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는 내게 좋은 것에 대한 내성은 빨리 생겨요. 맛있는 것도 좋은 장소도 예쁜 사람도 쉽게 질리죠. 하지만 내게 나쁜 것에 대한 내성은 잘 안 생겨요. 귀찮고 싫은 일들에 절대로 익숙해지거나...당연하게 여기게 될 수 없었어요. 


 사실 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얼마쯤씩은 두려워하고 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득시글거리잖아요. 일어나기 싫은 시간에 일어나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루종일 한다...이걸 몇 달 몇 년씩이나 반복하는 걸 해내고 있는 어른들은 솔직이 무서워요.


 그까짓 자살은 하려면 할 수 있어요. 왜냐면 자살은 몇 초만 하기 싫은 일을 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진행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몇 년이나 해내면서도 주말엔 친구를 만나서 하하호호 웃고 맥주를 마시고 그럴 수 있다는 건 잘 이해가 안 돼요. 이해가 안 되는 건 무서운 일이고요. 


 

 2.대학교 학부 시절, 나는 남들의 눈에 띌 정도로 군대를 두려워했어요. 이건 점점 심해져서 식사를 하다가도 숟가락을 쥔 채로 몇 분간 멍하니 있거나 위닝일레븐을 하다가도 패드를 잡은 손을 멈추고 한숨을 쉬거나 그랬어요. 내가 이렇게 군대를 무서워하고 걱정하는 걸 알게 된 군필자들은 내게 조언하러 오곤 했어요.


 '은성아, 군대 별 거 아냐. 그냥 다녀오면 돼.'라거나 '난 즐겼어. 너도 군대를 즐기게 될 거야.'라거나 '군대? 군대는 사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마 병장을 달면 군대에서 나가기 싫어질 걸. 사회에 나갈 걱정에 잠도 안 와.'


 라고요. 놀랍게도 내용은 다들 비슷했어요. 마치 짜고 친 것처럼요. 하지만 나는 도저히 저런 말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곳이 별 거가 아니라니...이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내가 군대에 정말로 가게 되면 군대가 나의 남은 인생 전부를 파탄낼 거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나를 제법 잘 안다는 사람들이 왜 그걸 모를까...하고 슬펐어요. 아마도, 아무도 나를 진짜로는 잘 모르다보다...이곳의 그 누구도...라고 주억거리곤 했어요. 



 3.같은 사람이라도 10대, 20대, 30대를 거치며 눈에 띄게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걸 알 수 있어요. 어느날 10대 시절부터 알던 사람이 공무원 시험을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어쩌다 보니 나도 축하 파티에 가게 됐어요.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요. '축하'파티라니? 이게 무슨 소리지? 왜 축하해야 하는 거지? 뭘 축하해야 하는 거지? 같은 생각들이요.


 어쨌든 매우 오래간만에 그 사람을 봤어요. 10대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사람은 악수를 청해 왔어요. 사실, 처음 보는 30대의 남자가 악수를 청해 오는 건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 나는 그 사람이 악수를 하지 않던 시기를 알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악수를 하지 않던 사람이 어른답게 악수를 하게 됐다...는 걸 보니 왠지 이상했어요. 이 녀석은 사실은 내가 알던 그 녀석이 아닌 게 아닐까? 내가 알던 그 녀석은 사실 납치됐고 중간에 무언가로 바꿔치기당한 게 아닐까? 같은 생각이 마구 들었어요.


 하지만 악수를 했어요. 그리고...생각한 대로 말하지는 않았어요. '공무원이 됐다며? 네 인생은 앞으로도 계속 힘들겠네?'가 진짜 생각이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사실대로 말하면서 이 사람의 기분을 괜찮게 만들 말이 없을까...하다가 찾아냈어요.


 '공무원시험이 100대 1이라며? 100대 1! 대단하다! 완전 천재야! 뭘 해야 100대 1을 통과하는 거지?'


 라고 말했어요. 언젠가 네이버뉴스에서 100대 1이라고 본 것 같아서요. 그 사람은 축하해줘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분명히 말하는데 축하한다는 단어는 쓴 적 없어.'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요.



 4.휴.



 5.돌아오면서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녀석이 자살한 이유에 대해 가끔씩 생각해 보거든요. 그리고 나이를 먹을 때마다 다른 이유를 생각해내 보곤 해요. 아마 그 녀석은 자신이 다른 무언가로 변질되어 버리는 느낌을 느껴버린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자살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날...기벤라트가 처음으로 회식 자리에 가서 술에 취해 돌아오던 그날 자살하기를 그만뒀다면? 딱 한번만 참고 그냥 집에 돌아와 몸을 뉘였다면? 높은 확률로 숙련된 기술자가 되어서 늙어갔겠죠. 결혼도 했을 거예요. 다시 엠마와 만나서 결혼했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와 했을 수도 있고...어쨌든 하긴 했겠죠. 남편이 되고, 조금 있다가 아버지도 됐을 거예요. 더이상 자살할 마음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겠죠.


 하지만 기벤라트 녀석은 자신의 변질을 견딜 수가 없었던거죠. 신경 쇠약을 앓으면서는 삶을 견뎌내며 살아갈 수 있지만 직공이 된 자신은 견뎌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종류의 녀석이었던 거예요. 그걸 견딜 수 있는 녀석과 견뎌낼 수 없는 녀석의 차이는 뭘까...하고 생각해 봤어요. 아니 어쩌면, 다른 녀석들은 변질이라는 말을 안 쓸지도 모르죠. 이딴 걸 신경쓰며 사는 녀석은 기벤라트 같은 녀석들 뿐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내가 변질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어떻게든 피해나갈 수 있었지만 만약 기벤라트처럼 피할 수 없는 외통수에 처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녀석은 제대로 사회에 편입된 거예요. 아무래도 내가 '이 녀석 앞으로 힘들겠는걸.'이라고 멋대로 여기는 건 남들이 웃을 소리인 것 같긴 해요. 



 6.위에 썼듯이 나는 어른들을 무서워해요. 가끔은 듀게에 '나는 언터처블! 아무도 날 못 건드려! 나는 사람들을 빡치게 만드는 걸 좋아해. 재밌으니까.'라는 둥 헛소리를 쓰곤 했죠. 


 하지만 솔직이, 나는 어른들을 진짜로 화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무섭거든요.


 특히 군대를 갔다온 남자들은 정말 모르겠어요. 그들이 25살 먹은 아직 여드름 난 청년이든 양처럼 순해 보이는 작가지망생이든 상관없어요. 군대에서의 2년을 겪고도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웃고 떠들고 즐길 수 있다는 것...그걸 보고 있으면 정말 무섭거든요. 그건 군대가 그들을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이 단단하다는 뜻이잖아요? 내가 지금 나보다 단단한 남자들과 마주하고 있다...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기분이 묘해져요. 경계심도 생기고 보이지 않는 선도 긋게 되죠.



 7.이 글은 아까 들어와서 쓰다가 너무 졸려서 다시 일어나 이어서 쓰고 있어요. 오랜만에 책에 대해 글을 써서 그런지 꿈을 꿨어요. 책장에서 모모를 다시 발견하는 꿈이요. 모모 소설책을 잃어버려서 오랫동안 못 읽고 있었거든요. 나는 새로운 책을 읽는 것보다 몇 권의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걸 좋아해서요. 꿈 속에서 모모 책은 의외로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져 있었어요. 꿈에서 모모를 다시 찾아내서 매우 기뻐하다가...꿈이 딱 끊겼어요.


 그리고 수레바퀴 아래서도 잃어버린 상태예요. 언젠가는 다시 읽을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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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지난번엔 번개에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실패했어요. 6시까지 타임리미트를 걸었지만 6시 가까이까지 별 연락이 없어서 다른 약속을 잡았는데 10분 전쯤 쪽지가 와버려서요. 몇 시간 전에 시도하는 번개는 이제 좀 자제해야겠어요. 하루쯤은 텀을 두고 해봐야겠어요.


 내일 점심 번개나 애프터눈 티+샴페인 번개하고 싶어요. 점심 번개는 신도림쉐라톤, 애프터눈 티+샴페인은 잠실시그니엘. 아무래도 번개 주최자가 쏘는 게 코노 세카이노 룰이죠? 사실 나도 듀게에 번개가 안 올라오나 기다리고 있는데 영 올라오지 않아요. 듀게 번개가 열리면 얻어먹으러 달려가고 싶은데 말이예요. 


 새벽 3시까지 안 잡히면 다른 계획을 짜야 하니...이따 새벽 3시까지 쪽지 기다려 볼께요. 아 다시 생각해보니 점심 번개는 강남구청이 좋을지도...뭐 그때가서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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