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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이 런던까지 찾아가서 손흥민에게 사과를 하고, 그 사과를 손흥민이 받아주는 모양새로 축구 국가대표팀 갈등국면이 마무리되는듯 하다. 많은 이들이 이강인의 바짝 엎드린, 요즘 말로는 '군더더기 없는 사과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더불어 사태를 수습하는 손흥민의 대처에는 더 큰 박수를 보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답답했다. 애초에 지금 상황에서 이강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도록 만든 건 언론과 대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강인이 어떠한 변명이나 반박조차 하지 않고 국민들을 향해 (손흥민이 아닌) 무릎을 꿇도록 몰아갔다.


이강인을 향한 1주일 간의 마녀사냥은 실상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규명되지 않은 채로 이뤄졌다. 축구전문 유튜브채널 이스타TV의 박종윤 대표는 지난 19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황을 알 수 있는) 세 명에게 물어봤는데 세 명의 이야기가 다 달랐다"라고. 실제로 기자들, 전문가들의 말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자극적인,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주먹질을 했다'가 기정사실화됐다. 대형 폭탄이 떨어진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감독은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났다가 금세 잘렸으며 (그는 나중엔 좋지 않은 경기력에 대해 선수 탓까지 했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대한축구협회는 아주 신속하게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이후엔 수수방관했다. 자연스럽게 이번 사건은 추측성 보도, 가짜뉴스, 가십 등을 통해 이강인 개인의 '인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니 탈출구 역시 이강인 개인의 '인성 개조 선언' 이외에는 없었다.




때문에 이강인-손흥민의 다툼을 여전히 이강인 개인의 사과와 반성으로 끝내기에는 찝찝함이 남는다. 사실 이강인이 '절대로 해서는 안될 행동'을 했다고 인정했으니, 이강인 개인의 잘못으로 넘어가면 편하다. 하지만 이 사건의 실체가 그런 것일까. 축구 전문가 100이면 100이 말렸던 클린스만의 감독 선임, 월드컵과 달리 경기력이 최악이었던 아시안컵, 두 번의 졸전 끝에 겨우 올라간 4강, 탁구 게임을 하겠다는 후배들과 주장(혹은 선배 라인의)의 부딪힘...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이번 사건을 이강인 개인의 책임으로만 넘기긴 어렵다.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국가대표팀 내의 갈등을, 그리고 팀의 총체적 문제들을 지우고 오로지 이강인에게만 포커스를 맞춘 것은 온당하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둘의 다툼인지, 다른 선수들이 연루된 것인지조차 확인된 것이 아니지 않나.


이번 사건이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지상파를 비롯해 모든 '레거시 미디어'가 이강인에게 맹폭을 가했다는 점이다. 황당한 추정, '분석'의 탈을 쓴 비난들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요르단전에서 이강인이 일부러 손흥민에게 패스를 안 했다'는 말은 음모론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팩트체크도 안된 채 버젓이 신문 지면 칼럼으로 이러한 내용이 나갔다. 실제로 이날 이강인(패스 3번)보다 더 손흥민에게 패스를 많이 준 선수는 두 명에 불과했다. 황희찬도 1번, 이재성도 3번이었다.
'팀보다 개인을 우선해서',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슛돌이로 주목받고 오냐오냐 커서' 등 황당한 지적들이 '정론'인양 쏟아져나오는걸 보면서 절망감마저 들었다. 그런 기사들에 이강인이 실제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선수들과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증거는 단 한 개도 없다. '그냥 그래보여서'라는 추정이다. 이강인이 연령별 국가대표때부터 팀에 헌신해왔다는 점, 그리고 아시안컵에서도 베스트11에 뽑힐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는 점, 아주 어린 나이부터 스페인에서 고군분투했지만 친정팀인 발렌시아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고, 그럼에도 마요르카에서 성장해서 결국 지금의 자리에 있게됐다는 것은 모두 간과된다.


U20 대표팀과 아시안게임에서 이강인과 같이 뛰었던 조영욱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강인과의 일화를 꺼냈다. 열정이 과도해서 슈팅게임 등을 할때 선배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그래서 악역을 자처해서 혼냈다고 말이다. 물론 팀스포츠를 하는 선수라면 과도한 승부욕이나 답답한 감정 역시 스스로 통제해야 하는것이 맞다. 하지만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개인주의, '오냐오냐'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이번 사건에서 그나마 추정이 가능한 부분은, 객관적으로 당시 축구 대표팀의 상태가 '최악'이었다는 것이 이강인과 손흥민의 다툼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던 그 실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본 팀처럼 최소한의 지향점이 보이지도 않았다. 무책임하고 무전술인 감독, 극적인 승리로 겨우 4강에 올라갔지만 네 경기 연속 졸전 그 자체였다. 선수들이 그걸 모를리가 없다. 경기력에, 우리 팀에, 또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상황이 반복됐을 것이다. 충분히 이강인-손흥민, 나아가 선배와 후배들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을만한 정황이다.


그럼에도 선수들간의 갈등은 대부분 내부적으로 정리가 된다. 솔직히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하나하나 알 필요도 없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이강인이 손흥민을 무시하고 대표팀에서 독불장군처럼 행세하긴 어렵다. 알아서 사과하고, 또 그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도 말했지만 문제는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와서, 아시안컵을 취재조차 하지 않은 <The Sun>이 보도를 하고, 그걸 축구축구협회가 '알아보겠다' '내부적으로 논의하겠다'도 아니라 '보도가 맞다'고 인정해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이 문제는 더 이상 둘의 문제도, 국가대표팀 선수간의 문제도 아니게 돼버렸다. 그들은 '대국민 행사'를 치러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강인은 극진한 사과의 뜻을 표하기 위해 런던을 찾아야만했고, 손흥민은 그것을 너그럽게 품어주는 자상한 주장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기괴하게 느껴졌다. 혹자는 이강인의 '엎드린' 사과문을 유력 정치인들의 사과하지 않는 모습과 비교해보라고 하지만, 애초에 이강인은 정치인만큼의 '공적 책임'을 지니지 않고 있다.





한 선수를 우리나라 축구협회와 국가대표팀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흉처럼 만드려고 했던 이들을 경계하자고 꽤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그러나 '이강인 마녀사냥' 분위기에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 왜냐하면 '싸가지 없는 놈이 감히'가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비난할 수 있고, 도덕적 우위에 서서 훈계할 수 있고, 슈퍼스타가 된 이를 쉽게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선균에게 그랬던것처럼 말이다.
이강인의 사과문에 진짜 만족하는가? 나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 다음에는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 또 ‘만족할만한’ 사과문을 받아내려고 할까. 정작 받아내야하는 사람에겐 못 받아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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