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39분. 장르는 하이틴 로맨스라고 해야겠네요.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적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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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게 영화 특성을 잘 보여주는 포스터입니다. 이 그림의 분위기가 맘에 드시면 보시고, 아님 피하시면 돼요.)



 - 마크라는 고딩의 아침 일상으로 시작합니다. 엄마가 출근하며 내는 차 소리 잠에서 깨고. 부엌으로 와서는 여동생과 시비를 주고 받고 아빠랑 시시한 대화를 주고 받고는 집을 나와요. 별 거 없지만 이미 대략 장르가 보이죠. 동생이 실수로 떨어뜨리는 컵을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주워 올리고, 자기가 깨기 전에 셋팅한 토스터에서 튀어나오는 빵을 귀신 같이 캐치해서 가족들에게 돌리고, 아빠랑 동생이 던지는 말들을 동시에 똑같이 따라하고... 네. 타임 루프물입니다. 그러고 집 밖으로 나와서 한참 동안 마치 원컷으로 찍은 듯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주인공의 곡예 장면들이 그걸 증명하구요. 


 이 장르의 주인공들이 다 그렇듯 얘도 이게 대체 뭔 상황인진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은 즐기고 있습니다. 마침 또 그 반복 속에서 한 여자애한테 꽂혀서 어떻게든 갸를 꼬셔 보려고 애를 쓰고 있기도 하구요. 그런데 상황이 아주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는 가운데, 어느 날 아주 수상한 여자애를 발견합니다. 그 '반복'에 속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설마 이 녀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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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주인공. 발랄 맹랑한 여자와 거기 휘둘리는 좀 맹한 남자애... 라는 클리셰 팀 소속입니다.)



 - 늘 하는 얘기지만 타임 루프물은 그냥 그 자체가 장르라서. 그래서 이미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나와 있는데 장르 특성상 이야기 자체는 뻔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래서 넌 차별점이 뭔데?' 라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경우엔... 글쎄요? 둘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루프를 돌며 엮이는 이야기도 이미 드물지 않죠. 대표적으로 '러시안 인형처럼' 같은 경우도 있구요. 근데 이 영화엔 그 외에 딱히 특별할 게 없어요.

 억지로 생각해보면 의외로 '하이틴'이 주인공인 타임 루프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 그리고... 둘 중 한 명이 그다지 이 루프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는 게 나름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이겠네요.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또 흔하지는 않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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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자 역할의 베프님. 이 분은 루프에 속해 있어서 매번 대화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쓸만한 조언을 계속 해주는 게 웃겼습니다.)



 - 그리고 영화가 나름 그 부분에 대해 이것저것 할 말이 있긴 합니다. 이 영화의 청춘들은 나름 타임 루프에 대해 각각 다른 입장을 갖고 거기에 대한 논리도 갖추고 있어요. 예를 들면, 그 중 한 명은 이 타임 루프를 자기들이 그 하루를 완벽하게 '지배한다'고 받아들입니다. 대충 맞는 말이기도 하죠. 어쨌든 그 하루를 완벽하게 꿰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 것처럼 행세할 수 있으니까요. 또 만약에 본인의 인생이 요 다음 날로 나아가서 딱히 더 좋아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절대자 놀이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요 상황에서 벗어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극중 대사대로 지구 온난화가 어쨌든 본인의 진로 문제가 어떻든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기도 하잖아요. 

 처음엔 대충 비슷한 입장이던 이 둘이 점차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둘은 종종 이런 입장들에 대해 설전을 벌이곤 하는데 그런 부분이 나름 재밌었어요. 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둘 다 말이 되는 논리를 갖추고 토론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뭔가 '메타'스런 이야기가 되는 것도 재밌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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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왕! 물음표 구름이라니 참으로 타이니하고도 퍼펙트한 띵이구나!!!)



 - 그러다 영화가 제목 값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살짝 '호불호가 갈려요'의 영역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뭘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뭘 해도 여주인공이 순순히 꼬셔져 주질 않으니까 주인공이 생각해내는 게 이거에요. 이 마을의 하루를 구석구석 수천번 경험해 보니 뭔가 별 거 아니게 소소하면서도 되게 보기 좋고 기분 좋은 장면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싹 다 발견하고 기록해서 지도를 만들어 보자는 거죠. 그렇게 이 마을의 모든 작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간들을 다 찾아내면 루프를 끊어내게 되는 게 아닐까... 라는 건데요. 음. 정말 미치도록 팬시한 생각 아닙니까. ㅋㅋㅋ 물론 영화는 여기에다가 '사실은 이 핑계로 여자애와 맨날 함께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가까워져 보려는 게 진짜 의도'라는 말 되는 핑계를 얹어 놓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그 '소소하게 아름다운 순간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감동 감화 역사하심(...)을 경험시켜 주겠다는 의도를 숨기는 건 아니어서요. 그러니까 참 뭐랄까. 초등학교 선생님 내지는 교회 집사님스럽게 건전한 이야기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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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를 만들긴 하는데 이게 루프물이잖아요? 그래서 주인공은 저 지도를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만들고 시작합니다. 성실도 하지... ㅋㅋ)



 - 근데 뭐 여기까지도 괜찮아요. 그 미칠 듯한 건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그 '소소하게 아름다운 순간들'은 대체로 보기 좋게, 씩 웃으면서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것들로 열심히 디자인 되어 있고 또 그걸 풋풋하고 훈훈한 남녀 주인공들이 썸 타면서 구경하는 모습들 역시 보기 좋아요. 루프물 치고는 참으로 한가롭고 msg가 없어서 살짝 물리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아요.


 다만 문제는 영화가 그 단계도 다 마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흘러갈 때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짝사랑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연애를 해보겠다고 나서면서부터... 인데요. 이 때부터 이야기가 되게 뻔해지거든요. 알고 보니 여자애에겐 루프 탈출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비밀이 있었고. 그걸 알게 되어서 고민에 빠진 주인공은 어쩌다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되고. 그래서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이런 전개가 나오는데 이 부분은 그냥 수백번은 본 듯이 익숙할 뿐더러 전개가 살짝 늘어지기도 해서 그냥 그랬어요.


 거기에다가 또 한 술 얹어 놓는 것이 제목만큼 팬시한 막판 전개입니다. 으아니 이러다 내가 정화되어 녹아 없어져 버리겠어!! 라는 느낌으로 참 건전하고 선량하면서도 당도 높게 '예쁜' 전개가 한참 펼쳐지다 마무리가 되는데, 뭐 이건 분명 취향의 영역이긴 합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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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끌 한 점 없는 마음에 비치는 영원한 햇살 같은 느낌이 좀 드십니까.)



 - 그렇다고 해서 이걸 못 만든 영화라고 해야 하나? 라는 부분에 대해 좀 고민을 해봤습니다만.

 에... 뭐 그렇게 생각할 것까진 없는 것 같아요. 하이틴물로서도 타임 루프물로서도 영화는 나름 나쁘지 않게 잘 해냈거든요.

 두 주인공은 맡은 배우들도 매력적이고 캐릭터들도 참 선량하게 예뻐서 보기 좋구요. 위기감이나 스릴이 없는 건 애초에 영화가 그러기로 선택한 길이니 투덜거릴 이유도 없구요. 애시당초 뽀송뽀송하고 예쁜 로맨스에다가 루프를 얹어서 그 나이 또래 청소년들 삶의 고민 같은 걸 뽀송뽀송하고 예쁘게 다뤄 보겠다는 환타지물이고 정말로 그런 영화로 떡하니 만들어 놨어요. 그러니 제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악평을 할 이윤 없겠죠. 

 게다가 괜찮은 부분이 꽤 많습니다. 이런 루프물에서 늘 초반 재미거리로 좀 써먹다 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예측해서 행동하기'를 시작부터 거의 끝까지 소소한 개그 장면으로 집어 넣는데 그게 아이디어가 많아서 재미가 있었구요. '뽀송뽀송 예쁜'이란 표현에 딱 들어맞게 예쁜 그림, 예쁜 분위기도 내내 잘 유지가 되구요. 자기가 의도한대로는 분명히 꽤 잘 만든 영화에요. 그러니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되는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슬프게도 그게 제가 아니었을 뿐이죠. ㅋㅋㅋ




 + 주인공 남자애 역을 맡은 배우가 눈에 익었는데, 보니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나왔었네요. 꾸며 놓기에 따라서 히스 레저랑 살짝 닮아 보이는 구석도 있구요. 여주인공이야 뭐 '프리키 데스 데이'랑 '앤트맨' 때문에 많이들 아실 거구요.

 개인적으론 아빠 역으로 나오신 분이 가장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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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스 그레이드'에서 주인공 아빠로 나오셨던 그 분인데요. 이번에도 선량하고 좀 애잔한 아빠 역을 맡아서 좋은 연기 보여주십니다. ㅋㅋ



 ++ 스포일러는 뭐냐면요.


 그러니까 루프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건 주인공이고 루프에 머물고 싶어하는 건 여주인공입니다.

 근데 주인공의 동기는 그냥 '이건 루프물이고 난 주인공이니까 탈출하고 싶어할 거야' 라는 식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만 여주인공에겐 당연히 추가적이 사연이 필요하고, 그게 뭐냐면 그 날이 바로 자기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날이란 겁니다. 이 분은 늘 언제나 특정 시각만 되면 전화를 받고 어디로 휭하니 가 버리는데 그게 엄마가 있는 병원 전화였던 것. 이 루프가 끝나면 영원히 엄마를 못 보게 되니 차마 떠날 수가 없는 거죠.

 대략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주인공은 차마 더 이상 여자애한테 들이대지도, 탈출하자고 조르지도 못 하게 되어 루프를 시작한 이후 첨으로 집구석에 처박혀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요. 그러다 루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동생과 대화를 하게 되고, 자기가 집안 사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기 혼자만 폼 잡고 남탓하며 살았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그래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훈훈하고 건전하게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구요.

 그 시점에 여주인공도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이런 사소한 하루 속에서 겪는 작고 완벽한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이루는 게 바로 인생이란다'라는 갬성 터지는 교훈을 얻고는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삶으로 나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론은 '아주 작고 완벽한 것들의 지도'를 완성하면 루프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주인공의 근거 없는 가설이 맞았다는 겁니다. ㅋㅋ 다만 완벽하게 다 정리한 줄 알았던 이 지도에 한 가지가 빠져 있었던 거죠. 그 날 밤에 국지성 소나기가 잠시 쏟아지는데 그걸 그동안 놓쳤던 거고. 이걸 눈치 챈 여주인공이 주인공을 끌고 가서 함께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거닐고, 뽀뽀도 좀 하고 그러니 드디어 다음 날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영화 처음부터 여주인공이 '뭐 할 일도 없으니까' 집착했던 남의 집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서 둘이 함께 데려다 주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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