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영화입니다. 장르는 글 제목대로 스릴러구요. 런닝타임은 1시간 45분. 스포일러는 맨 끝에 흰글자로 적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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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누굴 앞에 세우고 누굴 위에 올리고 이런 게 참 기준이 없지만 그래도 올가 쿠릴렌코 하난 이유를 알겠네요. ㅋㅋ)



 - 제목 그대로 '9명의 번역가'들이 프랑스로 입국하는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각자의 배경을 짧게 보여주지만 뭐 큰 의민 없구요. 이들은 세계적 탑 베스트셀러 '디덜러스'라는 작품의 번역을 위해 모였어요. 워낙 인기작이고 작품성까지 순수 문학계에서도 인정 받을만큼 위대한 미스테리 소설인지라 출판사에서 '스포일러를 철저히 차단한 환경에서 동시에 번역해서 동시에 전세계 출간한다'는 계획을 세운 거죠. 애초에 작가 본인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의 인물이고 그러니 어울리기도 하네요.

 그래서 이들은 우리 편집자 랑베르 윌송씨의 인도로 호화 지하 벙커에 감금된 채로 매일매일 배급되는 양만큼을 번역하게 됩니다만. 갑작스레 자기가 원고를 갖고 있다며, 돈을 내놓지 않으면 이걸 조금씩 인터넷에 풀어 버리겠다는 협박 메일이 윌송씨에게 도착하면서 상황이 험악해지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이 일이 평화롭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영화 시작 부분에서 보여줬어요. 이 모든 이야기는 교도소 면회실에서 윌송씨가 뉘신지 모를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와중에 플래시백으로 전개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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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20세기 대한민국 고3도 아닌데 이렇게 번역 일을 합니다만. 그래도 밥도 잘 주고 여기 외의 시설은 괜찮습니다.)



 - 일단 영화의 제목과 소재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는 게 순서일 것 같은데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9개국에서 모인 9명의 번역가들이 주요 캐릭터로 나오고, 영화 시작 부분에 상냥하게 '나라별로 자막 색깔을 이렇게 저렇게 해서 보여줄테다'라고 안내까지 하니 뭔가 이질적 언어들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전개에 영향을 줄 것 같잖아요. 제목에도 떡하니 '번역가'라는 단어를 넣어 놨구요. 그래서 무슨 '언어' 그 자체를 활용한 지적인 스릴러 같은 걸 기대하시면 깊이 마음 상하십니다. ㅋㅋㅋ 그런 거 아니에요. 전혀 아닙니다. 그냥 이야기 설정상 번역가들이 와장창 나온다 뿐이지 그게 이야기 전개에 미치는 영향은 1도 없구요. 심지어 이 인간들 대부분 프랑스어를 잘 하는지라 (그러니까 프랑스 소설을 자국어로 번역하겠죠) 다 함께 프랑스어로 소통 잘 하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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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다시피, 뭐 그렇습니다. ㅋㅋ 세계 공용어를 프랑스어로!!!)



 - 대신 이게 소설과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와 편집자들이 주요 인물과 배경, 소재로 나오는 이야기이니만큼 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꽤 많이 하구요. 또 그게 이야기의 중요 소재인 건 맞아요. 그러니까 돈을 벌고 수익을 내겠다는 지상 목표로 '문학 작품'을 대량 생산 공산품처럼 기획해서 팔아대는, 그러면서 정작 창작자 본인은 소외되는 (돈은 벌지만!) 풍조에 대한 개탄이라든가. 번역가라는 존재의 현실적 고달픔이라든가... 이런 게 이야기 안에 쏙쏙 박혀 있고 또 전개에 영향도 미치고 그럽니다. 그래요. 그렇기는 한데요. 가만 생각해보면 딱히 뭐 그렇게 참신하다든가, 깊이 있다든가... 그렇게 파는 느낌은 아니구요. 

 결국 이 영화는 그냥 '그런 소재를 활용한 미스테리 스릴러' 입니다. 번역, 언어, 문학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이 영화를 기대하시는 분들이라면 딱 그만큼을 기대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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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계의 현실! 같은 걸 진지하게 다뤘다기엔 표현이 너무... ㅋㅋ 암튼 윌송 아저씨 정말 오랜만에 반가웠구요.)



 - 네... 그래서 이제 미스테리 스릴러 쪽 이야길 해야겠는데요.


 일단 제겐 감상 시작부터 호감을 상당히 먹고 들어갔습니다. 왜냐면 이게 글 제목에도 적은 것처럼 퍼즐 미스테리 분위기잖아요.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 이 중의 누군가가 아니면 벌일 수 없는 범죄가 벌어지는데 이들 모두에게 알리바이가 있고. 서로 의심하는 가운데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내보려 모두가 노력하고 머리를 굴리며 서로 의심하고... 그냥 이 설정 자체가 좋아서 많이 관대한 기분으로 봤습니다. ㅋㅋ


 다만 퍼즐 미스테리로서 얼마나 완성도가 높은가... 를 생각해보면 음. 그게 부족한 부분들이 좀 많아요.

 예를 들어 범인이 너무 뻔합니다. 너무 뻔해서 어떻게든 다른 캐릭터를 범인으로 만들만한 핑계가 없나 고민을 하며 영화를 봤는데, 결국 끝까지 범인은 뻔했어요. ㅋㅋㅋ

 그리고 이야기가 좀 과하게 멀리 나갑니다. 중반 이후로 편집자 아저씨가 범인 잡겠다고 벌이는 짓들은 정말 말이 안 되죠. 이 번역가들을 다 남몰래 죽여서 처리해 버릴 생각이 아니었다면야 도저히 할 수 없는 짓들을 계속 하니 긴장감을 느끼기 전에 먼저 살짝 벙 찌는 느낌이 있구요.

 마지막으로 마무리는 또 많이 전형적이에요.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다 계획된대로!! 라는 천재 빌런 마무리인데요. 이런 천재 빌런의 음모 류의 이야기가 거의 다 그렇듯이 '운이 참 좋은 빌런님이시군요'라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덧붙여서 아홉명의 번역가 + 편집자 하나 까지, 중요 인물만 10명을 배치한 이야기인데 클라이막스 즈음에 가선 다른 인물들은 다 사라져 버리고 빌런과 편집자 둘만 남아 버리는 것도 좀 아쉬웠어요. 앙상블 영화 같은 걸 기대하심 절대로 안됩니다. '이 정도 배우를 데려다 이런 역할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좀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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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아무리 큰 돈이 걸렸다 해도 이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유럽에서? 뒷수습을 어쩌려고... ㅋㅋㅋㅋ)



 - 하지만 인간은 갬성의 동물 아니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처음부터 호감 먹고 들어갔기 때문에 결국 재밌게 봤어요. ㅋㅋㅋ


 앞서 말한대로 범인은 정말로 뻔합니다. 하지만 각본가들도 생각이 있어서, 범인의 정체를 중후반쯤에 아직 런닝타임 한참 남겨 놓고 갑작스레 그냥 밝혀 버려요. 그런데 아직도 남은 런닝타임을 채울만한 이야기가 충분히 있습니다. 말하자면 '후더닛'으로 시작해서 '하우더닛'으로 옮겨간 다음에 '와이더닛'으로 마무리한달까요. 그리고 이 '어떻게'와 '왜'가 '누가' 대비 상당히 괜찮습니다.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어차피 구식 퍼즐 미스테리 분위기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그런 거 너무 깐깐하게 따지는 것도 좀 그렇구요. ㅋㅋ 그냥 재밌어요. 대단할 건 없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하게 구색 맞춰보려고 성의 있게 애 많이 썼구나... 라는 정도는 됐구요.


 또 글 처음에 '이런 쪽으론 기대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던 언어니 문학이니 번역이니... 하는 것들 있잖아요. 결국 그게 하나하나는 대수롭지 않은데, 그것들이 기둥 줄거리에 모두 합쳐지면 나름 개성 있고 재미난 디테일들이 됩니다. 그냥 '재밌는 디테일' 정도로 흘러가 버리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런 장르에서 이 정도 차별성 획득하고 가는 이야기도 요즘 흔치 않으니까 보는 관점에 따라선 장점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낭비된 감은 있지만 어쨌든 꽤 이름 있고 인정 받는 경력직 배우들이 우루루 나와서 각자 밥값을 열심히 해 주니 보기도 좋고, 또 이야기에서 좀 아쉬운 부분들이 그럭저럭 커버도 되고 그렇습니다. '매트릭스'에도 나왔던 랑베르 윌송 아저씨 반가웠구요. '빌어 먹을 세상 따위'에서 귀여운 찐따 역을 참 잘 해줬던 알렉스 로우더의 오타쿠 연기도 괜찮았구요. 올가 쿠릴렌코는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우시고. 에두아르도 노리에가는 참 오랜만에 봤는데 역할이 하나도 안 멋진 역이라 좀 당황했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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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리비리하고 좀 칙칙하지만 귀여운 소년에서 비리비리하고 좀 칙칙하지만 귀여운 청년이 되셨습니다.)



 - 암튼 뭐 그래서...

 막 되게 훌륭한 이야기라든가. 깊이 있는 메시지라든가. 혹은 그냥 장르적 완성도라든가... 이런 것들을 하나 하나씩 따져 보면 다 좀 아쉽고 모자란 기운이 있는데요. 그게 모두 합체된 전체적인 모양새는 또 나쁘지 않았던 영화였습니다.

 그러니 어느 쪽으로든 큰 기대는 마시고 그냥 나름 성의 있게 만든, 가볍게 보기 좋은 스릴러 무비 하나 보자. 라는 맘으로 보면 그럭저럭 괜찮게 보실 수 있어요. 저 처럼요. ㅋㅋ

 왜 정색하고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이 지적질할 수 있는데 왠지 전체적인 인상은 괜찮고. 그래서 별 악감정은 안 드는 영화들 있잖아요. 이 영화가 제겐 그랬습니다. 재밌게 봤어요.




 + 또 이게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보니 각 캐릭터들이 자기 출신국을 대표하는 식의 캐릭터 설정이 보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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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넼ㅋㅋ 나랔ㅋㅋㅋㅋ 부도났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 이라고 내내 놀림당하던 불쌍한 그리스 아저씨. ㅠㅜ



 ++ 근데 이렇게 번역가들이 우루루 주역으로 나오는 영화 치고는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해 그다지 애정이나 관심이 없는 느낌인 게 좀 그랬어요.

 문학 하려다가 글빨 딸려서 포기한 애들이 하는 게 번역. 이런 뉘앙스의 상황이 몇 번 벌어지는데, 빌런이야 빌런이니까 그런 식으로 굴 수 있지만 영화가 그것에 대해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달까(...)



 +++ 스포일러를 적어 봅니다. 흰 글자! 원하시는 분만 긁어보기!!! 오늘은 스포일러가 참 깁니다. 안 긁어보실 분들에겐 죄송...;


 처음부터 대놓고 수상했던 데다가 영화 내내 얼굴에 '나 주인공' 이라고 새겨 놓은 듯이 행동하던 우리 알렉스 로우더군이 범인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교도소 면회 장면이 나올 때마다 윌송 아저씨만 보여주고 맞은 편 사람을 안 보여주는데 중반 좀 넘어가서 뙇! 하고 얘를 보여줘요. 그리고 거기에서 한 가지 심플한 반전 하나가 더 나옵니다. 지금껏 윌송이 교도소에 면회를 온 듯한 분위기였는데, 사실은 수감된 게 윌송이에요. ㅋㅋㅋ 벙커에서 범인 잡는다고 난리를 치다가 번역가들 중 한 명을 총으로 쏴 버렸거든요.

 모두가 벙커에 있었는데도 계속해서 협박이 올라온 건 당연히 예약 발송 이메일이었구요. (여기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이 서비스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게 참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뭐 일단 그러려니 하구요.) 


 근데 그 예약 발송 이메일에 보면 번역가들이 이 벙커에서 생활하면서 했던 대화, 불렀던 노래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거든요? 이건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이게 단독 범행이 아니었던 거죠. 알렉스 로우더가 여기 불려오기 전에 미리 다른 나라 번역가들을 파악하고서 원고 탈취 계획을 짰고, 그래서 벙커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원고를 확보한 상태였던 겁니다. 그러고선 그냥 번역한다고 들어와서 윌송을 헷갈리게 만든 건 이게 순전히 윌송을 엿먹이기 위한 행동이었기 때문이구요.


 그럼 대체 얘는 왜 윌송에게 이렇게 한이 맺혔냐. 그건 얘가 바로 '디덜러스'의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ㅋㅋㅋ 사회성 떨어지는 히키코모리성 책벌레 젊은이가 자기가 맨날 가는 서점 아저씨의 관심과 애정과 조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완성한 첫 작품이었고. 서점 아저씨가 이 소설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간곡하게 설득해서 출판을 했고. 근데 알렉스가 익명을 원했던 관계로 서점 아저씨가 본인이 쓴 것처럼 하면서 옛날 자기 제자였던 윌송의 출판사에 이 작품을 맡긴 거였죠. 


 여기까진 좋았는데, 돈맛을 본 윌송이 과도하게 마케팅에 치중하자 '내 소중한 작품에 그러지 말라능!'이라고 분노한 알렉스가 출판사를 옮기겠다고 결정했고. 원작자인 척 하고 있던 서점 주인 아저씨가 윌송에게 이 말을 전했고. 당장 돈이 절실한 상황이었던 윌송이 빡쳐서 서점 주인을 죽이고 사고로 위장한 후 시침 딱 떼고 '디덜러스'를 출판하려 했던 겁니다. 어차피 자기 말곤 원작자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ㅋㅋㅋㅋ


 여기서 또 반전이. 사실 윌송씨는 경찰에게 뭐라뭐라 얘길 해서 지금껏 도청 장치를 달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알렉스가 당연히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태도로 마이크를 막은 채 '내가 원작자거덩' 이라고 말을 하구요. 이러쿵 저러쿵 조롱을 하며 윌송을 빡치게 만들어서 홧김에 살인을 자백하게 만들어요. 그 순간엔 마치 예측했다는 듯이 마이크를 막은 손을 떼는 건 당연하겠구요.


 그래서 윌송의 인생은 완벽하게 골로 가고. 여유롭게 교도소를 떠나는 알렉스의 모습으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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