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4 11:49
- 2019년작이고 장르는 호러&판타지라고 적혀 있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런닝타임은 1시간 51분. 스포일러 없겠구요.
(샘 레이미의 칭찬이 박혀 있는데, 그럴만하단 생각이 듭니다. 완성도를 떠나 취향이 통하는 부분이 꽤 있어요.)
- 대략 1960년대쯤 되어 보이는 미국이 배경입니다. 아주 한적해서 도대체 고객이 어떻게 알고 찾아올까 싶은 숲속 깊은 곳에 고색창연한 '옛날 호러 영화 건물'이 하나 있고, 장례식장이에요. 여기엔 왕년에 불사신으로 크리스토퍼 램버프와 한 판 붙었음직하게 생긴 할배 하나가 혼자 살며 사람들 장례를 치러주고 있죠. 그 날은 어린 소년의 장례를 치러주고 쉬고 있는데, 한 젊은 여자가 문 앞에 붙여 놓은 구인 팻말을 보고 왔노라며 찾아옵니다. 우리 할배님은 참으로 고색창연한 옛날옛적 '무섭고 수상한 할배' 포스로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며 집안 구경을 시켜주고. 패기 넘치는 젊은이는 '뭐 고객들에 대한 좀 희한한 사연 같은 거 없어요?'라고 할배를 도발하며 재밌는 얘길 해달라네요. 네... 그런 것입니다.
(영화의 느낌과 컨셉을 한 방에 이해시켜주는 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그러니까 결국 그 클래식 B급 호러 분위기 물씬 풍기는 공포 저택에서 수상한 할배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 모음집 형식인 것이죠. 거의 아무 줄거리도 없이 짧은 애피타이저 하나와 본편 세 편을 보여준 후 당연히도 액자 역할을 하는 할배와 여자 이야기로 돌아와 마무리됩니다.
2019년작이니 탑골 영화와는 아주 거리가 멀지만, 제목에 적은대로 컨셉이 탑골이에요. 요즘엔 시시한 유령의 집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70~80년대 B급 호러 영화풍의 비주얼로 잔뜩 치창한 액자가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혹시 멀쩡한 호러 영화 하나 건질 수 있을까... 해서 재생 버튼을 눌렀던 저로선 참으로 당혹스런 일이었습니다만. 어쨌거나 그 컨셉은 참으로 정성들여 잘 살려 놓았으니 그 시절 그런 스타일 호러 영화들에 추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정말 1도 안 무섭지만 암튼 추억 버프로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구요.
(젊어서 하이랜드 깨나 패고 다녔을 것처럼 생긴... ㅋㅋ 이 분도 약간 아놀드처럼 어색한 외모와 연기를 캐릭터로 승화시키신 느낌이 있습니다.)
- 하지만 어쨌거나 2019년 영화라서 액자 속에 담긴 짧은 이야기들은 그렇게 탑골스럽지 않습니다. 근데 이게 참 뭐랄까, 좋게 말하면 오묘하게 나쁘게 말하면 애매합니다. 그냥 21세기스런 호러 소품들을 탑골 스타일로 살짝 분칠해 놓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애피타이저를 빼고 나머지 셋만 놓고 보면 소재나 표현 방식 같은 게 다분히 21세기스럽거든요. 시대를 21세기로 바꿔도 아무 문제 없는 이야기들이기도 하구요.
특히 첫 번째 이야기가 그래요. '남자들이여, 콘돔을 쓰라!'라는 참으로 건전한 교훈을 담고 있는 요 이야기는 소재부터 전개까지 넘나 요즘 이야기이고 탑골스럽고 B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요소라면 그저 투박하게 팍팍 전개되는 살짝 투박한 완성도 밖에 없어요.
('키싱 부스'의 인기남께서 극비호감 바람둥이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치십니다.)
결혼과 동시에 전신 마비가 와 버린 아내 간병에 지친 남편의 극단적 선택을 그린 두 번째 이야기는 그래도 어느 정도 '옛날 영화' 느낌을 많이 줍니다만. 역시 클라이막스로 가면 21세기스러운 장면 연출들이 튀어나오며 컨셉이 좀 깨지는 느낌... 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꽤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서 괜찮았구요.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샘 레이미가 좋아했을 것 같단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습니다. ㅋㅋ)
마지막 이야기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에 하고 많다는 베이비시터 관련 도시 전설스런 분위기와 함께 '할로윈' 같은 영화를 살짝 흉내내는 연출이나 전개가 괜찮긴 한데, 결말부의 반전 같은 건 그냥 딱 21세기스럽죠. 그 시절에 이런 결말로 끝나는 영화가 있었다면 아마 매니아들 거느린 명작 대우를 받았을 거에요. 요즘 시국에 볼 땐 너무나 뻔한 결말이지만요. ㅋㅋ
- 그런데 사실 요 세 이야기들이... 그럭저럭 볼만합니다? ㅋㅋ
런닝타임을 보면 아시겠지만 편당 30분도 안 되는 짧은 이야기들인데. 나름 다 컨셉이 있고 아이디어들이 있어요. 좀 오버하기도 하고 살짝 모자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성실하게 뭐 하나라도 아이디어를 짜내고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 보려 노력한 흔적들이 있구요. 결과적으로 지루하지는 않고, 살짝 사악하게 웃기기도 하면서 별 탈 없는 무난한 결말을 만들어 보여줍니다. 어디가서 막 칭찬 받을만한 이야기들은 아니어도 그냥 '무난하게 괜찮은' 수준에서 살짝 그 이상들은 되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세 가지 이야기들을 다 보고 나면 다시 탑골 컨셉에 충실한 액자로 빠져나와서 컨셉에 충실한 정겨운 분위기로 끝을 맺죠. 정말 하나도 안 무섭지만 그냥 흐흐 웃으며 셀프 추억팔이할 정도의 재미와 완성도는 된다는 느낌.
(그러니까 이런 느낌 좋아하시면 보면 됩니다. ㅋㅋㅋㅋ)
- 중요한 얘기는 다 했고 이번엔 글이 그렇게 길지도 않으니 결론을 따로 정리할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그냥 하던 버릇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뭐 '테일즈 프롬 더 크립트' 같은 스타일을 재현하고자 애 쓴 B급 호러 무비입니다.
특별히 훌륭한 수준까진 몰라도 특별히 나쁜 수준과는 거리가 멀구요. 그냥 "요즘 보면 하나도 안 무서운 옛날 호러 영화들 분위기를 오랜만에 한 번 즐겨보세" 와 같은 맘으로 가볍게 볼만한 영화였어요.
그러니 그런 싱거운 옛날 호러 영화들에 추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럭저럭 두 시간 잘 죽일 수도 있겠다. 뭐 딱 그 정도였습니다. 샘 레이미의 극찬! 같은 데 크게 신경 쓰지는 마시고요. ㅋㅋ 언제나 그렇듯 전 그럭저럭 잘 봤지만요.
+ 근데 요즘 영화들이 PC함을 추구하는 건 아주 바람직한 일이지만
대략 50~60년대 미국 대학교의 남학생 사교 클럽 멤버로 굳이 동양인을 넣어둘 필요까지 있나... 싶기도 하구요. ㅋㅋ 게다가 스타일 넘나 21세기인 것...
2022.03.24 11:56
2022.03.24 14:19
전 그 iptv 영화 요금제로 무료라서 봤지요. 구독 서비스들에 익숙해지니 단품 1500원은 나름 거대한 장벽 맞습니다. ㅋㅋ
이 게임 해 본 적은 없는데 보여주신 이미지랑 스샷 같은 건 오래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아요. 기억이 새록새록... 나긴 하는데 말씀대로 이야기 방식은 전혀 다르네요. 하하;
2022.03.24 14:32
티빙에 있어요!
2022.03.25 14:54
오.. 티빙은 네이버 멤버쉽요금이라 화질이 좀 나쁜게 아쉽지만 좋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2022.03.24 12:49
2022.03.24 14:22
찾아보니 의외로 평가가 되고 높은 영화였습니다만. 평들을 찾아 훑어보면 대부분 비슷하더라구요. 탑골 호러 갬성을 잘 살려냈다! ㅋㅋㅋ
마마 괜찮았죠. 서양판 전설의 고향 느낌.
2022.03.24 14:31
가볍게 보기 좋겠네요. 사교클럽 동양인 캐릭터는 이런 영화에서 재미를 해칠만한 요소가 아니라고 봐서 별 상관없지 않을까 하네요. 고증이 중요한 영화라거나 인종으로 어떤 메시시나 재미를 구성할 게 아니라면요. 무대극의 경우 동양인들이 서양인인 척 연기를 하고 다들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잖아요. 그런거 생각하면 바다건너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블라인드 캐스팅했다고 블라블라 말들이 있었다는데 그게 뭐? 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미래 한국이 미국처럼 다인종 사회가 되어 비록 로맨스 사극이라도 흑인, 백인이 선조 시대 궁정대신으로 나온다면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것 같긴 합니다. 근데 미국 60년대 사교클럽은 나랑 딴 나라 얘기라ㅎㅎ
2022.03.24 15:33
네 그냥 가볍게 보기 딱 좋습니다. 그래뵈도 이거 무려 '극장 개봉작!'이기도 해요. 알고 보니 제 누이께서 이걸 극장 가서 보셨다고... ㅋㅋ
저 동양인 캐릭터가 거슬리거나 했던 건 아니에요. 근데 아예 별 의미도 비중도 없는 캐릭터라 '굳이' 라는 생각이 좀 들었던 거죠. 차라리 비중이 좀 있는 역할이었음 애 많이 썼구나!! 했을 텐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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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보고 관심을 가졌는데 옴니버스군요! 가볍게 보기 무척 좋아보이는데, 1500원이 참 장벽 아닌 장벽이네요 ㅎㅎ
사실 제가 포스터를 보고 관심을 가진건 제가 좋아하는 어드벤처 게임인 블랙웰 시리즈가 떠올라서였어요. 귀신을 볼 수 있는 여성 주인공이 딱 저렇게 생긴 귀신의 도움을 받아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데.. 별 상관은 없는 모양이네요 ㅎㅎ 게임 포스터입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f/f5/Blackwell_Legacy_poster.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