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딱하면 한 페이지에 글 다섯개가 될 뻔 했는데 이 글로 제 글 하나를 다음 페이지로 밀어낼 타이밍이라 네 개로 끝나겠네요. 다행입니다(...) 



 - 역시 스포일러는 없구요.



 - 때는 1990년. 먼저 자막으로 80~9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악마 숭배 의식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첫 장면은 한 남자가 자기 딸에게 성폭행으로 신고 당해서 에단 호크 경찰관에게 심문 받고 유치장에 갇히는 걸로 시작되구요. 그런데 아빠의 반응이 영 이상합니다. 자긴 그런 일을 한 기억이 전혀 없대요. 하지만 딸은 정직한 아이니까 아마 자기가 했을 거랍니다(...) 교회로 도망가 숨어 있는 딸 엠마 왓슨을 찾아가 증언을 들어보니 아빠가 사람들을 데리고 자신에게 무슨 사탄 숭배 의식 같은 걸 한 것 같답니다. 마침 티비에서도 사탄 숭배 관련 뉴스가 연일 흘러나오던 시즌이었고 경찰서 사람들은 모두 긴장을 하죠. 그리고 "내가 했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라는 아빠에게서 쓸만한 증언을 얻어내기 위해 '퇴행 최면 요법' 전문가인 대학 교수를 불러와 최면을 걸어봤더니 아빠가 하는 말이 글쎄...



 - 평가가 굉장히 안 좋은 영화입니다. 생각해보면 해리 포터 이후로 엠마 왓슨의 선구안은 좀 안 좋은 의미로 대단해요. 그래도 작년에 '작은 아씨들'로 간만에 평가 좋은 작품에 얼굴 비추는데 성공했으니 앞으로를 또 기대해 볼 수 있겠죠.

 암튼 그렇게 평가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감독이 '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의 그 분이니 망작이어도 뭐라도 건질 게 있겠지 & 헤르미온느 얼굴이나 한 번 보자... 는 생각으로 고른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전 뭐... 그냥저냥 봤어요. 딱히 칭찬할 구석은 별로 없지만 크게 깔 것도 없는 정도라는 느낌.



 - 일단 굉장히 뻔한 게임을 하는 영화입니다. 불가사의한 사건이 있어요. 그리고 살아남은 피해자 소녀 한 명의 불확실한 증언에만 의존해서 사건을 파헤쳐야 하죠. 수사관은 초현실적 현상 따위 안 믿는 사람인데 점점 그 소녀의 말에 흔들리며 자신의 상식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의 결말이 뭐겠어요? 많아야 1번 아니면 2번이라는 식으로 정답이 주어져 있는 이야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사기를 치지 않는 이상에야 시작한지 30분 이내에 답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건 결말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되겠고, 뭣보다 주인공들간의 드라마로 뻔한 결말에 정서적인 무언가를 끼얹어줘야 하는데... 이 영화는 거기에서 실패합니다. '식스 센스' 같은 영화를 보세요. 거기의 두 주인공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걸 관객들에게 충실하게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또 함께 얽히는 이야기가 전개가 되고 이 세 가지 드라마가 합쳐지면서 마지막에 그런 감흥이 생겨나는 거죠. 하지만 이 '리그레션'의 주인공들은 각자 개인의 드라마도 없고 둘이 함께 엮어내는 드라마도 없어요. 그냥(...이라기엔 좀 쓸 데 없이 열정적이긴 하지만) 수사관, 그냥 수상쩍은 피해자. 이 관계에서 한 발짝도 안 벗어나니 마지막에 무슨 결론이 나든 감흥 같은 건 뭐.



 - 그래도 다행히도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어요. 툭툭 튀어나오는 기괴한 이미지들이나 주인공이 겪게 되는 현실인지 악몽인지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체험들은 충분히 기분이 나쁘고, 수사가 진행될 수록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에단 호크 형사님의 모습 같은 건 꽤 긴장감을 조성해 줍니다. 특히 마지막 즈음에서 수미상관 비슷하게 전개되는 장면은 꽤 센스 있다고 느꼈네요. 세간의 평가만큼 망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손꼽아 기다리다가 개봉 당시에 극장에 달려가서 봤다면 확실히 좀 맘이 상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넷플릭스로 집에서 빈둥거리며 한 시간 사십분 정도 죽이기엔 큰 문제가 없이 적당한 스릴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위에서도 말 했듯이 비중도 적고 캐릭터도 안 매력적인 헤르미온느씨에겐 큰 기대 마시구요. ㅋㅋㅋ 




 - 덧붙여서.

 스포일러의 위험이 있어서 자세히 설명은 못 하겠지만 사실은 좀 일생에 보탬 안 되는 교양 지식류... 에 기반하고 있는 이야기이고 거기에 방점을 찍고 전개되는 스토리에요. 결말의 뻔한 반전도 딱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구요.

 그리고 주인공 형사가 의외로(?) 논리적입니다. 뻔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 하나는 맘에 들었네요.



 - 제목인 '리그레션'은 극중에서 집단으로 '기억 안 남' 증세를 보이는 증인들에게 행하는 최면 요법에서 따온 겁니다. 왜 '최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거 있잖아요. 하나 둘 셋 이제 당신은 다섯살 때로 돌아갔습니다... 뭐가 보이나요?



 - 영화 홍보 문구들을 보면 '충격 실화!!!' 운운하는 표현들이 나오는데, 검색을 좀 해보니 구체적인 실제 사건을 소재로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걍 90년 언저리에 이런 게 유행했었으니 그걸 소재로 삼아보았네... 라는 걸 애매하게 적어서 과장한 거죠. 흠. 그러고보니 1990년이 이미 30년 전이네요. 이거 사극이었나(...)



 - 며칠간 올레 티비 vod를 보다가 오랜만에 엑박 켜고 넷플릭스 컨텐츠를 보니 사운드의 차이가 확 느껴지더군요. 국내 iptv 사업자들 다 그냥 망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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