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에 나왔네요. 런닝타임은 1시간 45분. 스포일러는... 본문에는 대략의 엔딩 방향이, 글 끝 부분엔 흰 글자로 디테일 가득 설명이 있을 겁니다. 근데 뭐 어차피 매우 뻔한 이야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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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홍콩 영화들 vod를 재출시하며 '디 오리지널'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나봐요.)



 - 정확한 나이는 안 나오지만 주윤발이 1955년생이니 대략 33세 근처의 젊은이, '고추'씨가 주인공입니다. 네. 저게 이름 맞아요. 영화 속에서도 계속 저렇게 불립니다. 고추는 우리 요원입니다!! 고추형은 배신할 사람이 아니에요!!! 고... (쿨럭;;) 죄송합니다. 암튼.

 그래서 우리 고추씨는 경찰의 비밀 잠입 요원입니다. 이 일을 한지도 꽤 오래 됐는지 이미 자길 형제처럼 아껴주던 범죄자가 '니가 날 배신하다니!!'라며 자살해 버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구요. 예쁜 일반인 여자 친구와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아 보려고 경찰에서 아예 은퇴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그게 맘대로 되겠습니까.

 그때 시내에 총기를 동반한 대형 강도 사건이 벌어지고, 이걸 어떻게든 해결해서 승진해 보려는 해외파 엘리트 젊은이의 욕심 때문에 고추씨의 은퇴 계획은 대략 망. 점점 더 위험하고 큰 일로 운명적으로 엮여가는 가운데 그 강도단의 리더는 첩혈쌍웅의 이수현씨네요. 뭐... 대략 이런 이야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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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와르 주인공 주제에 '이번 일만 마치면 결혼할 여자'를 두다니 간도 크죠.)



 - 홍콩 느와르계의 영원한 콩라인(...) 임영동의 작품입니다. 능력 있는 감독이었고 나름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의 영화도 몇 편 남겼지만 오우삼의 폭발적인 인기 + 서극의 유명세에 밀려서 언제나 인지도나 후대 사람들의 언급에서 매니악한 아이템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 이 영화만 해도 퀜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의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대놓고 밝힌 데다가 '첩혈쌍웅'이나 '무간도'에 미친 영향도 명백한 작품인데 그렇게 인기 아이템이라고 하긴 좀 뭐한 위치죠.

 뭐 암튼 그렇습니다. 그래서 숙제 삼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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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이 이런 영화의 필수 요소, 주인공의 정체를 알고 챙겨주는 유일한 상사님이신데... 그건 됐고 윤발 아저씨 표정 너무 귀엽네요.)


 

 - 일단 이게 1987년 작품이란 말입니다.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잠입 경찰의 정체성 혼란과 비극적 운명을 건조한 톤으로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무간도'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그 '무간도'는 2002년작. 무려 15년 후의 영화란 말이죠. 까놓고 말해서 '무간도'가 여러 면에서 더 잘 만든 영화지만 같은 선에 놓고서 비교하면 이 '용호풍운'이 좀 억울하죠. 그래서 그냥 1987년이라는 창작 시기를 놓고 생각해보면 '영웅본색' 1편이 1986년 영화입니다. 쏴나이 똥폼과 로망, 아재들 로맨스를 핵심으로 삼았던 홍콩 느와르가 그 화려한 시작을 알렸던 바로 다음 해에 이런 영화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는 건 분명히 여러모로 인정해 줄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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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 영화가 똥폼을 안 잡느다는 건 절대 아니구요.)



 - 아무래도 시대적 한계가 있다 보니 좀 아쉬운 구석들이 눈에 밟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고추씨(...)의 언더커버 생활 묘사가 좀 건성이에요. 대체 어떤 사연으로 어떻게 비밀 요원이 됐길래 그 젊은 나이에 그렇게 암흑가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건지. 왜 그냥 자기 신분을 까 버리고 임무에서 탈출할 수 없는 것인지... 에 대한 설명이 없다 보니 몰입도가 좀 떨어지는 면도 있고. 이 요원을 경찰 조직이 다루는 방식도 보다보면 의문이 드는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냥 '비정한 조직' 묘사를 하기 위해 경찰이 지나치게 작정한 빌런처럼 군다는 생각이 자주 들구요. 막판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또 갑자기 홍콩 느와르풍의 쏴나이 의리!!! 같은 게 튀어나와서 좀 싱겁다는 느낌도 주고요. 그러니까 만약 이 이야기를 그대로 2023년으로 옮긴다면 각본상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 받을 것 같다... 는 얘깁니다만. 다시 한 번, 이건 1987년 홍콩 영화입니다. ㅋㅋㅋ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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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차림새나 전체적인 분위기 같은 게 문자 그대로 80년대 느낌 가득합니다.)



 - 그래서 조금 관대한 마음으로 다시 영화를 들여다보면 이게 확실히 꽤 괜찮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그렇게 막 대단한 액션 히어로가 아니에요. 긴장하면 손을 벌벌 떨고 무한 탄창 보유자도 아니며 건장한 남자 두 세 명이랑 붙으면 그냥 얻어 터지구요. 미행 따돌리는 실력도 이런 영화 주인공치고는 그리 뛰어나지 못하죠. 중간에 때려 치우고 나가지 못하고 마지막 위험한 임무까지 끌려다니는 것도 어떤 영웅적인 선택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상황이 꼬여서 못 뛰쳐 나감'이라는 게 분명하게 묘사 되구요. 그래서 어찌 보면 지나치게 똑똑하고 폼 나는 '무간도'의 주인공들보다 리얼리티는 훨씬 살아 있는 캐릭터라 하겠습니다.


 주인공의 번뇌가 꽤 성의 있게 묘사됩니다. 나쁜 짓 해서 먹고 사는 범죄자들이라지만 자기한테 잘 해주고 의리도 있어 '보이는' 녀석들과 함께 생활하다 정 드는 모습. 그리고 실적을 위해 자기를 쓰다 버릴 도구처럼 취급하는 경찰 조직의 모습. 이런 게 충분히 보여지는 가운데 또 그 범죄자 녀석들도 어쨌든 자기한테만 잘 해줄 뿐이지 전혀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랄 구석이 없는 악당들이라는 걸 분명히 하거든요.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이 쪽도 저 쪽도 믿고 의지할 구석이 없고. 그런데 상황은 점점 더 꼬여만 가고. 이 환장할 상황의 압박이 나름 설득력 있게 제시가 되고 또 우리 윤발 대협께서 이 가련한 주인공의 모습을 잘 그려내서 보여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뭐 그 시절 홍콩 액션 무비답게 액션 씬들도 나쁘지 않아요. 윤발 형님의 극중 능력치에 맞게 그렇게 막 화려한 게 나오진 않고, 또 권총 한 발에 달리던 자동차가 콰콰쾅 불꽃 놀이를 하며 공중제비를 하는 식의 과장이 종종 나오긴 합니다만. 그냥 그 시절 액션 영화들스럽게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거 보면서 '우왕 멋지다~' 하던 사람들 아닙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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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지나는 도시의 사냥꾼! 같은 거랑은 거리가 먼 현실적인 캐릭터입니다만. 충분히 잘 해서 보여줍니다.)



 - 또 이게 이후에 튀어 나올 몇 편의 영화들을 생각하며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미 언급한대로 '저수지의 개들'과 '첩혈쌍웅', '무간도'의 레퍼런스가 된 작품인데요. '저수지의 개들'과 분위기가 닮은 구석은 별로 없지만 딱 '그 장면'이 튀어 나올 땐 반갑더라구요. ㅋㅋㅋ 또 캐스팅 덕에 '첩혈쌍웅' 생각을 하면서 보면 경찰-범죄자의 관계가 뒤집힌 두 양반이 비슷하게 안 좋은 관계로 마주쳐서 우정을 쌓아 나가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작별하는 장면까지 괜히 좀 더 재밌어지구요. '무간도' 얘긴 이미 위에서 많이 했으니 스킵하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비교하자면 저 세 편의 영화들 대비 훨씬 진지 심각하면서 리얼리티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에요. 사실 '무간도'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비정 컨셉을 토핑한 멜로드라마에 가까운 이야기였잖아요. 진지 모드로 비교하자면 요 '용호풍운'쪽이 오히려 더 건조하고 비정한 이야깁니다. 결말도 정말 가차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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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장면의 원조격이 아닌가 싶었구요. 또 타란티노가 대놓고 인용한 장면이기도 해서 더 유명. 맨 위 포스터 이미지에도 들어가 있죠.)



 - 뭐 그래서... 계속해서 언급하는 저 세 편의 영화들을 좋아하시는데 아직 이걸 안 보셨다면 한 번 보세요. 그냥 완성도가 어쩌네 이런 걸 떠나서 그런 분들에겐 한 번 비교해가며 즐길만한 가치는 충분한 영화구요.

 또 그 시절 홍콩 느와르들 좋아하셨는데 이걸 비롯해서 임영동 영화들은 좀 덜 봤다. 이런 분들도 체크해보실만 합니다. 영화 퀄도 괜찮고 왓챠에 올라와 있는 버전이 화질도 괜찮고 블러 같은 것도 없어서 흡족한 기분으로 보실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뭐 그 시절답게 스토리 전개나 설정이 좀 건성인 부분들도 분명히 있고. 잘 나가다 막판에 '우정! 의리!!' 같은 게 강조되는 그 시절 전개가 요즘 갬성엔 잘 안 맞기도 하죠. ㅋㅋ 그런 걸 시대적 한계로 생각하고 넘기실 수 있다면 괜찮을 거구요. 아니 난 좀... 이런 분들은 스킵하시는 게 좋겠죠.

 뭐 그렇습니다. 저는 적당히 즐겁게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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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윤발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이수현 할아버지도 상당히 폼나게 나옵니다. 연기도 잘 해주고요.




 + 여기에서도 '재수 없는 엘리트 경찰 간부'는 자꾸 영어를 씁니다. ㅋㅋ 당시 홍콩의 상황을 보여주는 디테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 아직 젊으셔서 그런지 윤발 아저씨가 직접 몸을 던지며 찍은 스턴트 장면들이 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옆'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장면인데. 다들 아시다시피 거기엔 그렇게 미끄럼 타는 놈들을 막기 위해서인지 표족하게 튀어 나온 장식인 척하는 구조물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우리 윤발씨는 미끄러지는 가운데 엉덩이를 통! 통! 하고 타이밍 맞춰 튕기면서 내려옵니다. 진지한 장면이 괜히 웃겼습니... ㅋㅋㅋㅋㅋ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주인공에게 미션을 주던 선배 경찰 아저씨가 해외파 엘리트와 경쟁 같은 게 붙으면서 우리 윤발이형의 삶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집니다. 이 아저씨가 자기가 먼저 공을 세우기 위해 일 그만두고 싶어 환장하겠다는 주윤발의 발목을 잡고 매달리거든요. 그래서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강도 조직에 접근해서 총기를 팔며(!) 더 큰 일을 수월하게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든다... 라는 건데. 그래도 그 아저씨는 걍 총만 팔고 넌 손 떼라. 내가 은퇴도 시켜줄게. 그랬거든요.


 근데 나중에 이런 상황을 눈치 챈 해외파 젊은이 때문에 윤발씨의 일생이 절단이 납니다. 해외파님은 좀 더 확실하게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중형을 때리고픈 맘에 주윤발을 아예 그 강도 조직에 침투하게 만들고. 그래서 마지막 '큰 건'에 동참하도록 강요하는데요. 그래 놓고 자기 부하들 간수 제대로 못 해서 정작 범죄 현장을 제 때 덮치는 데 실패해서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지고. 경찰 다수와 조직원 다수가 사망하며 주윤발은 그 와중에 이수현을 구하다가 배에 총을 맞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의리의 이수현이 노력해서 미리 약속된 은신처까지 도주하는 데엔 성공합니다만. 주윤발이 빛나는 경찰 스피릿으로 현장에 남겨 둔 힌트를 아저씨가 발견해서 대규모의 경찰 병력이 은신처를 포위하구요. 절체절명의 상황에 정신줄을 놓은 강도 조직 보스가 폭주해서 얘들은 자기들끼리 총질하다 주인공 둘만 남기고 다 죽어요. 그래도 끝까지 주윤발을 버리지 않겠다는 이수현의 고집에 주윤발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를 털어 놓구요. 분노하며 이걸 죽여 살려하고 이수현이 갈등하는 동안에 경찰 특공대가 진입해서 둘을 모두 잡습니다만. 그새 주윤발은 복부의 총상을 이기지 못하고 말 없이 사망. 이수현은 '난 너와 같이 니 애인 만나러 하와이로 갈 거야!!!' 라고 울부짖으며 개처럼 끌려갑니다.


 그러고 죽어 쓰러져 있는 주윤발의 모습을 보고 빡친 경찰 아저씨는 짱돌을 들고 자기 공 세웠다고 으쌰으쌰 하는 해외파 젊은이의 후두부를 강렬하게 가격한 후 버럭! 하며 떠나가구요. 겹겹이 겹쳐서 한 자리에 쓰러져 죽어 있는 범죄자들+주윤발의 모습을 천천히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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