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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안좋아하는 게 연애 리얼리티인데, 이 프로그램은 하도 퀴어로 화제가 되어서 한번 봤습니다. 이번주까지 나온 회차는 일단 다 보았는데... 한 6화까지는 재미를 느꼈지만 그 이상 되니까 그냥 이런 포맷의 모든 게 다 질려버리네요ㅋ 한주 한주 띄엄띄엄 봤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러면 또 한 주씩 텀을 주느라 그 안에 제 관심이 다 식었겠죠.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출연자들을 향해 이런 저런 훈수를 두게 되는데요. 그게 이런 프로그램이 유도한 재미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별로였습니다. 관찰형 예능 카메라를 통한 전지적 시점으로 자꾸 타인을 평가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저 자신을 좀 잊게 된다고 할까요. 바깥에서야 보면 돌아가는 게 다 보이니까 답답할 수도 있고 타박하고 싶기도 하겠지만 저 안에서 출연자들은 그럴 수가 없겠죠. 일반인들인데다가 시종일관 자신을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되니 말입니다. 곱씹어보니 저도 예전에 흑역사 무지하게 많이 만들었어요. 고백했다가 안되니까 하루만에 싸이월드 일촌 다 끊고...ㅋㅋㅋ(저는 신기하게도 한 10년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나서 그 때 일을 곱씹고 추억을 돌이켜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만 보고 있으면 아우 왜 저래!! 아 그런 말 하지마! 라면서 계속해서 깝깝해하고 있단 말이죠. 


이런 연애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두가지 관점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출연자들을 현장 카메라로 직접 쳐다보는 관점, 또 하나는 이걸 보고 이런 저런 코멘트를 덧붙이는 스튜디오 진행자들의 관점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들이 오히려 훈수적 시선을 더 강화시키는 재료로만 활용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청자인 자기가 봐도 답답하고, 진행자들도 다 스튜디오에서 나무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타박하고 싶은 마음은 완전히 확장되는거죠. 리얼 예능이라고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구성된 출연자들의 스튜디오와 비현실적인 규칙 같은 것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시청자들에의 관찰감으로 만듭니다. 저도 볼 때는 신나게 욕하면서 봤지만 제가 저 나이에, 저만의 부족한 스펙과 경험을 가지고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과연 언제나 멋지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전 자신이 없네요ㅋ 언제나 그렇듯 보는 입장에서야 이 때 이 멘트를 찔러넣어야~~ 하면서 가정법을 쓸 수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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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프로그램인데 서사의 균형이 남자 여자 딱 맞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좋아하면 울리는](줄여서 좋알람)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접근해서 마음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그게 현 사회의 이성애가 흘러가는 방향이니 일견 자연스러울 수 있겠습니다만, 여자가 선택권을 가지고 기다리는 입장에서 남자에게 적극성을 발휘하는 게 조금 부자연스러워지는 그런 그림이 짜맞춰진다고 할까요. 여자에게 '들이대고', '어필을 하고', '경쟁하는' 이런 주도적인 모습들은 여자 출연자들에게서 잘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건강하거나 균형이 잘 잡혀있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이를테면 남자 출연자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넌 누구 찍었냐 개는 누구좋아하는 것 같냐 하면서 쑥덕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자출연자들이 남자를 고르고 논의하는 모습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연애 프로에서도 여자가 좀 대상화되어있는 느낌이 있었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왜 남자 출연자들이 자신이 호감둔 상대를 다른 남자들과 공유하고 논의하는지 좀 이해가 안갔습니다. 제가 프라이빗한 사람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바깥에 볼 때 남자출연자들이 그렇게 쑥덕대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을 호모소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거든요. 이른바 남자들의 여자쟁탈전이 되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의 "와꾸"가 그렇게 짜여져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보면서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남자들의 품평회를 여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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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을 약간 남탕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출연자 타잔과 안새로이 입니다. 이 두 사람이 호모소셜을 만들어버립니다. 자기들끼리 좀 어울려다니면서, 남자들끼리 막 누구한테 하트 줬냐 하트 받았냐 하트 몇개냐 하는 이야기들을 시시콜콜 계속 떠들어댑니다. 그런 장면들 속에서 제 신경을 진짜 건드렸던 게, 바이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하트를 어플로 전송했는데, 그걸 자기들끼리 "진짜야?" 하면서 당사자를 빼놓고 막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를 좀 소외시키는 것 같아서 좀 정이 떨어지더라구요...ㅎㅎ 특이하게도 그 바이 남성만 이 호모소셜에서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노가미에서 제일 자유로운 느낌으로 판을 휩쓸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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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로 봤을 때는 타잔이란 출연자의 발언들이 재미있던 게 제가 이 프로에 관심을 가진 계기이기도 했는데요. 방송으로 보니 진짜 피곤해졌습니다ㅋㅋㅋ 정말이지 제가 아무리 자아성찰을 해도 저 타잔처럼은 안그랬던 것 같아요. 짤로 보면 웃긴데, 이걸 실시간 흐름으로 보면 좀 질립니다. 왜냐하면, 일단 자기 딴에만 개그인 노잼 멘트들을 시종일관 던져요. 상대와의 템포가 전혀 안맞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방의 모든 행위나 발언을 전부다 자신을 향한 호감/반감으로 다 해석합니다. 이를테면 같이 걷다가 여자가 조금 비틀거려서 타잔한테 기댔다고 칩시다. 그러면 타잔을 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니 지금 내한테 끼부리나?" 웃어도 끼부리냐고 물어보고, 자기를 보고 있어도 꼬시냐고 물어보고, 자기 이야기에 웃어주면 자기한테 반한 거 맞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마이크로 플러팅인데 이게 빈도수도 너무 높고 타율도 높지 않아요ㅠ 그래서 상대방인 차차가 지쳐서 웃습니다. 그 당혹스러운 웃음을, 타잔은 계속 자신을 향한 호감이라고 또 오해해버립니다 ㅋㅋㅋㅋ 


이런 발언들이 그냥 분위기 파악 못하는 바보 캐릭터의 액션이라면 좋았을텐데요. 타잔의 발언들은 종종 차차에게 자신의 호감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듯한 논리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정해진 시간마다 상대에게 하트를 보낼 수가 있고 그 하트를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이 우승을 하는데요. 상대가 하트를 주고 안주고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 마음입니다. 그런데 타잔은 자꾸 차차가 원치 않은 호감이나 호의를 베풀고,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식으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합니다. 나는 너한테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or 나는 너랑 이렇게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너는 왜 나한테 하트를 안주고 자꾸 갈팡질팡하나! 이런 식이죠. 그러니까 대화가 어떻게 되냐면 계속해서 마이크로 플러팅 ex> 나는 낚시 별로 안좋아한다 너만 낚으면 되는데 뭐하러 물고기를 낚나 -> 호감의 대가를 요구 ex> 내는 진짜 니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니 나한테 좋다고 한 거 아니었나? 이 구조의 무한반복입니다. 이렇게까지 들이대는 남자를 차차가 어떻게 대할지 잘 몰라서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지, 조금만 단호한 여자를 만났다면 타잔은 성질 급한 티 좀 그만내라고 바로 면박을 당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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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이 가장 화제에 올라가게 했던 자스민씨 말인데요. 저는 자스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스민이 거의 마지막에 000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던 바로 그 모먼트인데요... 상대방이 하트를 그렇게 많이 쓰는 동안 자신은 하트를 한 개도 쓰지 않았다는 그게 너무 깨더라구요. 저는 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안하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ㅋ 본래 이 게임에서도 제일 전략적 혹은 타산적으로 하트를 모아오던 게 바로 자스민이었는데, 저는 자스민씨가 그 결정적인 순간에도 계산적으로 굴고 있었다는 게 좀 그랬습니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프로그램에서 화폐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하트를 저렇게 쓰게 내버려둘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사의 흐름으로 봐서도 계속해서 다른 "두 사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한명을 추가시키는 게 좀 의아하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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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연애 프로 보면서 그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냐! 라고 물어본다면 저는 고개를 숙이고 예... 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ㅋㅋ 이게 관찰을 주 소재로 하는 예능의 단점인 것 같은데, 평범한 인간이 평범해서 저지르는 실수나 미숙하게 구는 부분들을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는 게 아닐까요. 저는 이 프로그램의 남자 출연자들이 다 싫어졌어요 ㅋㅋ 그나마 안새로이가 좀 좋아지긴 했는데 그것도 상대적인 거지 뭐... 그에 반해 여자 출연자들 두 분은 이 프로그램의 서사상 꽤나 호감이 가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갈색머리의 줄리엣, 또 한분은 검은색 머리의 여왕벌이었습니다. 이 두분은 후발주자로 좋알람 호텔에 들어와서 다른 출연자들과 친해지고 호감을 쌓아가는 게 훨씬 더 어려웠는데도 그 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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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줄리엣은 모든 출연자 중에서 이 프로그램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이 분은 자신도 자유롭게 호감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의 호감의 자유도 인정하는 게 있거든요. 제 생각에 이 프로그램을 거의 모든 출연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좋아하면 알람이 가게끔 하는 이 설정 자체는 자신의 호감 혹은 상대가 자신에게 품은 호감이 언제라도 변할 수 있으니 그걸 작은 기회로만 삼고 보다 자유로운 만남을 가지라는 취지로 이해를 해야지, 순간순간 일희일비 들뜨면서 상대의 호감에 계속 집착하고 자신의 호감을 안들키게 하라는 그런 집착적인 모노가미의 룰이 아니거든요. 당연히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출연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기분도 안좋고 긴장도 되겠지만, 그 마음을 좀 내려놓은 채 자신도 자유롭게 만나거나 상대에게 어필을 꾸준히 하면서도 다른 상대에게도 여지를 열어놓으라는 게 더 맞지 않나 싶어요. 이 부분에서 줄리엣은 등장 때부터 마지막 데이트까지 자유롭게 호감을 주고 받으며 딱히 상대에게 부담도 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타잔과 안새로이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이 두 남자가 계속해서 차차한테만 매달리니까 빠르게 자신의 데이트 상대를 바꾸고 꽃사슴과 서로 교류를 하죠. 그리그 그 과정에서 상대방들 누구에게도 끈적한 집착의 기운을 남기지 않으면서 꽃사슴과 찐한 순간을 갖는데 성공합니다. 딱히 속이는 것도 없고, 자신의 감정에 그 때 그 때 충실한 모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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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은 조금 다른 의미로 응원을 하게 됐습니다. 이 분은 조금 4차원이라고 해야하나? 좀 마이페이스 괴인처럼 등장을 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막 그렇게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인기를 얻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ㅋ 그러다보니 이 분이 후발주자라 사람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한테 매력어필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조금 외로워보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여왕벌이 안새로이와 데이트를 하게 되면서 점점 더 매력도 어필하고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부딪히는 그 과정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상대방이 하트를 줬냐 안줬냐 이런 거 너무 안따지고, 되게 연약해진 순간에 안새로이랑 데이트로 엮이면서 솔직하게 구애하는 부분이 인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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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주가 마지막이네요. 아마 다음주 금요일에 마지막회를 보고 저는 당분간은 연애프로그램을 보는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픽션일지언정 한 명의 영리한 창작자가 더 정교하게 꾸며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던치는 통찰력을 음미하는 게 훨씬 즐거울 것 같습니다. 차라리 [쥴 앤 짐]을 한번 더 보는 게 즐거울 것 같아요. (잔 모로의 그 신경질적인 얼굴!!) 아무리 출연에 동의를 했어도 일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보이는 빈틈과 헛점들을 발견하고 자꾸 시시덕거리며 질타하는 게 저에게는 괴로운 것 같습니다. 타인들을 너무 가십성으로만 소모하는 건 즐거움보다 기빨리는 게 더 큰 것 같아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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