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작이고 1시간 49분. 스포일러 있습니다. 다 걍 보지 마시라고 적는 글이라 대놓고 다 이야기할 테니 주의하실 분은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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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포스터는 당시 기준 꽤 폼 나는 한국 영화 포스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래서 이 시국에 이게 보고 싶어진 걸지도 모르구요.)



 - 비 내리는 밤에 우리 멋진 우성씨가 멀리 있는 목표물을 관찰합니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타고 부릉부릉 타겟이 탄 차를 따라가서는... 다짜고짜 발차기로 (오토바이 타고 달리는 중인데;) 차 유리를 깨버려요. 당황해서 운전사가 차를 멈추고 내리자 후다닥 달려가서 죽이고. 뒷좌석 유리도 깨고 다짜고짜 머리를 들이미는데 타겟 할배가 헬맷을 벗기든 말든 걍 태연하게 칼로 그 양반 눈알을 후벼 파네요. 그러고 여유롭게 휘잉~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 '길'씨는 프로 킬러입니다만. 역시나 매우 한국스런 조폭 김학철씨 아래에서 일해요. 뭔가 좀 후줄근한 작은 아파트에서 원숭이 한 마리 키우며 사는 고독하지만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킬러 길! 그리고 그는 우연히 같은 아파트 사는 심은하를 운명적으로 마주치고. (사실 한참 전부터 짝사랑하며 몰래 훔쳐보고 있었던 듯 합니다)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좀 미친 것 같습니다) 심은하를 마다하지 못하고 정상인의 삶을 체험하며 변해가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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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죠. 심은하 스타일링 무슨 일이죠.)



 - 일단 알아두시면 좋을 것. 이게 티빙에 있습니다. 근데 낡은 비디오 테잎을 그대로 뜬 듯한 화질을 각오하셔야 해요. 게다가 조금이라도 화면이 어두워지면 형상을 알아보지 못할 수준의 화질 테러가 이어지니 감안하시구요. 전 이걸로 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올레 티비로 갈아탔고 그 쪽은 사정이 '조금' 낫습니다만. 그게 원본 화질의 차이가 아니라 걍 티비의 화질 개선 기능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 역시 압도적으로 구리지만 그래도 사물 구분은 가능한 수준 정도였다는 거. 무려 정일성 촬영 감독의 영화이니 괜찮은 화질로 보면 그래도 영화 인상이 훨씬 나아졌을 것 같은데. 암튼 지금 현실은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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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둘 다 낫군요. 당시 정우성 24세, 심은하 25세였구요.)



 - 이 영화의 구림을 나름 상징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제가 지금껏 본 중에 정우성과 심은하 두 배우가 가장 안 예쁘고 안 매력적으로 나오는 영화에요. 제가 이 분들 출연작들을 다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본 중엔 그렇습니다. 바로 1년 뒤에 나올 '비트'를 생각해보면 정말 이해가 안 갈 정도. 그나마 심은하는 참으로 꾸준하게 스타일링이 구리다는 걸로 이해를 할 수 있는데, 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오토바이 모는 정우성을 보면서 이렇게 감흥 없기도 힘든데 말입니다. ㅋㅋㅋ 그리고 그 외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래요. 뭔가 그냥 총체적으로 싹 다 계산이 잘못되어 있는 영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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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우리 두홍 아저씨 젊으신 거 보세요! 호랑이 선생님도 반갑구요. 심지어 조금이지만 액션도 보여주십니다.)



 - 디테일로 들어가자면 일단 스토리가 말이죠.

 아마도 '레옹'을 감명깊게 본 누군가가(각본은 장현수 본인 & 송해성, 이무영이 썼습니다) 그걸 한국 (조폭 깡패) 버전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주인공 길성준씨는 무슨 라푼젤 마냥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그 아파트에 처박혀 살면서 보스가 부를 때만 달려가 시키는 일 다 하고 돌아오는 그런 양반이구요. 조직 사람들 말곤 아무도 모르고, 세상 물정 아무 것도 모르며 사는데 순진, 순수하고 과묵하고 착하고 예의바르고 그래도 섹스는 할 줄 알고 뭐 그런 캐릭터에요. 풀 대신 원숭이를 키우는 레옹인 거죠. 그리고 당연히 이 녀석의 평온한(?) 삶에 쓸 데 없이 적극적으로 끼어들어서 본의 아니게 아작을 내버리는 여자애로 심은하가 나오는 거구요.


 근데 그게 그냥 개판입니다. 위에도 적었듯이 심은하가 정우성에게 들이대는 게 그냥 미친 사람 같아요. 마틸다가 레옹에게 가는 건 스토리상 그럴 수밖에 없게 장치가 되어 있잖아요. 여기서 심은하는 그냥 막 달려들어요. 술에 취해 길바닥에서 뻗은 자길 집까지 업어다 주고 간 공이 있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소주 한 병 들고 쳐들가서 문 안 열어주니까 열쇠공 불러다가 자물쇠를 부수려 드는 게 현실 세계의 제 정신 갖춘 인간이 할 짓입니까. 그러고 들어가선 정우성이 냉장고에 모아 둔 현찰 다발을 꺼내 고급 레스토랑 가서 테이블 가득 음식을 주문해 놓고선 와인 한 잔만 마시고 '나 출근해야 해서 먼저 간다?' 이러고 휭 떠나버리구요. 백화점에 데려가서 정우성 옷 한 벌 골라주고는 자기는 백 수십만원짜리(1996년에!) 자켓 얻어 입고 라랄랄라 기타 등등 정말 미친 자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데 그게 이 영화의 로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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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와 드라마 상의 위기가 전혀 상관이 없어요. 그 쪽으로 가면 그냥 한국 조폭 영화인데. 다만 '게임의 법칙' 대비 많이 단순화되고 과장된 만화책 조폭이랄까요.

 암튼 여기에서 심은하 캐릭터의 존재 의의는 그냥 인질입니다. 보스가 출세하려고 자기보다 더 윗 보스를 죽이려 드는데 정우성이 나 그 사람 죽이기 싫어~ 이러니까 심은하를 인질 잡아 일 시킨다. 라는 맥빠지는 방향으로 활용될 뿐이구요. 그러니까 킬러고 로맨스고 다 됐고 영화의 후반은 그냥 조폭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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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이런 용도로 나오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그나마도 감독의 전작과 비교할 때 참 허접합니다. 정우성은 그 윗사람(조경환 아저씨입니다)을 만나자마자 '우왕 이 사람은 날 생각해줬던 사람이구나' 하고 바로 심은하 알 게 뭐냐는 식으로 자기 원래 보스에 맞서 싸우구요. 그나마도 별 큰 활약도 못 하다가 숫자에 밀려서 각목이랑 칼침 맞아 죽습니다. 근데 여기에서 정우성의 캐릭터와 그 왕보스 간에 뭔가 지켜야할 의리나 정 같은 게 제대로 묘사되질 않아서 정우성 역시 그냥 바보 멍청이 미친 놈처럼 보여요. 그 왕보스님이 분명 '너 가서 그 여자랑 살아~' 라고 몇 번 기회를 주는데. 어차피 적들이 하도 많아서 싸우면 이길 가망도 없는데도 걍 바보처럼 싸우다가 정작 원수에겐 손도 못 대고 개처럼 죽습니다. 그냥 죽기 위해 죽는 거죠. 이 장면에선 정말 '비트'의 주인공 녀석 생각이 나더군요. 진짜 멍청한 자식들 같으니. 너무 멍청해서 불쌍하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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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맷 쓰고 다니라고 애타게 조언해주는 아저씨에게 발길질을... 은 아니구요. ㅋㅋ 심은하 순간 포착이 절묘합니다. 이걸 홍보용으로 쓰다니!)



 - 이렇게 캐릭터도, 드라마도 다 엉망진창인데 이야기 페이스도 안 좋아요. 중간에 심은하가 잠시 떠났다 돌아오는 건 진짜 무슨 런닝 타임 메우기 용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 의미가 없었구요. 자꾸 튀어나와서 '나는 지구에서 가장 혐오스런 K-조폭이다!'라는 불꽃 연기를 보여주는 김학철씨는 뭐, 연기는 잘 했는데 영화가 재미가 없으니 그 캐릭터도 그냥 재미가 없구요. 

 

 결정적으로 주인공의 '최강 프로 킬러'라는 설정이 영화 속에서 도무지 잘 표현되질 않습니다. '레옹'의 도입부나 클라이막스 액션까진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해왔던 걍 조폭 패거리 개싸움 액션에서 1도 달라지지 않은 스타일인데 아무리 봐도 '게임의 법칙'보다 한참 더 다운그레이드 꼴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게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궁금해져서 영화에 집중이 안 될 지경. 이래뵈도 정두홍 무술 감독이 참여한 작품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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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열연을 펼치시는 김학철씨. 이걸로 조연상 받으셨으니 보답은 받으신 걸로.)



 - 그냥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레옹' 같은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고. 뭔가 최신 느낌의, 세련되고 폼 나고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해 온 것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각본도 연출도 그걸 전혀 따라가지 못한 거죠. 이 작품 이후에 장현수가 만든 영화가 다시 또 원작이 있고, 가난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려 희생하고 자기는 죽는 멜로 감성 찐한 조폭 영화(...)로 돌아간 것도 아마 이 작품의 실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구요.

 암튼 정말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뭐 하나 좋게 봐 줄 구석을 찾기 힘든 총체적 난국의 1시간 49분이었어요. 그래도 정우성은 바로 다음 해에 '비트', 심은하는 또 그 다음 해에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작품들을 만났으니 다행이었던 걸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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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뒤에 거의 비슷한 역할을 또 맡게 되실 정우성씨. 조금만 참으세요!! 그땐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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