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면의 운동

2023.03.03 15:42

Sonny 조회 수: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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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의 [탑건: 매버릭]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이제 톰 크루즈의 영화에는 탈 것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이나 크게 요동치는 장면이 무조건적으로 들어가죠. 그렇기에 [탑건: 매버릭]은 톰 크루즈 필모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가 몰 수 있는 기체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높이 떠서 다니는 것은 전투기이니까요. 그의 대표작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만 해도 이렇게 탈 것이 질주하는 장면이 핵심 스턴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혹은 그의 모든 영화가 레이싱의 속도경쟁 혹은 사고를 다루는 알리바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톰 크루즈의 제작자로서의 취향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장면이 없이는 액션이라는 장르 혹은 영화라는 장르가 성립하지 않는지 그의 취향을 넘어서서 역으로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번에 개봉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를 보면서 문득 자문자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루한 영화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몇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앤트맨의 가족이 양자역학의 세계로 낙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으나 꽤나 아찔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장면은 앤트맨의 장인어른이 개미를 타고 비행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빠르게 날면서 많은 것들을 지나쳐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전체적 재미와 무관하게 스릴을 담보하더군요. 탈 것이 빠르게 움직이거나 누가 떨어진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재미를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장면들에 반응하는 저 자신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액션 장면들을 차고 넘치게 보았는데 왜 이런 평이한 장면들에 괜히 뭔가를 느끼는 것일까.


인류 최초의 영화였던 [열차의 도착]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찍었던 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고민은 했겠죠. 무엇을 찍어야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이미지의 운동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를요. 그리고 나서 그들의 일상에 있던 제일 박력있고 육중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찍고 싶어서 그 영화를 촬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애초에 큰 것이 움직이는 것으로 장르의 차별화를 꾀하며 시작했던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로서는 이미 회화와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움직이는 것을 찍으면? 그것은 분명 신기했겠지만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인간이 움직이는 것과 큰 변별점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불능한 무언가가 스크린 안에서 움직일 때 그 감흥이 제일 크다는 어떤 법칙 같은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까 영화는 애초에 "속도"를 표현할 수 있는 최초의 매체였던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회화적인 감흥이나 연극적인 감흥, 혹은 다큐멘터리의 감흥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영화만이 속도에 대한 감흥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어디로 움직이는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가. 반대로 관객들의 흥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대답이 속도일지도 모릅니다. 놀이동산에 가서 직접 체험할 수도 있고 VR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속도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다른 매체들이 영화의 속도감을 쫓아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감을 느끼기 위한 스토리 상의 이입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영화 제작자로서 톰 크루즈는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결국 이미지의 운동이고, 그 운동을 제일 주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탈 것의 속도감을 살리는 장면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아요. 그가 영화제작자로서 영화에 믿고 의존하는 부분도 아마 이 속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히 제작자로서 돈 되는 장면을 뽑아내려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수단으로 어떻게 하면 영화적인 감흥을 줄 수 있는지를 탐구한 결과로 지금 영화제작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사람들 앞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톰 크루즈를 재회해서 "너가 헐리우드를 살렸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영화적 감흥을 안겨줬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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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탑건: 매버릭]은 이 속도감을 궁극적으로 표현한 헐리웃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가 단순히 잘 뽑혔거나 이미지가 빠르게 움직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비행기는 떠서 다니기 때문에 상하의 운동과 좌우의 운동, 즉 2차원의 스크린에서 가능한 모든 운동을 다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행기가 빠르게 날아가는 것은 바퀴로 굴러가는 탈 것들과는 조금 다른 감흥을 줍니다. 빠르다는 느낌뿐 아니라 추락의 위험을 늘 부담하고 움직이는 그런 느낌을 주죠. 그런 점에서 [탑건: 매버릭]의 작전 훈련 장면은 이 모든 방향의 움직임을 다 끌어내고 있습니다. 아주 빠른 앞뒤(좌우)의 운동을 하면서도 극한의 상하운동을 통해서 중력에 저항하기까지 하니까요. 영화는 종종 비행기 조종사의 관점에서 하강하는 화면을 직접 보여주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이 영화는 헐리웃 영화가 추구하는 극한의 운동성을 거의 모두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톰 크루즈가 이제 추구할 헐리웃 영화의 운동성이 역으로 단서가 잡히죠. 이제 톰 크루즈가 도전할 영역은 "무중력"이지 않을까요.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의 운동을 다 영화에 담아봤기 때문에 남은 것은 중력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할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운동에너지를 담고 싶어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같은 촬영은 [미이라]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무중력 상태를 훨씬 더 본격적으로 담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미 일론 머스크와 협업해서 실제 우주에 나가서 촬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사전에 돌기도 했으니까요. 다른 종류의 속도감이라면 수중에서의 촬영방식이 있겠지만 이 부분은 이미 제임스 카메론이 꽉 잡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톰 크루즈는 운동에너지가 일으키는 훨씬 더 파국적인 이미지를 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는 이제 무중력에 도전할 것 같다는 개인적 추측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무중력 운동의 이미지를 영화적으로 담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 톰 크루즈와는 다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역시 영화에서 아주 거대한 것이 쓰러지는 이미지의 운동을 계속해서 담고 있습니다. 그는 톰 크루즈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훨씬 더 압도적인 낙하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의 취향에는 시네마틱한 운동에 대해 톰 크루즈와 비슷한 견해가 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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