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째 해 나기만 기다립니다. 빨래가 밀렸어요.

어제 아침에 드디어 볕이 나길래 신나서 세탁기 돌리고 널었더니만

정오 무렵부터 하늘이 설사난 사람마냥 잔뜩 찌푸리다가 두 시 즈음에 폭우로 돌변하데요. 나참.

그러고는 종일 왔다가 그쳤다를 반복. 빨래는 마냥 눅눅 뭐 그렇습니다. 저러다 냄새날라..

이불도 하나 빨아야하고 애기 옷가지들도 세탁 몇 번씩 더 해놔야 하는데

흐린 하늘만 쳐다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네요.

천 기저귀를 사용할까 해서 30개쯤 만들어 뒀는데

다른 부지런한 엄마들처럼 세 번씩 삶거나 하지도 못했어요. 겨우 한 번 빨아 개어놨을 뿐.

이러다 그냥 종이기저귀에 안착하면 어쩌나 싶네요. 에혀.

 

*

조만간 아이를 낳게 될 겁니다.

의사는 애 몸무게로 보니 오늘이나 내일쯤 낳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에요. 기미는 전혀 없지만.

근데 은근히 우울한 기분이 드네요.

막상 낳자니..앞으로 아가에게 맞춰 지내야 할 제 일상에 대해 답답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에요.

특별히 대단할 것 없는 저의 일상이지만,  그 다이얼의 중심이 저 아닌 아가에게로 온전히 옮겨가는 일에

제 의지나 사고와는 달리 막연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있는 모양이에요.

 

ㅎㅎ 요래놓고 막상 낳아놓으면 물고 빨고 난리가 나려나요, 친구들 말처럼.

니 새끼니 이뻐 죽을거래요. ㅎㅎㅎ 자기들은 그랬다고.

그렇지만 친구들은 처녀적부터도 아가를 좋아했던 타입이었고

전 아가는 그냥 무심했던 편이라...어쩔지.

무심하다고는 해도 저 아래 어딘가엔, 이 녀석은 저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걸

임신사실을 의사에게서 통보받았을 때 처음 알았죠. 제 감정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왈칵 터지더라고요.

아 이게 생명이나 존재가 가지는 힘인가 ...실감했었어요.

그런 감동의 순간은 잠시..참 힘들었던 열 달간의 동거가 이제 끝나갑니다만

시원 섭섭할 줄 알았드니만 약간 무기력하고 기운없고 더워는 죽겠고..하이고야 ㅎㅎㅎ

이론과 실천은 달라요. 네.

 

*

유기농 면 천은 비싸요. 반 마에 2만원 가까이 하는 놈도 있고

그래도 첫 애인데 너도 유기농면 옷 입어봐야 하지 않겠냐 싶어

한마 반 정도 끊어서 주섬주섬 배냇저고리 두 벌을 만들어 놨네요.

하나는 100% 손으로. 하나는 100% 재봉틀로요.

배냇저고리 쉬워요. 본도 간단히 통짜 하나고. 바이어스테잎 붙이는게 좀 귀찮아서 그렇지.

그리고 제 작업책상엔 무기력증과 더위를 잊을겸 약간 대충 만든 손싸개와 발싸개가 있어요.

발싸개 한 쪽에 고무줄 마저 넣다가 갑자기 하기 싫어져 이리로 도망왔네요.

욕심은 많아서 흑백펠트천도 사다놨는데...과연 이 의욕으로 모빌을 만들수 있을지.

다들 그래도 견딜만한 더위라는데 혼자서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부른배를 안고 이러고 하루를 보냅니다.

첫 애는 대걔 예정일보다 늦기 일쑤라는데

얜 언제쯤 나와 나를 까꿍 놀라게 할까요??

궁금함 반, 부담 반, 뭐 그렇네요.

 

*

대학병원에서 아이 낳는데 갑자기 성인남자 여러명이 우르르 들어와 자기 애 낳는 광경 참관하는 바람에

수치심에 몇달째 시달리고 있다는 주부의 기사를 보고 열불나 버렸어요.

애를 낳는다는 상황 자체가 여자에게 얼마나 성적으로 민망한 상황인지 전혀 인지가 없다는 게 산부인과라니 참...

대학병원에 애 낳으러 왔다는 건 인턴들 참관을 허락한 거나 다름없다는 병원관계자 말에

어릴 때 치열교정 하러갔다가 갑자기 교수방에 불려가

여러 치과의사들 앞에서 입 벌리고 여기저기 쑤심을 당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 버렸어요.

대학병원의 나쁜점이 이런거죠. 환자는 마루타에 가까운 취급을 당한다는 거.

 

저 기사를 읽고나니 우울한 기분이 좀 더 심해져 버렸어요.

안그래도 출산 장면이라는게 여자가 개인이기를, 혹은 인간이기를 어느 정도는 손해볼 각오를 하고

임하는 상황이라는 것에 막연히 공포감 같은게 있는데...기사가 남 일 같지 않네요.

출산의 고통은 몸에만 오는게 아니더라구요. 살아있는 인큐베이터가 된 기분. 그래도

아가만 무사히 나온다면 다 감수하는 일인거죠.

 

그 대학 어딘지 알면 가서 테러라도 하고싶...ㅡㅡ+

 

ㅎㅎㅎ 에혀. 이 일 아니라도 더운 날이네요.

점심 맛나게들 드세요. 벌써 밥먹을 시간이네요.

 

푸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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