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9분. 스포일러 신경 안 쓰고 막 적었어요. 그런 게 있을 수가 있는 영화입니까? 전 이번에 처음 봤는데도 모르는 장면이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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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의 포스터이지만 사실 줄리아 로버츠는 얼굴만 오려 붙였다는 걸로 유명했죠. 근데 기어 아저씨 머린 왜 검은 색...)



 - LA 어딘가의 부자들 파티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잘 나가는 사업가 리처드 기어씨는 전화로 애인에게 차이고 있구요. 너무 미친 듯이 일만 해서 그렇다네요. 상심한 이 양반이 친구처럼 가까운 고용 변호사의 차를 막무가내로 빼앗아 타고서 숙소로 가겠다는데... 원래 이 동네 사람이 아니고 운전도 서툴어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성매매 여성 줄리아 로버츠에게 길을 묻고요. 잠시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사이에 이 여성의 의외의(?) 면모들에 살짝 호기심을 느낀 우주 갑부 리처드 기어님께선 한 시간에 100달러, 하룻 밤에 300달러 제안을 거쳐 결국 일주일에 3000달러 딜을 성사 시키고요. 이 둘은 그렇게 끝이 빤히 보이는 일주일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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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렇게 좀 덜 귀여운 여인으로 시작해서)



 - 자주 했던 얘기지만 전 젊을 때도, 어릴 때도 로맨스물을 딱히 좋아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그냥 안 봤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수록된 곡들은 수천 수만 번을 들었고 영화 속 '명장면'들은 스틸로든 편집 영상으로든 제 의지와 관계 없이 수백 번 이상은 접했을 거고. 또 그 장면들을 패러디한 광고나 드라마 장면들... 아니 뭐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근데 그래서 이제사 찾아 본 영화 정보에서 확인한 한국 흥행 기록이 어이가 없네요. 서울 10만명에 그 해의 흥행 30위라고요? 어째서?? 왜요??? 근데 그렇게 호들갑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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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몹시 귀여워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워킹걸'을 볼 때와 비슷한 생각을 좀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세기말 신데렐라 로맨스 유행의 시발점이 된 영화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요. 이제사 직접 그 실체를 확인하니 좀 놀랍습니다. 정말로 그 '신데렐라 로맨스'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그 자체가 장르 공식인 영화였네요. 이후 한국 드라마들에서 십여년간 지겹게 보게 되는 그 스토리들의 거의 모든 클리셰들이 다 들어가 있어요. ㅋㅋ 마음 속에 3천원을 간직한 채 삭막한 인간 행세를 하는 불운한 성장 배경의 갑부 아저씨. 인생 험하게 살지만 이상한 정도로 순수하고 순진하며 씩씩한 여주인공. 당연히 그 곁엔 절친 하나. 둘이 만나서 밀당 비슷한 걸 하며 보내는 초반 전개에 들어가 있는 에피소드들도 다 이미 아류들로 수십번을 본 이야기들이고요. 그 외에도 뭐 하나하나 말하자면 끝이 없네요. 그래서 그만 말하겠습니다만. 암튼 포인트는 정말 장르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영화였구나... 라는 겁니다.


 네 뭐 헐리웃 고전 영화들이 이미 하아안참 전에 다 세워 놓은 공식들이죠. 그건 맞는데, 그래도 세기말 한국 신분 상승 로맨스물들의 직계 조상이자 원본이 이 영화라는 건 분명하니까요. 그게 너무나도 명백한데 정작 그 본체를 이제사 보니 본체에 대한 감상이 이상해질 지경이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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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하는 척 한 후에 로맨틱 프로포즈로 마무리!! 에다가 남자는 무슨 트라우마나 컴플렉스 극뽀~옥!! 모두 다 국룰이라 하겠습니다.)



 - 이야기의 서두는 예상보다 좀 어두웠습니다. 줄리아 로버츠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살해 당한 성매매 여성의 시신을 보는 장면이라든가 (물론 영화가 시신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이어지는 친구의 시궁창스런 상태 같은 것도 그랬구요. 어차피 작정한 로맨틱 코미디인데 뭘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근데 이런 다크함이 남자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후에도 쉽게 물러가질 않습니다. 일단 이 양반 직업부터가 적대적 M&A 전문가이고 '극 중 자체 설명에 따르면' 걍 오로지 돈을 만들기 위해 아무 주저 없이 수많은 남들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양반이 여자에게 아낌 없이 퍼주는 돈의 출처가 그러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보는 내내 좀 찜찜한 기분이 들죠. 

 그리고 어쨌거나 주인공의 직업은 성매매 여성이고 이 둘은 돈으로 얽힌 계약 관계잖아요. 그리고 둘은 첫 날부터 그 계약대로 할 일을 다 합니다. 다시 한 번, 어차피 작정한 로맨틱 코미디인데 뭘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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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피아노를 잘 쳤다던. 그래서 출연 영화마다 피아노씬 넣어 달라 졸랐다던 우리 피아노 집착남 기어옹...)



 - 그러다 대략 중반쯤 가면서부터 이제 영화가 본격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할 일을 시작하는데요.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재밌는 곳이더군요.

 일단 도입부의 그 어색한 가발과 화장을 벗어 던진 줄리아 로버츠가 본인의 미모와 호쾌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기 시작하구요. 리처드 기어도 다크한 기업가에서 '알고 보면 좋은 놈이었어'로 변화하면서 심야에 식당에서 피아노 연주도 좀 해주고요. 그러면서 정말 노골적인 신분 상승 환타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데, 거기에 담긴 함의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게 참 경쾌하고 신나고 즐겁습니다. 일부러 줄리아 로버츠가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하는 장면들을 깔아준 후에 복수하고, 인정 받는 식의 전개를 통해 후련함을 안겨주는 장면들도 영리했구요. 


 암튼 이후 후배들에게 마르고 닳도록 카피되는 그 전설의 '신데렐라 스토리' 장면들이 여기에 우루루 몰려 나오는데, 원조의 클라스를 충분히 입증할 정도로 매력적인 장면들이 많았고. 또 헐리웃이 역시 좋은 건지 포스가 달라요. 그러니까 이게 결국 돈x랄(...)로 전개되는 장면들이잖아요. 근데 정말 돈을 팡팡 쓰는구나!!! 라는 생각이 충분히 들만큼 호사스럽습니다. ㅋㅋㅋ 이쯤 되면 신데렐라를 꿈꾸는 게 뭐 그리 큰 잘못인가 싶어질 정도. 제가 다 부럽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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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쫓겨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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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신 후 돌아가서 복수!!! 사이다!!!!!!?)



 - 그런데 마무리 즈음에 가면 또 이게 좀 거시기해지는데... 여기가 많이 난감하더군요.


 두 사람의 로맨스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먼저 리처드 기어가 정신을 차리겠죠. 인수 합병해서 쪼개 팔려던 기업 사장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결국 그 기업을 살려주게 되고, 그걸 반대하는 나아쁜 부하 변호사를 혼쭐 내준다는 식인데. '내가 이 영화를 제대로 보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가능한 설명은 '원래 착한 애였는데 여자 잘 만나서 정신 차렸어요'인데. 대체 줄리아 로버츠가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예쁘고 귀여웠을 뿐인데 말입니다. ㅋㅋㅋ 그러니까 개연성 멸망.


 그리고 진짜 크리티컬은 줄리아 로버츠의 '귀여운 여인'이십니다.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여운데, 문제는 그냥 귀엽기만 해요. 이런 스토리라면 당연히 주어져야 할 '그동안 그렇게 살았어야 할 핑계'가 전혀 없습니다. 본인 설명에 따르면 시골 살다 돈 좀 벌어보려고 도시로 왔다가 생계가 곤란해져서 성매매를 시작했다... 는데. 거칠게 말하면 돈 쉽게 벌고 싶어서 성매매를 했다는 거랑 별 다를 바가 없어서 일단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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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르의 공식 중 또 하나인 귀부인 수업 장면. 여기엔 과묵하고 프로페셔널한 수트빨 집사 아저씨가 함께하는 것이 또...)



 게다가 영화 내내 이 양반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내용이 전혀 없어요. 뭐 다른 일을 잘 하는 게 있냐 하고 뚫어지게 째려봐도 그런 거 안 나오구요. 되게 정의로워서 리처드 기어를 혼쭐을 내며 인성 개조를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내내 리처드 기어의 그 찜찜한 돈세례를 귀엽게 즐기다가 나중에 정색하고 하는 얘기가 뭔지 기억하십니까. 자긴 어려서부터 백마 탄 기사님에게 구출되는 공주님이 되고 싶었대요(...) 


 그나마 막판에 리처드 기어의 '좋은 아파트 마련해 줄게'라는 제안을 거절하는 게 유일하게 영화 주인공다운 행동인데, 그건 죽어도 싫다고 거절한 양반이 그 남자가 집으로 찾아오니 좋다고 달려 나가는 건 또 뭔지 모르겠습니다. 로맨틱한 이벤트가 없어서 그랬던 걸까요? 허허. 마주 보고 미소 짓는 두 주인공이 참 훈훈하고 보기 좋긴 한데, 여주인공 캐릭터가 이 모양이니 그렇게 상쾌한 기분이 안 들더라구요. 결국 리처드 기어는 보기보다 쉬운 남자였을 뿐이고. 그동안 자기 처지에 뭐 억울할 것 하나 없는 처지였던 줄리아 로버츠는 평생 꿈대로 '백마탄 왕자님' 얻어 걸려서 신분 상승하게 된 운빨 캐릭터였을 뿐이고. 그게 전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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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한의 인내력으로 오페라 안 졸고 끝까지 보기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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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자 득템!!! 이예이!!!!!!!)



 - 대충 마무리하겠습니다.

 오해하실까봐 강조하지만 재밌게 봤습니다. ㅋㅋㅋ 두 주인공 참 매력적이고. 이후에 지겹도록 되풀이 되는 신데렐라 로맨스지만 원조의 품격이랄까, 어지간한 후배들보다 훨씬 그 '신데렐라'스러움을 잘 풀어내서 구경하는 재미가 좋아요. 음악들도 그 시절 영화답게 중요한 장면들마다 한 방이 있는 곡들을 잘 골라 넣어서 흥을 한껏 끌어올려 주고요. 분명 재밌게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만.

 제 예상보다도 훨씬 더 옛날 옛적 이야기더라구요. 이렇게 한심하고 얄팍한 신데렐라라니, 아무리 리즈 시절 줄리아 로버츠의 비주얼로 강력 무장한 신데렐라라고 해도 21세기 가치관으로는 참 용납이 안 되는 괴상한 캐릭터였습니다. 늘 하는 얘기로 전 아무리 옛날 감성과 사상으로 무장해서 시대에 뒤쳐진 영화라고 해도 그냥 재밌기만 하면 다 덮어두고 즐기는 편인데. 이 캐릭터는 선을 좀 많이 넘었어요. 유치하고 뻔한 핑계라도 만들어 주지 좀...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재밌게 잘 봤습니다만. ㅋㅋㅋ '고전' 대우를 받으며 오래 남기엔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았네요. 뭐 그랬습니다.




 + 개인적으로 가장 어이 없게 웃겼던 장면. 중간에 줄리아 로버츠가 리처드 기어의 3000달러를 반사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근데 그러는 동안 이 양반은 내내 리처드 기어가 사 준 옷가지들을 부둥켜 안고 있습니다. 호텔을 나가려 할 때도 들고 나가요. 최소 서너벌은 되어 보이던데, 당연히 최고급 명품 브랜드 옷 들이니 그것만 해도 3000달러는 되고도 남았을 겁니... (쿨럭;)



 ++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찾아보니 전반부의 그 다크한 전개에 대한 정보가 있더군요. 뭐 저만 몰랐겠습니다만, 원래 각본가님께선 이걸 원래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아주 진지하고 다크한 이야기로 쓰셨다구요? 마지막에 계약대로 3천 달러 받고 내쫓기면서 끝이고. 리처드 기어는 끝까지 그냥 돈에만 미친 놈으로 끝이면서 진짜 연애 같은 것도 없구요. ㅋㅋㅋ 해피 엔딩 로맨스로 방향을 튼 후에도 영화 촬영 중에 계속해서 각본을 고쳐대서 배우들도 이야기가 어떻게 가는 건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답니다. 암튼 그렇게 의구심 해결... 이긴 한데. 어쨌든 그래서 이야기가 좀 어색합니다. 심지어 초반부엔 음악도 안 깔고 화면도 칙칙하게 가서 중반 이후랑 다른 영화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렇게 어색하게 섞인 모습이 이 영화의 원조격인 '마이 페어 레이디' 영화판이랑 닮은 게 재밌기도 하네요.



 +++ 추억의 배우님 한 분이 또 보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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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라 산 지아코모. 1989년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에서 섹시한 역을 맡아 주목 받고 바로 다음 해에 이 메가 히트작에도 소소하게 괜찮은 역으로 얼굴을 들이미셨습니다만. 이후로는 딱히 존재감을 드러내신 적이 없으셨던 걸로.

 ...그래도 역시 지금까지 왕성하게 잘만 활동 중이시구요. ㅋㅋㅋ 이제 보니 '배리'에도 나오셨네요? 뭘로 나오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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