임과 액션이 "마뜨는" 중간중간의 공백들이 매우 거슬렸다. 키아누 리브스는 본래 전문 액션배우로서의 속도와 파괴력이 대단하지 않았고 그동안 이를 잘 메꿔오던 시리즈는 3편에서 이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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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 4]는 3편에 쏟아진 비판을 전부 다 인정하고 절치부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일단 견자단을 새로운 적으로 기용하면서 키아누 리브스에게 없는 날렵한 맨몸 액션을 영화 속에 채워넣었다. 키아누 리브스에게 굳이 안되는 육탄전을 시키는 대신 다른 캐릭터로 그 부분을 벌충하면 된다는 의도는 대단히 성공적이다. 견자단이 칼을 휘두르고 적들을 두들겨패는 장면에서 엽문 시리즈를 성공시킨 이 배우 특유의 빠른 펀치와 몸놀림이 도드라진다. 어떤 면에서 [존 윅 4]의 최고 공신은 견자단이라고 평할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이 시리즈에 유례없던 속도감을 불어넣었다. 관객은 한층 다양해진 액션을 감상하면서 최강의 적을 맞닥트리는 긴장감도 느낄 수 있었다. 중간보스 격으로 존 윅의 상대로 거구의 러시안 마피아를 붙여놓는 것만 봐도 3편에서 [레이드] 시리즈의 두 주연배우를 따라가지 못해 쩔쩔매던 키아누 리브스의 단점을 가려주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견자단이 속도를 보충해주면서 영화의 테마도 보다 뚜렷해졌다. 이 시리즈의 본령은 끝도 없는 다수의 적을 존 윅 혼자서 물리친다는 일 대 다수의 구도였다. 여기서 이번 작품은 존 윅의 액션에 피로의 감각을 더 추가했다. 영화는 존 윅과 적 모두의 방탄기능을 더 강화시키면서 한 방의 총격으로 적을 쓰러트릴 수 없게 만들었다. 적들은 모두 특수 방탄복 혹은 방탄 정장을 입고 존 윅에게 달려든다. 존 윅은 가까이에서 총격을 막아내면서 적을 육탄전으로 제압하고 목이나 머리 부분을 노려서 사격해야 적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방탄 정장을 입고 있기 때문에 총알이 굳이 존 윅을 피해나가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이번 작품에서 존 윅이 옷 위로 계속 총탄을 맞으면서 적을 때려눕힌 다음에 최후의 일격으로 총을 쏴서 죽이는 액션이 강제된다.

이 작품을 보면서 피곤해진다면 그건 단순히 런닝타임의 문제가 아니다. 존 윅이 매 액션씬마다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적을 쓰러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졸개 하나를 해치우는데 몇번이나 총을 쏴야하고 존이 적들과 계속 엎치락뒤치락거리며 신체적인 에너지를 써야한다. 특이하게도 액션작품의 후속작으로서 [존 윅 4]는 파괴력이나 속도나 규모를 추가한 게 아니라 액션의 노곤함을 추가했다. 말 그대로 [존 윅 4]에서 존 윅은 총알로 패고 총알로 두들겨맞는다. 이번 작품은 총격적으로 사람을 구타한다는 새로운 액션을 발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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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하게도 [존 윅 4]는 이 까다로운 승리공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 적을 쓰러트리는 난이도가 하드모드로 올라갔다는 것을 보여준 다음존 윅에게 보다 큰 리스크를 쥐어주면서 한방에 해치울 수 있는 구도를 내놓는다. 존 윅의 방탄정장을 무효화시키는 폭발형 산탄총을 적들이 보여준다. 관객은 당연히 존 윅을 걱정한다. 그러나 존 윅은 주인공답게 그 총을 빼앗아서 적들을 해치우는데 사용한다. 영화는 존 윅이 고생하는 것을 보여준 다음 존 윅이 적들을 호쾌하게 쓸어버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특히나 이 산탄총 액션씬은 아예 천장을 다 뜯어낸 세트에서 부감으로 촬영하며 "한방"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했다. 천장이 탁 트인 공간에서 존 윅의 활약을 보는 관객은 게임 플레이어의 전지적 만능감을 느낄 수 있다.

이어지는 파리 시퀀스에서 영화는 역대 최고의 피로감을 선사한다. 결투장소인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올라가는 계단 시퀀스에서 존 윅이 맞닥트리는 적의 수와 지형적인 불리함은 보는 사람이 항복하고 싶을 정도다. 특히나 거의 다 올라갔다고 생각했을 때, 후작의 경호원 대장이 존 윅을 아래로 밀어버리는 장면에서는 탄식을 참지 못할 정도다. 몇바퀴나 굴러서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존 윅의 모습은 시지프스의 형벌을 연상케 한다. 어떤 액션 영화들은 액션의 물량공세를 끝없이 펼치면서 도파민을 끌어올리려 하지만 그 시도는 대개 실패한다. 인간은 자극에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존 윅 4]는 오히려 계속되는 액션씬들과 해결되지 않는 과업들로 보는 사람이 주인공의 피로에 이입하게 만든다. 존 윅의 액션씬들에는 다른 액션 영화에 없는 고되고 지난한 감각이 있다.

[존 윅 4]는 매우 이상한 영화다. 영화 전체는 비인간적이다. 주인공은 끝도 없는 살육을 자행하고 영화는 이것을 오락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중간중간 개를 지키려는 마음이나 액션 자체가 업고 가는 피로를 통해서 인간적인 면을 확보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게임을 영화적 세계로 구현한 가운데 인간이 치고 때리고 쫓고 쫓기는 인간적 부분들이 계속 들어온다. 어쩌면 영화와 게임이라는 장르의 혼합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낸 작품일지도 모른다. 액션 혹은 게임이라는 장르를 하나만 좋아하더라도 [존 윅 4]의 이 기묘한 성취에 홀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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