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시대의 노루표

2019.01.08 16:06

흙파먹어요 조회 수:959

아침부터 모두들 함께 모여 힘차게 솟아 오르는 LG의 신상 티비 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과연 이것이 21세기로구나 감탄이 나오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저 크고 아름다운 것이 스르륵 고개 드는 모습을 보라지? 스크린을 1/4만 올린 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면, 귀신의 까꿍은 무섭지만 호러물은 보고 싶은, 변태적이고 수줍은 나의 손가락도 이제 더 이상 두 눈을 가릴 필요가 없어 편하겠어? 어떻게 생각해? 사다코 짱?

왠지 여닫이 문 안에 불상처럼 모셔져있던 외할머니의 로터리 티비도 생각나고 참으로 짧고도 굵은 삶을 살고 간 3D 티비와 곡면 스크린 티비의 운명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비록 신기하긴 했지만 별 쓸모는 없었어.

저는 결국 디스플레이의 미래는 공각기동대에서 그려진 것처럼 전뇌에 직접 연결하여 파일을 가상의 화면에 띄우는 것으로 발전할 거라고 보는데요. 신기하고 당장은 돈 안 되는 짓에 언제나 열심히인 엘론 머스크 형께서 군인들의 뇌에 칩을 심어, FPS 게임에서 그러하듯 병사가 전투 정보를 별도의 장치를 장착하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글라스 없는 구글 글라스? 여튼,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저는 문득, 버츄얼 리얼리티의 세상에서 포르노의 문법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홍홍홍홍 생각을 해봤더랍니다. 뭐 있나? 결국 포르노와 게임이지. 인터넷 처음 깔고 야후에 넣었던 첫 검색어가 섹스였다구. 나만 그랬나? 나만 쓰레기야?

vr 체험장이나, 골판지 구글의 세계에서 접하게 되는 영상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존의 영상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스펙타클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수평을 보여줬다면, vr 세계에선 수직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1950년대 미국의 영화업자들은 텔레비젼에 빼앗긴 관객들을 되찾아오기 위해 2.35:1 이라는 현실 세계에선 볼 수 없는 시야각의 세계를 짜잔 하고 보여줬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분명 두 눈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대략 1.7:1 정도의 비율로 세계를 보는데, 어떤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2.35:1 비율의 세계를 봤을 때 "우와! 진짜 같다!"라고 말들을 했단 말이지요?

VR 세계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영상을 봤을 때 "우와! 진짜 같다!"라고 입소문을 내도록 하기 위해 두 눈이 잡아내는 공간감보다 더 과장된 공간감을 만들어 낸다는 겁니다. 가령 VR 영상에서 나쁜 무사가 나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고 했을 때 다가온 칼날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깊게 들어오게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것에서 위협을 과장되게 느끼게 될 테니까요.

즉, 위에 쓴 것처럼 스크린 시대의 영상이 수평으로 스펙터클을 던져줬다면, VR 시대의 영상은 수직의 스펙터클로 승부를 볼 겁니다. 여기서 수직이란 깊이감. 깊이감을 느끼도록 하는데 수평은 큰 문제가 되질 않아요.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해결이 될 테니까. VR 영상에서의 스크린은 수평의 확장이 아니라, 수 많은 수직들의 연결이 되겠죠?

자 그럼, 이 수직감이 포르노에선 어떻게 쓰이게 될까요? 일본 AV의 감독들은 일찌감치 수평의 스펙터클을 버렸습니다. 스펙터클은 뭔 이야기가 있을 때 필요한 거에요. 지금 다 큰 성인 둘이서 다정히 모여 앉아 마주보고 만두를 빚고 있는데, 빚고 있는 만두 외에 무엇이 중요합니까? 애마 부인에서 애마가 면회소 유리에 입김을 불어댈 때 일동 집중한 것은 유리에 서리는 입김과 배우의 눈빛이었다는 거지요. 미쟝센? 개나 줘 버려 그딴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AV 감독들은 여전히 남여의 신체가 수평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스크린에 펼쳐지는 앵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직으로 촬영을 하면 아무리 만두에 집중을 하고 싶은들 일단 화면이 갑갑하고요. 연출을 조금만 무성의하게 하면 여배우의 나신이 남배우의 몸에 가려, 혹은 그 반대가 되어 의도치 않게 너무나도 건전하고 점잖은 70년대 핑크무비로 되돌아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스토리는 진작에 갖다 버려서 삶아 먹으래야 없는데

그러나, 이제는, 아니, VR 시대의 야동은 다릅니다. VR 시대의 문법은 얼마나 깊이감이 느껴지도록 연출하느냐를 두고 피터지는 경쟁을 할 것입니다. 깊이감이란 결국 두 배우의 합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카메라를 앞에 둔 한 배우의 모노드라마적 연기가 꽃을 피울 때 진정으로 이뤄지는 겁니다. 드디어 역사적인 여성상위의 압도적 승리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두둥!

그야말로 AV계에 불어닥친 느닷 없는 연기의 바람. 배우들은 거울을 앞에 두고 미묘한 표정연기를 위한 특훈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때는 8~90년대, 비록 탤런트라고 어디 영화판이나 무대에 가서는 개무시 당했지만,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하는 표정 연기로는 그 탤런트들을 따라올 자들이 없었다고. 강부자 씨 그 큰 얼굴이 4:3 화면에 이따시만하게 꽉 차니까.

혹 모르는 겁니다. 우리가 그들의 메소드 연기를 보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본래 섹시는 눈빛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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