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연기자들)

2017.08.05 18:47

여은성 조회 수:848


 1.작년 어느날 오랜만에 남자 사장이 있는 가게에 갔어요. 원래라면 남자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일 따윈 없지만 그래도 요즘은 어떤 직원들이 있나 호기심이 들어서 한번씩 가보곤 하죠.

 

 사장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긴 했지만 뭔가 말을 꺼내고 싶어서 고민하는 눈치였어요. 이 사장이 망설일 만한 이야기라면 가게 인수건밖에 없으니 이번엔 어떤 식으로 썰을 풀까 궁금해서 말을 꺼내길 기다려 봤어요.



 2.예상은 빗나갔어요. 사장은 테이블에 와서 뭔가 고민하는 듯 하다가 의외의 얘길 꺼냈어요.


 '사장님...사장님이라면 알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예요, 그 이희진이라는 놈 좀 알아? 그 놈 진짜야?'


 일단 나는 술집사장이 이희진의 존재를 안다는 점에서 놀랐어요. 이 사장은 금융 투자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어쨌든 당시의 시점에선 이희진이 아직 사기꾼이라는 게 들키긴 커녕 의심받지도 않던 상태였어요. 당시엔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죠. 그래서 대체 그 작자는 어떻게 아는 건지 물어봤어요. 그러자 사장은 뭔가 열받은 듯 씩씩거리기 시작했어요.


 '아오 그 섀끼 말이야...가로수길에 갈 때마다 외제차 타고 가오를 존나게 잡고 있다고. 사장님이라면 알 거 같아서 말이야...그놈 진짜예요? 아니예요?'


 세 가지가 궁금했어요. 왜 자꾸 나를 사장이라고 부르는지, 왜 내가 이희진에 대해 알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반말과 존대말을 섞어서 쓰는지요.



 3.어쨌든 사장의 씩씩거리는 태도를 보고 있으려니 말한 것 이상의 뭔가가 있겠다 싶었어요. 아마도 차를 타고 지나가던 이희진이 이 사장의 무언가를 건드렸거나 뭐 그랬겠죠. 이 사장은 가로수길 쪽에 자주 가고, 당시에 이희진은 리스한 차를 타고 가로수길을 빙빙 도는 걸 자주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나름대로의 의견을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기로 했어요.


 '사장님, 일단 눈을 좀 감아봐.'


 '응, 감았어.'


 '자, 사장님이 백억을 가졌다고 상상해봐.'


 이 말을 하자 사장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어요. 사장은 상상했다고 했어요. 나는 다시 눈을 떠보라고 했고 사장은 눈을 떴어요. 그리고 물어봤어요.


 '자 이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할 거야? 안할 거야?'


 '당연히 안 하지! 그럴 시간이 어딨어?'


 '답이 나왔네. 이제 술마실거니까 남자는 빠져줘.'


 사장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럼, 그놈 가짜인 거야?'라고 물었어요. 



 4.휴.



 5.그야 100%는 아니예요. 하지만 나는 그 시점에서 그 녀석이 99.9% 사기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아는 걸 말해줬어요.


 '이봐 사장님. 인간이란 생물은 30억만 생겨도 아랫것들과 놀지 않아. 그런데 그놈은 8천억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고. 정말 8천억을 가진 인간이라면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할 리가 없어. 8천억이면 이름난 회사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돈이라고.'


 사장은 8천억 소리는 처음 들은 건지 신음소리 비슷한 소리를 냈어요. '8천억이라고?'라고요. 그야 그 녀석은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세간에 떠도는 8천억 설을 오랫동안 부정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럼 스스로의 입으로 8천억이 있다고 떠드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니까요. 나는 사장에게,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이희진은 사기꾼이 틀림없으니 기뻐해도 좋다고 말했어요.



 6.매우 오래 전의 얘기예요. 갑자기 이 일화를 쓰는 건 요즘은 또 박철상이라는 자 때문에 인터넷이 시끄러워서요. 재미있는 가십거리예요. 애나벨2 개봉을 기다리느라 좀이 쑤시는 와중에 말이죠.


 꼭 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고매한 소리를 하는 녀석을 믿지 않아요. 내가 성인군자라고 유일하게 믿는 사람인 문재인만 봐도 행동만 성인군자지 말은 현실적으로 하거든요. 말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의 도구로 쓰지 않고 자신을 포장하는 데 쓰려는 사람은 별로 믿을 수 없죠.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이질적이든, 말을 할 때는 일반적인 상식이나 의식의 지점에 맞추려는 노력은 해야 해요.


 물론 우리 모두는 연기자들이긴 해요. '어차피 뭘 연기하는 건 거짓말 치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쁜 연기자라는 건 확실히 있어요.



 7.그러고보니 모임에 나가면 초반에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해요. 예상보다 너무 싹싹한 사람이라 놀랐(또는 실망)다고요. 하지만 그렇잖아요? 모임에는 내 자의식이나 성질머리를 보여주러 나가는 게 아니니까요. '모임에 나갈 거라면' 그 모임의 부속품이 되어줘야 하죠. 자신이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척 연기라도 해야 해요. 오늘은 연기가 힘들다 싶으면 중간에 살짝 빠져주면 되고요.


 왕처럼 굴고 싶으면 돈을 받고 나를 상대해주는 사람들에게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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