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제가 아니라 장현수의 대표작이라는 거죠. 1994년에 나왔구요. 런닝타임은 1시간 49분. 구체적인 디테일은 피하겠지만 대략적인 결말 방향에 대한 언급은 있을 겁니다. 근데, 워낙 결말 유명하잖아요? 비디오 출시 땐 아예 커버에 그 장면이 들어가 있을 정도였는데요. ㅋㅋ 이 글 마지막에도 그 짤이 있을 겁니다. 스포일러 피하고픈 분들은 그냥 안 읽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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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다들 옷을 안 입고서들...)



 - 시골 세차장에서 일하는 젊은이 용대가 주인공입니다. 근데 뭐 시작부터 이미 건달이에요. 아무나 부딪히면 다 시비 걸고 두들겨 패려 하고, 여자 친구와 섹스 하고 싶으면 아무 때나 찾아가서 싫다는 사람을 아무 데서나 막...; 암튼 그렇게 건들거리며 출근을 했다가 '이딴 식으로 일 할 거면 그만 두고 꺼져!'라는 사장을 마구 두들겨 패고선 홧김에 여자 친구 태숙을 데리고 '오빠 믿지!!!?'라고 외치며 무작정 상경을 합니다. (아. 이 표현 참 오랜만에 써 보네요) 그런데 올라가는 기차길 안에서 사기꾼 인수를 만나 탈탈 털리고 도착시 거지가 되어 버렸다는 게 난감.


 암튼 애초부터 목표가 자기가 이름 아는 사람을 찾아가 그 밑에서 건달이 되는 게 꿈이었던 이 순수한 청춘(...)은. 한참 동안을 여관비도 안 내고 생활비도 안 주고 조폭 본거지 근처에서 어른거리다가 결국 운 좋게 본인의 싸움 실력을 뽐낼 기회를 잡아 조직의 일원이 되는 데 성공합니다만. 그동안 방치됐던 태숙은 여관 주인의 함정(?)에 빠져 술집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사기꾼 인수는 박중훈네 회장님 돈을 떼어 먹고 도망다니다가 공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된 박중훈에게 걸려 잡혀 들어가 한 쪽 다리가 아작이 나고. 그 와중에 박중훈의 조폭 생활은 탄탄가도인 듯 하면서 점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뭐 이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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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것도 기본적으로는 '시골 청춘 상경기'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요즘엔 이런 거 거의 안 보이네요.)


  

 - 여러 번 한 얘기지만 전 K-조폭 느와르를 기피합니다. '신세계'처럼 평이 되게 좋은 영화도 안 봤구요. 대놓고 조폭 느와르는 아니어도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은 영화도 안 봅니다. '내부자들'이라든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그 양반들 세상을 리얼하게 보여주겠다며 괜히 보기 불쾌한 장면들을 잔뜩 보여주는 게 부담스럽구요. 또 결정적인 이유는, 이게 너무 오래 흥했어요. 대략 90년대부터 2010 언저리까지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까지 사방팔방이 다 조폭 천지라 정말 질릴만큼 질려 버렸죠.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그 장르의 원조격인 이 영화를 아직도 안 봤다는 걸 깨달아서 숙제 차원에서 그냥 봤습니다. 암튼 그렇게 애초에 이 장르를 싫어하는 사람의 소감이라는 건 감안을 해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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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장면은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이런 간지샷(?)으로 시작됩니다. 이런 노오란 필터 느낌도 역시 그 시절엔 간지!)



 - 어제 '걸어서 하늘까지' 소감에 했던 얘기지만 그것보다 이 영화를 먼저 봤습니다. 그러고 좀 놀랐던 것이, 영화의 기본적인 완성도가 꽤 높습니다. 1994년작이니 충무로 르네상스보다 몇 년 앞선 시기에 나온 영화인데, 그런 것치곤 상당히 매끄럽게 잘 만들었어요. 그리고 2년 전 영화였던 감독의 전작과 비교해도 만듦새가 상당히 탄탄해졌습니다. 전작이 극장용 런닝타임으로 만든 웰메이드 티비 드라마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냥 극장용 영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당시에 장현수가 충무로에 남긴 족적이 꽤 컸구나... 라는 생각을 보는 내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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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용 영화 때깔이다 이겁니다!!)



 - 다만 각본이 아주 맘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것도 역시 시대의 한계 때문일 텐데, 거기에 덧붙여서 좀 애매한 부분들이 있어요. 

 박중훈이 연기하는 주인공 용대의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앞부분에서 말했듯이 이 녀석은 애초부터 현실에서 절대 엮이기 싫은 비호감 덩어리입니다. 일도 열심히 안 해, 수 틀리면 아무나 막 두들겨 패고, 여자 친구랑 섹스씬 두 번이 모두 다 거의 성폭행급(...)이에요. 조폭이 되기 전에도 그런 묘사가 계속해서 나와요. 택시 기사에게 '난 기본 요금은 내 본 적이 없어!'라면서 그냥 내리고, 돈 달라는 기사를 폭력으로 위협해서 쫓아 버리고. 별 이유도 없이 애인과 함께 간 나이트에서 여봐라는 듯이 첨 보는 여자랑 부둥부둥하다가 차이기도 하고. 기타 등등 거의 수십 번에 걸쳐 이 인간이 얼마나 개차반인지를 보여주는데요. 

 그렇다면 그냥 애초에 싹수 노랬던 놈이 불가능한 꿈을 안고 뻘짓하다가 파멸하는 이야기로 갔으면 훨씬 자연스럽고 좋았을 텐데. 각본이 자꾸 이 인간에게 감정 이입을 하니까 문제입니다. 마치 꿈 많던 순수한 청춘이 서울에서 감당할 수 없는 거대악을 만나 안타깝게 파멸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니 어리둥절해지는 거죠. 아무리 20세기였다고 해도 이 영화의 용대란 놈은 절대로 '순진한 청춘' 같은 걸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ㅋㅋㅋ 보니깐 장현수랑 강제규가 같이 쓴 각본이던데. 둘 사이에서 이견이 좀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 외에도 그냥 박중훈을 무작정 사랑해서 나중에 안타까운 그림 한 번 연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태숙이라든가, 닳아 빠진 양아치 사기꾼과 천진난만 선량한 밑바닥 인생 캐릭터를 맥락 없이 작가 편할대로 오가는 인수의 캐릭터도 요즘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얄팍하고 기능적입니다. 막 훌륭한 각본이라고 칭찬해주긴 좀 그래요. 적어도 지금 기준으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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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봐도 그냥 비호감 양아치인데 왜 자꾸 감정 이입을 강요하는지... ㅋ)



 - 하지만 전반적으로 분명히 잘 만든 장르물입니다. 화면 잡아 내는 감각도 전작보다 많이 늘어서 촌스러운 느낌이 별로 없구요. 이야기도 꽉 차 있으면서 아주 모범적으로 착착 전개가 되구요. 초반에 은근슬쩍 던져 놓은 떡밥들을 마지막에 거둬들이면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센스도 좋습니다. 그리고 자주 나오는 액션 장면들도 전작은 물론 다음 작품(본 투 킬!!!) 보다도 훠얼씬 잘 연출이 되어 있습니다. 막판에 박중훈의 암살 미션과 이경영의 도박 승부를 교차 편집하는 센스 같은 건 '대부처럼 찍고 싶었나보다!'라는 생각에 웃음이 좀 나면서도 상당히 멀쩡하게 잘 되어 있구요. 거기에다가 후대 한국 영화들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 라스트씬이 있지요. 역시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적절하면서 또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뭣보다도... 한국형 조폭 느와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면서 이미 그 장르의 필수 요소들을 거의 빠짐 없이 갖추고, 또 그걸 잘 활용하는 이야기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완성형이 튀어나왔고, 후배들은 이걸 해체하고 재조립하고 변형하며 십수년을 보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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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영, 권해효씨 젊은 것들 좀 보세요!)



 - 배우들 연기 보는 것도 살짝 재미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니까 박중훈, 이경영, 오연수 셋 다 잘 해요. 특히 오연수는 데뷔 초에 발연기 소리도 꽤 들었떤 걸로 기억하는데, 살짝 무리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긴 해도 (사실 이 배우의 주된 이미지와 되게 상반된 캐릭터이다 보니 ㅋㅋ) 대체로 매끄럽게 잘 합니다. 근데 그 연기란 게 굉장히 90년대 스타일이에요. ㅋㅋ 대놓고 문어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저런 말투나 몸짓은 좀... 이라는 느낌이랄까요. 그 스타일 안에서 가장 눈에 띄게 펄펄 나는 건 역시 박중훈입니다만. 그래서 이 양반이 21세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락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나머지 두 배우가 오히려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죠.


 그 외에도 이일재, 김부선(...), 권해효, 양택조에다가 단역으로 두 세 장면 등장하는 임창정 등 배우들 찾아 보는 재미도 괜찮았습니다. 특히 이일재씨 참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에 근황을 검색했더니 2019년에 돌아가셨군요; 뒤늦게 명복을 빕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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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는 그 시절 깡패 역할로 자주 보이던 연극배우 최학락씨. 우측은 애초에 깡패 역할로 뜨셨던 이일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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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또 다시 임창정. ㅋㅋㅋㅋㅋㅋ)



 - 암튼 뭐. 애초에 숙제 차원에서 본 영화였는데, 제 기대보다 훨씬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라서 살짝 놀랐습니다.

 그 시절 영화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이 많이 보였지만 어쨌거나 잘 만든 영화였고. 후대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준 것도 납득이 됐구요.

 다만 이 영화를 칭찬할 수록 내친 김에 봐 버린 차기작 '본 투 킬'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난감해지네요. ㅋㅋㅋ 어떻게 이런 감독(?)이 순식간에 그런 감독(??)이 되었는가. 

 그리고 이후로는 쭉 쇠락 외길만 힘차게 걸으신 걸로 아는데, 그 와중에 거의 호평이었던 '라이방'이 궁금해집니다만. 볼 수 있는 곳이 없어 보이구요.

 암튼 그렇습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만. 이 시점에서 꼭 챙겨봐야할 영화인가... 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보진 않았지만 분명 후대 영화들 중에 이것보다 훨씬 잘 만든 영화들이 뭐라도 몇 편은 있을 겁니다. ㅋㅋ 그냥 그거 보시면 됩니다. 이미 다 봤고 원조도 챙겨보고 싶으시다면야 그러시면 되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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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까진 아니고 특히 동양에서 공중전화 박스란 참으로 위험한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 극중에서 박중훈과 오연수는 노래 부를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남행열차'만 부릅니다. 아마 세 번 정도 불렀던 것 같네요. ㅋㅋ



 ++ '걸어서 하늘까지'나 이 영화나 특정 부분에서 대사를 알아 먹기 힘든 구간이 좀 있습니다. 옛날 한국 영화들이 다 그렇죠. 그래도 이 '게임의 법칙'은 그 위상 덕인지 상당히 깨끗한 화질로 잘 디지털화 했더라구요. 이 후에 나온 '본 투 킬'은 그냥 알아 듣기도 힘들고 알아 보기도 힘들고 난리였는데...;



 +++ 그러니까 이게 표절 제목이잖아요. 한참을 비슷한 일들이 많았고 요즘도 흔히 보입니다만. 어찌보면 그것도 이 영화가 원조격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고 그렇네요. 하지만 뭐 잘 찾아보면 이전에도 더 있었겠죠.



 ++++ 아래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성 잡담입니다. 결말이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니 읽고 싶은 분만 긁어 보세요.


 남은 두 사람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막판에 이경영이 도박판에서 딴 돈이 최소 억대 이상이라는 걸 생각하면 적어도 오연수의 인생은 한동안 아주 쾌적해지지 않았을까 싶죠. 1994년이니 돈의 가치가 다르잖아요. 이경영이 도망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캐릭터가 막판에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선량해져서 박중훈, 오연수 챙기던 걸 생각하면. 그리고 박중훈이 돈 벌면 오연수에게 반띵 하라고 얘기할 때 오연수도 그 자리에서 듣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마 줬겠죠.

 다만 이경영 본인은... ㅋㅋㅋㅋ 가뜩이나 도박 폐인이 그렇게 극적인 승부로 더욱 더 짜릿한 맛을 봤는데 이걸로 만족하고 그냥 접을 리가 있겠습니까. 오연수 따라다니며 돈 빌려 달라고 진상 부리지나 않길 바라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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