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예법)

2017.10.23 03:47

여은성 조회 수:839


 1.언젠가 신해철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어요. 룸살롱에 갔는데 밴드가 들어오자 신해철이 가서 인사하며 "선배님 우리가 오늘 힘들게 일을 끝내서요. 혹시 실례되더라도 좀 봐주세요."라고 말했다는 일화요. 신해철은 저기서 반주를 연주하는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했대요. 그리고 같이 있던 사람들은 신해철의 인간됨을 칭송했다고 하고요.


 잘 모르지만 그야 신해철은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죠. 좋은 의도로 그랬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나는 서비스업의 사람에게 깎듯이 대하는 걸 절대 좋다고 여기지 않아요. 왜냐면, 반대의 입장이라면 기분이 매우 엿같을 것 같거든요.



 2.위에 쓴 유흥업소가 아니어도 룸으로 된 술집에서는 밴드나 적당한 반주자를 부를 수 있어요. 물론 밴드를 부르는 것 따윈 싫어해요. 나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고 남자를 싫어하니까요. 그러니까 룸에서 밴드를 부르는 걸 할 리가 없죠. 


 하지만 같이 술을 마시는 직원들은 밴드를 부르고 싶어한단 말이죠. 그들은 아마도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병에 걸린 것 같아요. 술을 마시면 잘 부르든 못 부르든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몸을 배배 꼬곤 해요.


 뭐 간단해요. 밴드를 부르는 건 절대로 싫은 일이나 절대로 안할 일까지는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밴드를 부르고 안 부르고는 그녀들의 설득력에 달린 거예요. 그것이 애교이든 투정이든 읍소이든...어떤 방법으로든요. 내가 밴드를 부르기 싫어하는 마음 이상으로 날 설득할 수 있으면, 그녀들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죠.



 3.그렇게 반주를 하는 사람을 불러오면 내게 인사하는 그들의 표정...그들의 주름...하나같이 포마드에 적셔진 듯한 공통된 머리스타일...뭐 그런 것들을 보게 돼요. 그리고 이런 입장이라면 어떨까...하고 상상해 보기도 하고요. 


 그러면 나의 결론은 뭐 그래요. 나와 그들은 완전 다른 사람이라는 거죠. 여기서 내가 좋은 사람 노릇을 해보겠답시고 괜히 깎듯하게 굴거나 친근하게 구는 건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이예요. 그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요.


 내가 좀 비뚤어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만약 내가 그 입장이라면 웬 녀석이 이곳에 놀러온 녀석 답지 않게 젠체하는 꼴이야말로 제일 짜증날 것 같거든요. 그야 그들에게 무례하게 하거나 건방지게 굴거나 이상한 짓-위스키를 맥주잔으로 원샷해 보라거나 우스꽝스러운 걸 해보라고 한다거나-을 시키지는 않아요. 다만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아요. 직원들이 노래를 몇 곡 부르고 나면 그냥 밴드를 내보내요. 똑같은 페이를 최소한의 노동으로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그게 그들을 위한 최고의 배려라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 중에서는.


 때로는 7~8분만에 내보낼 때도 있어요. 그러면 그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아닌가...자신의 어떤 행동이 나의 무언가를 건드린 게 아닌가...라고 걱정하는 것 같아요. 그야 이건 내 기분을 걱정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돈을 안줄까봐 걱정하는 거겠지만요.



 4.휴.



 5.어떤 사람들은 부자가 겸손하게 구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들 말해요.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부자가 겸손하기란 쉬운 일이다. 정말 어려운 일은 가난한 자가 의연하게 구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부자가 겸손하게 구는 건 전혀 안어려워요. 정말 어려운 일은 을의 입장에서 의연하게 행동하는 거예요. 아니 정말로, 겸손한 부자 행세를 하는 건 존나게 쉬운 일이니까요. 그야 그 존나 쉬운 일도 안 하는 놈들이 많지만 말 그대로 안할 뿐이죠. 그놈들도 그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어요.



 6.뭐 그래요. 여유가 넘치는 입장에서는 뭐든 할 수 있거든요. 좋은 사람 행세도, 저자세로 나오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거예요. 이해해주는 척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요. 그러나 그딴 것들은 쇼맨쉽일 뿐이예요. 여유가 남아돌아서 해대는 쇼맨쉽이요. 그리고 그런 튀는 쇼맨쉽은 상대를 당황스럽게, 고깝게 만들 뿐이고요.


 그러니까 굳이 예법이라는 걸 내게 정의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완벽한 무관심'이예요. 이 세상엔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페미니스트도, 성소수자도, pc함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죠. 그들이 아닌 사람들이 그들에게 공감하거나 지지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글쎄요...내게는 패션처럼 보여요. 


 아주 쉬운 방법으로 좋은 사람인 척 해보려는 패션 말이죠.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좋은 사람이 되는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면 되잖아요? 그들에게 기부금을 왕창 많이 보내는 거요.


 

 7.뭐 내가 엄청 꼬인 녀석이라서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봐온 바에 의하면 그렇거든요. 어줍잖은 관심이나 공감은 정말 쓰레기같은 거라는 거요. 


 사람은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감히 알려고 하는 것, 감히 신경써주려는 것, 감히 의견을 내려는 것, 감히 동정하는 것...이 모든 게 무례한 짓거리일 뿐이라고 여기게 됐어요. 


 사람들은 그래요.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물론 그들을 지지하고 공감해.'라고 하거나 '존나 싫어. 그런 새끼들은 근처에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하겠죠. 하지만 저런 대답을 하는 녀석들의 공통점은 그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거예요. 현실 세계에 있는 그들이 아닌,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그들에 대한 대답을 하는 거니까요. 내가 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시선도 보내지 않는 것이 나름대로의 선이예요.


 왜 사람들은 자꾸만 게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트랜스젠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질문이 리트머스시험지라도 되는걸까요? 나는 그들을 알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지구에 사는 99.999%의 쓸데없는 사람들을 알고 싶어하지 않듯이, 그들에 대해서도 전혀 알고 싶지가 않아요.



 8.그러고보니 어떤 녀석들은 매우 가소롭게도 매춘부들의 처지를 대신 생각해 주려고도 해요. 하지만 현실은, 매춘부들은 같은 나이의 삼성 직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고 누군가에게 자신이 피상적으로 생각되어지는 걸 끔찍히 싫어한다는 거죠. 극도로 멍청한 몇몇 사람들만 빼면 우리 모두가 각자 선택할 수 있는 인생 중 그나마 가장 나은 인생을 골라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어요. 


 어떻게든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싸구려 우월감을 취하려고 하는 놈들이야말로 진짜로 나쁜 악당놈들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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