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의 형태로 작성되어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박홍열, 황다은의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를 봤다. 맑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한국영화 중에 김진유 감독의 <나는보리> 이래로 이런 영화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올해 연말까지 가더라도 이렇게 맑은 영화를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영화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에 위치한 성미산 마을에 있는 ‘도토리 마을 방과 후’라는 곳에서 방과 후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과 함께 놀면서 생활하는 논두렁, 오솔길, 분홍이, 자두 등 5명의 교사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광각렌즈를 사용한 피사계 심도가 깊은 촬영이 눈에 들어왔다. 쉽게 말해서 이 영화에는 화면 안에 포커스 아웃이 된 채로 잡히는 피사체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인데 아이들과 방과후 교사들을 평등하게 담아내려는 카메라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심도 촬영이 이렇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몇 개 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피사계 심도가 깊은 촬영의 영화는 인공적인 조명을 사용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경우에 빛의 탁월한 조율을 통해 회화적인 화면이 만들어져서 감탄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나는 마을…>는 자연광 위주로 촬영된 작품으로 보여서 비주얼이 뛰어난 촬영의 영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눈 앞에 펼쳐진 생짜배기 현실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도 생경하면서도 신선하고 놀라운 체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들이 회의를 하거나 발언을 할 때 일반적인 다큐였다면 카메라가 한 인물로 따고 들어갔을 법도 한데 이 영화는 심도 촬영으로 최대한 평등하게 인물들을 담아내려는 것을 하나의 과제로 삼는듯이 좀처럼 컷을 나눠서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매 쇼트마다 화면에 잡히는 어떤 것 하나라도 화면으로부터 배제시키지 않겠다는 이 영화의 연출자의 의지가 이렇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이 영화 속에서 교사들은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불리고 그들은 아이들과 평어로 소통한다. 존댓말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이런 풍경은 무척 낯설었지만 한편으로 위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친근하고 바람직하게 다가왔다. 교사들과 아이를 맡긴 부모들도 격의 없이 서로 친구처럼 지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최대한 동등한 시선으로 그려내려 했다는 점에서 <나는 마을…>는 영화의 민주주의를 실현한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한 명의 인물보다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공동체 하나와 오롯이 만났었다는 인상을 갖게 되고 엔딩의 자막과 함께 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스러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슬퍼하게 된다. 

이 영화는 방과 후 교사로 10년을 일하고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다루고 있기도 한데 그런 주제를 부각시켜서 관객을 선동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의 첫 쇼트에서 화면의 전경에는 아이들이 보이고 후경에는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 돌봄교사 논두렁이 보인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심도 촬영에 의한 것이다. 논두렁이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도토리 마을 방과 후’를 떠난 이후에 등장하는 영화의 마지막 쇼트는 영화의 첫 쇼트와 동일한 구도이지만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는 마을…>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활기로 가득한 영화의 첫 쇼트에 비해 영화의 마지막 쇼트에서는 쓸쓸함과 적막함이 두드러져 첫 쇼트와 마지막 쇼트의 대비가 강렬하다. 이러한 대비는 자연스럽게 논두렁의 부재로 인한 현실의 부당함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대비 효과를 포함해서 내가 전술한 카메라의 미학을 통해 이 작품은 관객을 선동하지 않으면서도 영화적으로 우아하고 영리한 방식으로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관련된 정치적인 목적도 달성한다.

<나는 마을…>는 영화가 어떤 대상을 다루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대상을 어떻게 카메라로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작품이다. 누구 말마따나 영화의 메시지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이 정치적일 때 비로소 그 영화는 정치적일 수 있다. 사회 속에 가려진 존재를 온당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카메라의 감동과 함께 <나는 마을…>가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교육의 가치와 그러한 교육을 위해 힘쓰는 돌봄 노동자들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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