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 관람 직후 생각보다 실망이다. 복잡했다하면서 게시판에까지 끄적였는데....

재감상 하고나니 '다시 보니 괜찮네'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볼때 잘못봤네'였더군요.

 

첫 관람때  각각의 꿈의 단계에서 모든 폭발작업이 킥을 위한 것임을 못깨달았으니 말 다했죠. 아서나 임스가 폭탄을 갖고 위층과 아래를 헤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그냥 어떤 탈출이나 공방을 위한 액션을 해야해서 저러는건가... 유세프도 차를 갖고 도망치다가 어쩔 수 없이 차를 다리밖으로 떨어 뜨린걸로, 그게 의도된 킥인 줄도 몰랐고, 무중력이 생기는 이유도 몰랐고. 첫번째 킥의 실패 이후 팀이 두번째 킥 (수면 박치기)을 도모하려 한다는 개념도 이해를 못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시사회때는 그전날 밤새고 갔었던 것이라는 변명을 해봅니다.

 

아무튼 첫 관람 후 각각의 공략집등을 읽고 가니 웬걸, 두번째 보는 영화인데도 시간은 첫 관람때보다 반절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다크나이트]와 재미 측면에서 일대일 비교를 할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이것 자체로의 고유성을 가진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재관람으로 이렇게 영화가 달라 보인 적은 없었던 듯 합니다.

 

아무튼 이런 둔한 사람의 감상기는 별로 의미가 없고...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재관람때 같이 본 아내의 감상입니다.

(그리고 자끄님 감사해요. 자리 좋았습니다. 시간도 좋았고...표값 이상의 신세를 졌습니다.)


 

 

오히려 개봉전부터 제가 놀란 놀란 노래를 불러대길래 외려 짜증까지 내던 아내였지만, 그래도 외화 치고 흥행이 순풍이라니까 '그래 한 번 보러는 가준다!'라고 하더군요. 되려 남편이 홀로 시사회 보고나서 '생각보단 별로더라'라는 얘기를 하니깐, "거봐, 그렇다니깐..."하면서 핀잔까지도.


특히나 걱정했습니다. 복잡한 영화보다는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 성향 때문에 말이죠. 물론 우리 마나님이 머리가 나쁜 분은 절대로 아니죠.(살고 싶어요..) 하지만 웬지 [인셉션]은 이해하기 힘들 거 같았거든요.

 

저희가 좋아하는 보드게임으로 설명을 하자면, 어떤 보드게임을 처음 배울때 저는 처음 진행방식을 주루룩 설명하면 대충 알아듣고 차근히 따라가긴 하지만, 외려 전략같은 것은 되새김질을 해야만 더 떠오르는 편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룰설명을 듣기는 힘들어 하되, 엎어치든 메치든 일단 그냥 게임을 해보는 타입이고 그러다가 게임의 테마-모노폴리를 한다면 이건 돈놓고 돈먹기구나, 마피아를 한다면 아 이건 추리와 협잡이구나...라는 식으로-를 체득하며 오히려 전략이나 게임의 목적성은 그 덕분에 빨리 체감하는 성향입니다. 대충 둘의 차이를 아시겠죠.

 

그렇기때문에 설명이 많은 [인셉션]은 웬지 중간에 보며 손사래를 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아내에게 [인셉션]은 인생의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9시 영화 보고 나오니 자정이 다된걸 보고 깜놀하더군요. 자기는 아무리 길어도 2시간 좀 안된 줄 알았답니다.

 


사실 [다크나이트]는 아내에게 아주 베스트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잘만든 영화이고 무척 재밌게 봤지만 거대한 주제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주제의식때문에 좀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면, [인셉션]은  미칠듯한 상상력이 한계점 없이 구현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고 합니다. 요즘 아내가 올인하고 있는 조카를 언급하면서 'DVD를 산 다음에 나중에 조카가 크면 같이 손잡고 이 영화를 보겠다'고 했으니 말 다했죠. 필설하기가 힘든데, 정말 너무나 뜻밖의 반응이었습니다. 대부분 무덤덤하게 영화를 보는 편이거든요. 순전히 제이크 질렌홀 몸때문에 (저보고 닉넴을 Jake로 바꾸라더군요. 참내) 열광했던 [페르시아의 왕자], 비행장면 때문에 좋아했던 [드래곤 길들이기] 정도? 아무튼 총괄 평가로 이렇게 '열광'하는 모습은 드물었습니다.

 

 


심지어는 제 첫 감상의 실패(?)까지 언급하더군요. 영화의 모든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엉뚱한 집중을 하다보니 정작 살짝 이해가고 넘어가야하는 부분들을 놓쳐서 그렇게 감상이 일그러진것 아니냐고 하더라구요. 꿈의 단계로 들어갔을때 누가 누구를 알아봐야 하고, 누구를 기억하는 것 같은데 이치에 안맞고, 저 번호는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이고... 이런걸 다 따졌기 때문이라는 거죠. 부끄....

 

 

일단 결말에 대해서는, 그 열린 결말에 대한 다양한 방향을 내놓고 담론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너무나 즐겼습니다. "마지막 팽이가 위태위태할때 암전을 시키는 엔딩을 내놓고 그 이후로 전세계의 영화광들이 난상토론을 벌일 그 광경을 이미 예상하며 감독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라고요.


그리고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이 오히려 구구절절한 설정의 설명보다 더 상황을 이해하는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왜 맬이 결국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코브가 그 비극이후 현실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 '죄책감'이 된 것에 대한 공감. 그리고 그렇게 억눌렸던 부자관계의 끝에서 피셔가 느끼고 생각할 감흥... 그런 모든게 와닿았던 것이죠.

 

 


액션 영화류에 관심이 없는지라 스케일 보다는 아이디어가 더 눈에 띄는 아내로서는 역시 호텔방의 뒤집기 액션과 무중력이 트랜스포머의 변신로봇들 보다 훨씬 더 재밌었고... 설원은 그냥 더운 여름에 시원한 눈 보니 마냥 좋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미 3단계쯤 들어갈때는 거의 몰입한 아내에게 이 영화는 까방권이 생긴 듯 했습니다. 한스 짐머 음악도 어떤 테마가 띄지는 않지만 분위기 조성에는 만점이었고, 에디트 피아프 노래는... 안그래도 [파니 핑크]가 또 하나의 인생의 영화인 아내이니 말 다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셉션]이 영화에 대한 은유의 예찬이다라는 것을 공감하는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단편적인 감상이 아닌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아울러 영화 일을 하는 아내에게는 감독도 감독이지만 각본이나 설명으로는 도저히 감흥이 안 올 저런 미친듯한 상상력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200% 역량을 발휘했을 스탭이나 배우들도 참 대단하고 부럽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인셉션]이라는 꿈에 이미 푹빠진 듯... 심지어는 이 정도 되면 이제는 오스카가 작품상을 줘야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까지도 하더군요.

 

 

 

그러나 극장와서 또 보겠느냐고 물으니 그건 또 아니라고 하네요. 단편적인 장면같은 것을 보며 감흥을 느끼는 것보다는, 차라리 DVD를 사서 곱씹어 보면서 두고 두고 또 해석을 해보겠답니다. 같이 본 사람이 이렇게 즐거웠으니 저 역시 즐거운 관람이었습니다.


영화 보기전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하더니만 차에 타니까 제 아이팟에 있는 OST를 틀더군요. 그러더니 왜 에디트 피아프 노래가 없는 것이냐고 울부짖었습니다. 아마 나중에 합본으로 스페셜 에디션이 나오지 않을까요. 오리지널 노래 말고... 노래 중간에 약간 울리는 분위기가 되는 이펙트를 담은 그런 곡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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