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는 옛 중화민국대사관과 현 한성화교소학교를 중심으로 중화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100년 전에는 남대문부터 일본인 거주지인 메이지쵸(현 명동입구)까지 거대한 차이나타운이었죠. 일제가 이들의 세를 갈라놓을 목적으로 건설한 게 하세가와쵸, 그러니까 현재의 소공로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 정부는 구 차이나타운의 한복판에 프라자호텔을 세워놓았죠. 여튼 그래서, 서울의 차이나타운은 이런저런 역사에 부대껴 오면서 현재의 모양으로 명동 한켠에 쭈그러들게 됩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부지는 참 격세지감이죠. 미국대사관보다도 가까운 데 앉아서 청와대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모양새.)
그런데 이 도삭면집 '란주라미엔'은 그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좀 비껴나 있는 특이한 곳입니다. 우선 전통적인 차이나타운의 역사와 궤적이 다른, 신흥 중국집입니다. 위치도 명동 중앙우체국을 사이에 두고 전통적인 중화가인 북쪽보다는, 오히려 일본인들의 거리에 가까운 남쪽 사이드(=신세계백화점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죠. 한 마디로 과거의 유산이 아닌 21세기의 중국음식점이 현대에 새로 자생한 곳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급하는 메뉴는 만두와 도삭면 - 반죽을 얇은 칼날로 슥슥 깎아내어 삶는, 칼국수와 수제비의 중간쯤에 있는 전통 중화 면요리입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라미엔(납면)'이라고 써 놓았길래 라멘집인줄 알고 그냥 지나쳤더랬죠; 납면 자체가 중국 남부지방 탕면요리고, 여기서 파생된 게 라멘이니 그냥 일본라멘 붐을 타고 뭐가 하나 생겼겠거니 했던 겁니다(....) 거기가 도삭면 집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블로그에 어떤 분이 달아 준 댓글 덕이었지 아니면 아직까지도 걍 지나다니고 있었을 듯?;;;
이 집은 만두도 괜찮지요. 이렇게 가게 밖 찜통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옵니다.
솔직히 이 가격(4천원)에 이 정도 퍼포먼스면 취천루 못지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말 난 김에 굳이 취천루와 비교하자면, 란주라미엔 쪽이 더 돼지 풍미가 강합니다. (*하지만 인근 향미의 명물인 야구공만두만큼 향취가 강하진 않습니다. 향미 쪽은 건어물 풍미라서..)
이를테면 취천루는 범용이고, 이 쪽은 육향이 난다고나 할까요.
만두는 포장도 됩니다. :D
부추만두는 이렇게 생겼구요.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봅니다. 중국풍 물씬 나는 검은 현판.... 어딘가의 도교사찰 문 떼다놓은 듯한 인테리어가 흡사 복성각을 연상시킵니다.
화교 요리집에 빠질 수 없는 밑반찬, 짜차이.
주방. 아쉽게도 도삭면 슥슥 자르는 퍼포먼스는 안 보이는 구조. (퍼포먼스 모습은, 반대편 벽의 사진으로 달래봅시다.)
가게 밖에는 이처럼 메뉴 모형이 있습니다.
란주납면 ㅡ 이라고 써놓았군요. 납면의 설명은 위쪽에서 했죠.
메뉴판. 대충 4~6천원대 사이에서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제 여기에 써 있는 대표적인 도삭면 메뉴들을 하나씩 봅시다(.....)
우선, 화조도삭면부터 시작합니다.
간장 베이스의 녹말 걸죽한 탕면입니다. 그야말로 중국면이라는 느낌. 사실 화조도삭면부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가장 중국스러운 면 같아서였죠.
그리고 바로 이것이 도삭면의 면발입니다.
수제비와 칼국수 면발의 중간 어디 즈음인데, 이걸 한 가락씩 건져올려 먹는 것도 나름 새맛이지요. 걸죽한 탕면의 윤기가 자르르르하는 게 군침이 돕니다.
해선도삭면입니다.
일반 중국집에서 흔히 보는 울면에 가까운데, 맛이 시원하고 개운해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더군요.
신사천도삭면. 사천풍이라기보다는, 한국화한 매운맛입니다.
그런데 이 메뉴를 시키면 밑반찬이 다른 메뉴와는 조금 다른 상차림을 합니다.
흡사 요즘 바지락칼국수집에서 자주 보이는 마수걸이용(?) 보리비빔밥을 내놓더군요. 위장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일까요? (냉면 꾸미의 계란 삶은 거 반개마냥...)
근데 매운 거 못 먹는 일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명동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많으니...) 한국 사람들 입맛에는 걍 쇠고기탕면 정도입니다(...)
위에서 '사천풍이라기보단 한국화된 매운맛'이라고 평한 건 이 때문입니다. 쇠고기육개장 풍미더군요.
물론 도삭면의 식감을 이 국물에 말아 먹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겠지요.
그리고... 게살도삭면. 개인적으로는 이게 대박이더군요.
위의 신사천도삭면에 딸려 나오는 꽁보리비빔밥도 그렇지만, 메뉴마다 밑반찬이 다른 구성으로 나온다는 건 메뉴 연구 많이 했단 얘기겠죠. 이 게살도삭면의 경우에는 국물이 슴슴한 편이기 때문에 매운맛 강한 김치가 곁들여집니다.
ㅡ 바로 명동교자 스타일의 그 마늘맛강하고 매운 김치입니다. 명동교자만큼은 아니긴 한데, 여튼 이런 거 보면, 자잘한 사항들이긴 하지만 이런 것에서 노력이 느껴집니다. 메뉴 연구 꽤 많이 했는 듯.
어쨌거나, 위에서 "바로 이 게살도삭면이 대박이다" 라고 평했는데... 그 이유는 무려 청요릿집-_-에서 보이는 '그' 게살스프 베이스에다가 면을 텀벙 말아 내오기 때문(....)
그래서 다른 메뉴보다 2~3천원쯤 더 비싼 8천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8천원에 이 정도의 게살스프(조금 묽지만..)를 면에 말아 먹는다면 제 경우에는 기꺼이.
면의 식감이 쫄깃쫄깃, 흡사 수제비 먹는 것처럼 재미있기 때문에 게살스프와도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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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짜장도삭면이나 만두국 같은 메뉴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제 경우에는 만두 가격이 착한데 맛있어서 (딤섬은 아닙니다..걍 만두임) 발걸음을 자주 하는데 도삭면도 가끔 생각날 때 시도해 보면 좋은 외식거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로서 명동에 가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는 셈.
음- 저는 누들로드 보고 난 다음에 지나가다 보고 도삭면이다! 그러면서 들어갔었는데 기대가 컸던지 그냥 수제비 같았어요.ㅡ.ㅜ /오늘 저녁 때 향미에서 우육탕면이랑 돈까스 먹었는데 01410님 글 생각나서 추운데 길거리에서 스맛폰으로 듀게 검색질한 거 문득 생각나네요.ㅎㅎ 전병에 대한 글을 막 찾았더랬죠.
ㄴ가끔 옆테이블에서 얼근하게 아저씨들이 한잔 하시더군요 부엌자객/ 맛도 딱 육개장... 아니 쇠고기국입니다. (이건 뭐 강남의 거시기 그 집 우육면도 그랬지만..) 굶버스님/ ... 너무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어디서본겁니까 ㄷㄷ 아실랑아실랑/ 월병이라고 찾았으면 조금 더 빨랐을..지도요?[..] Apfel/ 이런저런 이유로 격조했습니다.
도삭면을 상당히 얇게 잘 깎으시는 분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두툼해서 묵직한 식감의 도삭면도 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정도의 두께가 잘 익고 다른 재료와도 잘 어우러지죠.
근데 가게 이름이 '난주라면'이든가 '란저우라미엔'이 아니라 '란주라미엔'이군요. 라미엔은 발음이 어렵지 않으니 그냥 쓴 걸까요?
실은 왜 '라미엔'이라고 했는지도 조금 궁금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잠깐 보았던 CCTV 다큐에서는 '라미엔'은 '랍(拉: 끌다. 당기다)'해서 만든 면이라서 '라미엔'이라고 한다고 했었거든요. 즉, 수타로 반죽을 만든 후 죽죽 늘여 면을 뽑아낸 것이 '라미엔'이라는 이야기였는데, 도삭면은 당겨서 만든 면이 아니니까요. 뭐, 그건 그냥 하나의 어원 설명일 뿐이고, 현재는 혼용되어 쓰일 지도 모르겠지만요. 참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명이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