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영화와 똑같이 1999년작입니다. 1시간 37분. 스포일러랄 게 없다는 판단 하에 걍 신경 안 쓰고 막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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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느낌 가득은 좋습니다만, 빈말로라도 괜찮은 포스터라는 말은 못 해주겠군요. ㅋㅋ)



 - 라랄랄라 즐거운 음악과 함께 등교하는 학생들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정말 그 시대 하이틴 로맨스의 '바이브'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 스타트에요. 당연히 '와 저런 분위기에서 난 선생 못 할 거야' 라는 느낌이 드는 자유롭고 거친 학생들 모습이 한참 보이구요. 그 시절 첨단 아이템 애플 파워북으로 야한 소설을 쓰며 완전 건성으로 학생들 상담하는 불량 상담 교사도 보이구요. 뭐... 그런데 암튼.


 이 학교에 조셉 고든 래빗 학생이 전학을 옵니다. 아직 키가 덜 큰 건지 참 앳되고 작아 보이네요. 하지만 이름처럼 귀여... 운데. 원 소속 그룹에서 방출되어 친구가 없어진 너드 학생 한 명이 접근해서 학교 투어를 돌구요. '비앙카'라는 어여쁜 학생을 마주쳐요. 어떻게든 이 학생과 잘 해보고픈 토끼씨입니다만 엄격하기 그지 없는 비앙카 아빠가 딸래미 연애 못하게 하려고 '니 언니가 연애하기 전엔 너도 절대 데이트 못해!'라는 괴상한 약정을 걸어 놓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알아 보니 그 언니라는 인간은 교내 평판상 성격 파탄에 애인은 커녕 친구 하나 없는 전투적 페미니스트라서 연애 성사 가능성이 넘나 낮아 보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건 셰익스피어 원작이니까요. 그 언니 '캣'을 연애 시키기 위해 캣과 만만찮게 평판이 살벌한 고독한 터프 가이 '패트릭'을 끌어 들인다는 참으로 문학적인 계획을 세운 토끼와 친구. 근데 본인들은 끌어 들일 배짱도 자본도 없으니 자기처럼 비앙카에게 꽂힌 갑부 양아치 청년 '조이'를 꼬드겨서 패트릭에게 돈을 지불하고 캣에게 접근 시킵니다. 과연 이 미션은 어찌될 것인지... 는 뻔하죠 뭐. 문제는 그게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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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플롯상 주인공은 조토끼군에 가깝습니다만. 어찌저찌 하다 보니 그게...)



 - 아무도 안 궁금해하실 얘길 매번 하려니 민망하지만 전 정말로 로맨스물 안 좋아해요. 셰익스피어 팬도 아니구요. 그래서 이 영화의 명성을 20여년째 들으면서도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이상한 바람이 불어서 (라기보단 사실은 디즈니 플러스에 보고픈 맘이 드는 게 없어서 목록을 싹 다 훑다가;) 대뜸 재생을 눌러 버렸죠. 그렇게 별 기대 없이 봤는데, 결론부터 말 하자면 아 이거 참 재밌게 잘 만들었네요. 오랜 세월 헐리웃 하이틴 로맨스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었던 이유를 납득하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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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안 봤어도 이런 장면들 같은 건 여기저기서 많이 봤고 그래서 이미 본 영화 다시 보는 기분도 들고 그랬죠.)



 - 이야기를 각 잡고 궁서체로 진지하게 뜯어 보자면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어제 얘기한 '25살의 키스' 만큼은 아니어도 구멍이 숭숭에다가 편의적인 전개가 가득해요. 캣과 패트릭, 조토끼씨(캐릭터 이름을 까먹...;) 같은 주연들부터 이런저런 조연들까지 누구 하나 현실적인 디테일을 갖춘 인물이 없죠. 그런 게 있는 척 하는 녀석들은 있어도 결국 다 훼이크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교류 같은 것도 그냥 로맨스의 공식대로 쉽게 쉽게 흘러가구요. 철옹성이어야할 것 같던 캣은 겁나게 빨리 패트릭에게 마음을 열구요. 뭔가 대단할 것 같던 캣의 과거 사연도 나중에 보면 싱겁기 그지 없고. 패트릭은 알고 보니 어쩌다 오해 받았던 선량한 훈남이었을 뿐이고... 암튼 이야기의 대부분이 '나는 하이틴 로맨스니까!!!' 라고 외치며 참으로 편리하게, 쉽게 흘러가며 그 안에 무슨 진지함 같은 건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긴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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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선생 참... ㅋㅋㅋㅋㅋㅋ)



 - 대체 이걸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게 전혀 거슬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냥 재밌어요. ㅋㅋㅋ


 일단 영화가 애시당초 진지해질 맘이 전혀 없다는 걸 당당히 선언하고 시작한다는 게 중요하겠죠. 사실 연애 한 번 해 보겠다고 이런 음모까지 꾸미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구요. 오프닝에서 그 상담 선생이 하는 짓도 그렇고 엔딩의 옥상 밴드도 그렇고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일관되게 '이건 비현실적인 코미디라고!!!' 라고 외치는 영화에요. 그리고 이게 맞는 접근법이겠죠.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현대판으로 만들면서 정색하고 진지하면 그게 더 이상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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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서 이런 짓을 하는 남자가 있다면 감동하기 전에 일단 민망함에 짜증부터 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캐릭터들이 좋습니다. 앞서 말 했듯이 참 비현실적인 '하이틴 로맨스 생명체'들인데 그걸 참 잘 다듬어 놨어요. 다들 뻔하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있고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죠. 귀여워야 할 놈은 귀엽고 멋져야 할 놈은 멋지고 재수 없어야 할 놈은 관람자들 기분 더러워지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재수 없구요. 각자 역할에 맞게 기가 막히게 잘 된 캐스팅이야 말 할 것도 없겠죠.


 마지막으로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이런 장르가 갖춰야 할 전통적인 요소들을 참으로 성실하게, 그리고 보기 좋게 탁 탁 짚어줍니다. 순진하고 얼빵한 남자애가 용기를 내어 사랑을 얻고, 고독한 아웃사이더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서 행복을 찾고, 비현실적으로 과장은 되었으되 어쨌든 보기 좋고 멋진 프로포즈 장면들이라든가... 여기에다가 적절한 타이밍마다 튀어나오는 개그들까지 타율 좋게 뒤받침 해주니 딱히 진지하게 지적질을 할 의욕이 안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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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아빠 캐릭터도 참 웃겼구요. 그 와중에 산부인과 의사로 설정을 해서 아빠의 격한 오지랖에 나름 설득력을 부여해주는 센스도 좋았구요.)



 - 이미 한 얘기지만 캐스팅이 차암 좋습니다.

 일단 주인공 역의 히스 레저와 줄리아 스타일즈가 너무 좋군요. 각잡고 따져 보면 정말로 얄팍하기 그지 없는 캐릭터들인데, 배우들이 그걸 그럴싸한 질감으로 잘 살려내며 관객들에게 납득을 시켜줘요. 연기력을 떠나 그냥 봐도 둘 다 많이많이 매력적이기도 하구요. 그 시절에 봤더라면 아마 '둘 다 앞으로 크게 되겠군!' 이라고 생각했을 텐데요. ㅠㅜ

 그리고 우리 조토끼씨가 이렇게 귀염뽀짝하던 시절이 있었군요? ㅋㅋ 확인차 검색해보니 제가 이 배우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한 영화가 2005년에 나온 '브릭'이에요. 이로부터 6년 후의 작품이니 이 시절 비주얼을 신선하게 느끼는 게 당연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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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말 조토끼씨의 귀여운 모습!!)



 - 그래서 결론을 내자면... 

 대단할 건 없지만 성실하게 할 일은 다 하는 스토리를 적절한 센스와 배우들 능력으로 기가 막히게 살려낸 경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런 훌륭한 이야기꾼이 누구신가!!? 하고 검색해 봤는데... 음. 감독님도 작가님도 이 영화 이후로 대단한 작품은 없군요. 두 분의 리즈 시절이 이 영화에서 만났던 것일까요. 혹은 세기말 로맨스 정서를 이걸로 불사르고 새로운 시대가 찾아와 버린 건가... 싶기도 하구요. 요즘 하이틴 로맨스물들은 이렇게 순진무구하고 해맑은 건 찾기 힘든 것 같아서요.

 어쨌든 아주 즐겁게 봤습니다. 로맨스물이지만 로맨스를 빼고 생각해도 그냥 웃기고 재밌는 장면들이 많으니 저처럼 로맨스는 별로... 라는 사람도 재밌게 볼만 하구요. 세기말 청춘물에 대한 추억이 있는 분이라든가, 히스 레저에게 호감은 있었는데 저처럼 이 영화는 안 보고 살아 온 분들이라든가... 등등이 챙겨 보시면 괜찮겠단 생각이 듭니다. 근데 뭐, 이런 부분에 해당하는 분들이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을 리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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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도 그리워지고 이 배우들의 그 시절도 그리워지는 짤입니다.)




 + 그 유명한 Can't take my eyes off you 장면은 이제사 다시 보니 조커 생각이 나서 웃기더라구요. 연기 톤이 되게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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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2009년에 티비 시리즈로 만들어졌었군요. 제작진이 싹 다 물갈이 된 가운데 캣의 아빠 배우만 원작과 같은 캐릭터로 다시 출연했나봐요.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님께선 2019년에 '영광을 다시 한 번!' 같은 느낌의 제목을 단 '10 Things I hate about life'라는 영화를 만드셨지만...



 +++ imdb 영화 정보의 '작가' 란에 셰익스피어 이름이 박혀 있는 게 왜 웃길까요 전. ㅋ



 ++++ 어쨌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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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떠난지 15년이 되었군요.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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