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에 나왔으니 어언 30년이 넘었군요. 런닝타임은 1시간 56분. 스포일러... 랄 게 없지만 결정적인 건 마지막에 흰 글자로 적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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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용으로 봐선 사랑이 아니라 사는 게 지옥일 텐데. 멜로 갬성 PR에는 저게 맞겠죠.)



 - 정보석의 출소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고급진 양복을 입고 고급진 차를 탄 김용건 아저씨가 나타나서 일 같이 해보자며 추파를 던지지만 시크하게 무시해요. 자기는 가늘고 길게, 분수에 맞게 살겠다는 아주 올바른 신념을 가진 사람이군요. 생계 수단이 소매치기이긴 합니다만(...) 이 직업을 가리키는 은어도 참 다양하게 많았던 것 같은데 여기선 '꽃제비'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거 북한 쪽 말로 뭔가 우울한 의미였던 것 같은데... 아, 뭐 암튼요.


 그러다 어느 날 정보석이 자기 패밀리의 나와바리에서 겁 없이 솔로 활동을 하던 배종옥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첫 눈에 반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무리를 해가며 데리고 와서 자기네 패밀리에 집어 넣고 친목도 다지고 하면서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데, 우리 도도한 배종옥씨는 정보석에게 관심이 없죠. 걍 '너 나쁜 놈 아닌 건 아닌데 너랑 같이 해서 뭔 미래가 있겠니' 정도의 태도로 보입니다.


 암튼 그러다 배종옥이 훔친 지갑에서 대학교 추가 등록금 고지서와 큰 돈이 나오고. 이걸 자신의 개인적 인생 한과 연결지어 굳이 돌려주는 과정에서 소매치기 피해자 강우석씨와 배종옥 사이에 로맨틱 기류가 형성이 되고. 정보석은 그걸 보고 질투하고 빡치고.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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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는 아주 전형적인 K-조폭 느와르 같습니다만. 이후의 전개는 그거랑은 많이 다릅니다.)



 - 사실은 같은 장현수의 '게임의 법칙'을 아직도 안 본 게 생각나서 그걸 봤어요. 그러고 나서 보니 장현수의 바로 전작품인 이 영화가 또 왓챠에 있고 이게 데뷔작이더라구요. 그래서 이것까지 본 다음에 비교해보자... 이런 의도로 봤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와 관계 없는 영화판입니다. ㅋㅋ 원작 소설을 갖고 각각 영화판과 드라마판이 나온 건데, 내용이 많이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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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잠시 후엔 얘랑 얘랑 연애하는 이야기구나! 싶었는데 보다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ㅋㅋㅋ)



 - 그러니까 뭐랄까. 그 시절에 드라마, 영화 충분히 보고 자란 탑골 회원분들이야 딱 보는 순간 '아, 이런 얘기 ㅋㅋㅋ' 하시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에겐 뭐라 설명해야할지 좀 난감해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근데 정말 익숙한 사람들에겐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뻔해요. 너무 뻔해서 '혹시 이 영화가 그런 이야기들 원조였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요.


 일단 못 배운 마초에 입도 손도 거칠고 뭔가 범죄 관련 일을 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겠죠. 그리고 그 곁엔 이 남자를 좋아하지만 남자는 구질구질하다고 좀 치워 버리고 싶어하는 불쌍한 팔자 여성 캐릭터가 하나 있구요. 그리고 주인공은 자기 인생에 별로 못 만나 본 도도한 캐릭터에게 꽂히는데 그게 잘 안 되구요. 그 와중에 부자집 여자든 남자든 하나 등장해서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주인공은 막 질투해서 진상 좀 부리다가도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엔 폼나게(?) 보내주고요. 하지만 그렇게 신분 상승 직전에 있던 여자는 결국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컴백을 하는데... 이놈의 주인공 자식은 그 틈을 못 참고 [팔자를 바꿔 줄 큰 건수 하나]에 손을 대 버리고...


 도대체 이런 이야기가 몇 개나, 얼마나 변주되며 반복되었을까요. ㅋㅋ 아니 뭐 서양 쪽에도 비슷한 이야기들 많겠습니다만 한국 쪽에는 뭔가 특화된 디테일 같은 게 있거든요. 뭐 세월이 세월인지라 요즘엔 이런 이야기 잘 안 보이는 것 같지만. 세기말, 세기초엔 저엉말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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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니 이 양반은!!! ㅋㅋㅋㅋ 단역으로 지나갔던 '게임의 법칙'과 달리 여기에선 당당 조연이구요.)



 - 다만 이 영화의 약간 차별점이 있다면. 범죄 장면들이 자주 나오긴 하는데 그게 대부분 조폭까지 안 가고 그냥 정보석 패밀리 멤버들이 벌이는 소매치기 행각들이어서 'K-조폭 느와르' 특유의 분위기와는 은근히 많이 달라요. 정보석 패밀리는 (따지고 보면 이것도 조직은 조직이지만) 뭐 행님!!! 이런 거 아니고 무슨 대안 가족 같은 분위기로 묘사되구요. 그래서 뭔가 80년대에 종종 보였던 '달동네 가족들의 애달프지만 따스한 이야기' 분위기와 이후에 대유행할 K-조폭물 분위기가 오묘하게 공존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자의 분위기로 시작해서 후자로 끝나죠.


 또 한 가지 차별점이라면 이게 결국 대놓고 멜로드라마라는 겁니다. 다시 한 번, K-조폭물 클리셰는 부차적인 것이고 기본적으론 꿈도 희망도 없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에요. 게다가 애시당초 여성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주인공을 연애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딴 남자랑 연애한다는 것도 요즘 관점에서 보면 좀 신선하다고도 할 수 있겠구요. 그리고 아주 살짝만 오버하자면, 이 영화는 정보석 원탑 영화가 아닙니다. 비중에서 살짝 밀리긴 해도 배종옥의 캐릭터 역시 당당한 주인공이고. 그만큼의 분량과 드라마를 배분 받습니다. '게임의 법칙'에서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박중훈을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일 밖에 하는 게 없는 오연수 캐릭터를 보고 나서 이걸 보니 참 신선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ㅋㅋㅋ 원작의 힘이었을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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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당대의 스윗남이었던 강석우씨. 솔직히 지금 보기엔 캐릭터가 매력적이질 않습니다. 당시 기준 스윗남은 지금 보기엔 너무 느끼하더라구요. ㅋㅋ)



 - 역시 세월의 흐름이란 게 우습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죠. 특히나 대사 하나, 말투 하나에서 디테일과 그 의미, 맥락을 짚어내게 되는 모국 영화를 보다 보면 외국 영화를 볼 때보다 이런 '세월의 흐름'을 더 리얼하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그 시절 기준으론 '좀 막돼먹었지만 그래도 근본은 선량한 순정남' 이었던 정보석의 캐릭터가 지금 기준으론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심대한 문제입니다. ㅋㅋㅋ 근본을 따지고 들기 전에 이미 예선 탈락. 이라고나 할까요. 성폭행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한 번만 하면 너는 내 것이 될 것이야! 라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남자가 주인공인 로맨스라니. 시대 보정으로 비난은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감정 이입을 하라는 건 절대로 무리에요 무리.


 그리고 나름 쏘쿨하고 독립적이며 강한 캐릭터... 인 배종옥의 캐릭터 역시 강석우와의 로맨스가 심화되는 후반에는 참 재미가 없어집니다. 뭐 대충 뻔하잖아요. 이 고마운 남자에게 버림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다 캐릭터 다 쪼그라들고, 멍하니 앉아 눈물 짓는 장면들만 많아지는 뭐 그런 전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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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라이벌 남자들이라면 꼭 이렇게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 한 잔 나누는 게 국룰이었죠. "xx는 내 여자야!" 같은 대사 날리면서...)



 - 근데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지루하지 않게 잘 봤습니다.

 영화가 막 훌륭하진 않지만 그래도 의외로 멀쩡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요. 클리셰스런 이야기라는 비판도 뭐 31년이나 지난 지금 시점에서야 그럴 수 있지만 그 시절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뻔한 것도 아니었구요. 촬영이나 편집 같은 부분도 딱히 구린 것 없이 말끔하고. 심심할 틈 없이 착착 전개되는 이야기도 (클라이막스 직전엔 살짝 늘어지지만 그건 K-멜로 감성 영화들의 디폴트 값인 셈 치고요) 괜찮고. 정보석, 배종옥, 강석우 모두 잘 캐스팅 된 역할에 쏙 들어가서 자기 역할은 다 해 줍니다. 지금 봐서 이 정도 느낌이면 그 시절 관객들에겐 세련되고 괜찮은 영화로 보였을 확률이 크겠고. 또 이게 장현수의 장편 데뷔작이니 비평가들도 많이 호의적이었을 것 같고. 뭐 그랬네요. 


 그러니까... 위에서 언급한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들을 '그 시절 영환데 뭐!' 라는 맘으로 시크하게 넘기실 수 있다면.

 그리고 이젠 자주 안 보여서 오히려 좀 레어해진 느낌의 이런 '가난하고 희망 없는 청춘들의 비극적 로맨스'가 오랜만에 땡기신다면.

 그리고 젊은 시절의 블링블링한 정보석, 배종옥의 모습을 즐기고 싶으시다면. 한 번 보셔도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괜찮았어요 기대보다. ㅋㅋ 잘 봤습니다.




 + 이미 보셨다시피 임창정이 나옵니다. 알고 보니 '비트'에서 임창정의 캐릭터는 이미 1992년에 완성되어 있었다는 걸 느꼈네요. ㅋㅋㅋㅋㅋ 보니깐 이 전 출연작이 세 편이 있던데. 설마 '남부군'에서도 이런 캐릭터를 하진 않았을 테니 나머지 두 영화를 확인해봐야 하나... 는 쓸 데 없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해봤습니다.



 ++ 사실 주얼리 정씨가 툭 튀어나오는 순간 살짝 놀랐어요. 제가 영화판은 지금 봤어도 드라마 버전은 띄엄띄엄이라도 좀 봤기 때문에 주인공이 최민수일 것 같은 기분이 있었나 봅니다.



 +++ 여기서 정보석의 캐릭터를 다 받아주고 챙겨주며 살아가는 호구 여성 캐릭터를 맡아 연기한 게 송옥숙씨입니다만. 90년대 한국 영화답게 구글 검색을 해도 나오는 짤이 하나도 없네요. 그래서 이렇게 사족으로 적습니다. 나오셨어요. ㅋㅋ 연기도 좋았습니다.



 ++++ 그래서 결말이 어떻게 되냐면요. (궁금하신 분들만 드래그 해 보세요)


 결국 배종옥은 자신이 소매치기였다는 사실을 숨긴 채 강우석과 결혼을 약속합니다. 가족들과도 다 만나고 집안에서 마련해 준 아파트에 들어가 살아요. 하지만 잠시 소매치기 패거리의 아이들을 보러 왔다가 패거리 멤버 한 놈의 함정에 빠져 소매치기로 경찰서에 끌려가구요. 결국 강석우에게 과거를 들키고선 버림받다시피 하는 상황이 되어 차이기 전에 내가 나가 주마!! 라는 식으로 짐 싸서 원래 살던 동네로 돌아옵니다만...


 그 와중에 이제 배종옥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로 결심한, 그리고 조강지처(?) 송옥숙씨와 그 아들과 함께 잘 살아보기로 결심한 정보석은 그동안 멀리했던 김용건을 찾아가 큰 돈을 약속받고 마약 배달 미션을 수행하게 되죠. 하지만 그건 일회용으로 쓰다 버릴 캐릭터가 필요했던 김용건의 함정이었고. 간신히 빠져 나온 정보석은 김용건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그를 인질로 잡고 돈을 탈탈 털어서 도망치다가... 몸싸움 끝에 총기 오발로 김용건이 죽어요. 아 이제 완전 망이구나! 싶었지만 암튼 일단 도망쳐서 송옥숙씨에게 돈을 건네며 부탁을 하죠. 이거 배종옥 오빠 수술비로 쓰고(...) 남는 돈은 니가 애 키우는 데 써라. 

 그러고선 자기 패밀리를 찾아가 '이젠 이딴 짓 하지 말고 뿔뿔이 흩어져서 착하게 살아!!!' 라는 설득력 1도 없는 절규를 하고요. 그러고 송옥숙씨네 집에서 혼자 소주 퍼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데... 


 이 때 컴백한 배종옥이 송옥숙을 만나고, 그 집으로 정보석을 보러 갑니다만. 경찰이 출동해서 포위를 하구요. '아 놔 니들이 여기 있으니 인질인 줄 알잖아!!!' 라며 둘을 쫓아내고 문을 걸어 잠근 정보석은 혼자 통곡하다 늘 갖고 다니던 나이프로 자기 가슴을 찔러 자살합니다. 기다리다 지쳐 문을 부수고 들어온 배종옥과 잠시 후 도착한 송옥숙이 죽어가는 정보석을 끌어 안고 통곡. 잠시 후 달동네 길을 내려가는 구급차의 모습으로 끝입니다.


 + 아. 마지막 경찰 포위 상황에서 우리 스윗남 강우석씨가 배종옥을 찾아 그 현장을 찾아옵니다. 다시 받아줄(?) 맘도 없진 않은 듯 한데. 이 난리를 쳐놨으니 그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래저래 민폐만 남기고 떠난 우리 주얼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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