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고 나면,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정리글을 하나 쓰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신의 한수와 악마의 한수가 난무한 선거가 또 있었을까요. 오세훈으로 시작해 나꼼수와 곽노현, 안철수, 박원순으로 이어진, 그야말로 잘 짜여진 한판의 명국이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곽노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곽노현을 감싸안고자 한 김어준의 태도는 분명히 '정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중권의 지적처럼 '닭짓'이나, '우리편감싸기'로만 치부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선을 긋기에 곽노현의 건은 너무나 '정치적'이기 때문에, 김어준의 접근방식이나 태도에는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것을 무리하게 황우석과 연결시키려는 시도야말로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는데, 진중권마저도 그런 식으로 대처했다는 것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만, 사실 진중권은 토론에 임할 때에 항상 공정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진중권이 대부분의 경우 옳았고, 또한 상대방의 태도가 더욱 안 좋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태도는 그냥 용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놓고.


먼저, 자기반성부터 하겠습니다. 선거 하루 전날 저는, 지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의 25.7%의 투표율을  바탕으로 보수진영의 득표율을 예상했었습니다. 25.7% 중 23-24% 를 보수표로 상정하고, 서울시장 선거가 좀더 보수 결집이 가능한 환경이었으니만큼 이보다 1,2% 득표를 더 한다고 보아서 대략 24%에서 최대 26%까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서, 나경원의 최종 득표는 총 유권자 대비 약 22.5% 정도였습니다. 제가 예상한 최소치보다는 1.5%, 최대치보다 3.5% 정도 낮은 비율입니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저의 예상이 틀렸다고 반성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저는, 23%라는 최소수치를 잡을 때에 상당히 안전한 비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25.7%가 주민투표에 나왔으면 그중에 아무리 적어도 23%는 보수다.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계산에는, 보수에 표를 던지는 분들에 대한 저의 선입견이 작용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일선에서 은퇴하신 나이드신 분들이, 새벽부터 줄서서 투표는 꼬박꼬박 하시고, 평일에도 투표장에는 반드시 나오는, 이른바 '콘크리트표' 입니다. 이런 분들이 주민투표때 우르르 몰려나와서 아무런 생각도, 비판의식도 없이 오세훈쪽에 표를 몰아주었다고 관성적으로 생각한 것이죠. 


그것이 저의 편견이었다는 것이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드러난 것이죠. 이 결과를 놓고 보자면, 지난 주민투표때 투표를 했던 25.7%에서 적어도 3% 이상이 실은 진보진영의 표였다는 것이 됩니다. 혹은,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가 박원순쪽에 표를 주신 분들이 그만큼 있었을 수도 있죠. 어느쪽이건, 결과는 같습니다. 저는 저와 반대 성향의 지지자들을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으로 타자화하여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네, 분명히 어떤 성향이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은 단지 확률과 분포의 차이일 뿐입니다. 출구조사를 살펴보면, 60대의 약 30%, 50대의 약 40%가 박원순에 표를 던졌습니다. 아마도, 이분들중의 꽤 많은 숫자가, "아무리 그래도 투표는 해야하는 것 아니냐" 는 믿음을 갖고, 주민투표 때에 투표소에 나와 전면무상급식 쪽에 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저의 가정 속에는 이런 분들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반성은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일종의 괴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꼼수와 황우석을 연결짓는 진중권의 태도가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진중권은 지금, 대중을 일종의 괴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황우석을 따르던 대중은, 황우석의 연구성과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황우석은, 대중과는 유리된 과학의 영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꼼수를 듣는 대중은? 정말로, 대중은 아무 등대나 보고, 판단력없이 이끌려가다 좌초할 뿐인건가요?


네. 군중이라는 것은 위험합니다. 어느 순간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 갈 가능성이 언제나 있어요. 김어준처럼 자기반성보다는 행동력이 앞서고, 더구나 선동적이기까지 한 사람이 깃발을 잡고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에, 진중권이 해야 할 역할은, 김어준이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인가를 좀더 정밀하게 읽어내고 대중들에게 풀이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진중권은, 나꼼수가 가끔씩 아슬아슬한 행동을 할 때마다 비아냥거리고 어그로를 끈 후에, 그에 발끈한 멍청한 몇몇을 상대하면서, 이것봐, 니네들, 황빠때랑 똑같잖아. 라고 다시 비아냥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한순환이에요. 그런데, 그런 멍청한 애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황빠중에도, 심빠중에도, 심지어 진빠중에도 있을겁니다. (아, 변희재가 원래 태생이 진빠 아니었던가요.) 나꼼수는 워낙에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소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 수가 더 많을 뿐입니다. 요컨데, 확률과 분포의 문제일 뿐이라는 겁니다.


최근의 진중권을 보면서 의아해지는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진보는 연대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깨어있는 자발적인 연대와 맹목적으로 어느 한 등대를 향해 가는 군중을 가르는 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진중권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갈라질 수 있는 것인가요. 혹은, 자기가 참여하지 않은 연대는 맹목적인 군중이 되는 겁니까.  목이 쉬도록 연대하라고 하고서는, 지금 사람들이 모여드니까 나꼼수의 행적중 가장 선정적인 것 하나를 꼭집어내어 닭짓에 너절리즘이라고 비아냥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나꼼수가 선정적인 언어를 통해 군중을 선동하고 있다고 한다면 (실제로 선동하고 있습니다만, 이 시기에 선동이 무슨 잘못인지도 저는 잘 판단이 안됩니다.) 진중권은 좀더 정제된 언어를 통해 대중을 이성적으로 설득하고자 하면 됩니다. 전 진중권이 우리 사회에 공헌할 좀더 좋은 길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뒤끝작렬좀 그만하시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이른바 '황빠'와 '심빠'는 상당히 심각한 사회현상이었고, 그로 인해 꽤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상처와 피해를 입었습니다. 진중권은 양쪽 모두에서, 허지웅은 '심빠'  때에 그랬습니다. 그로 인한 내상과 공포는 이해못할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와 어떤 점에서 유사한 - 적어도, 추종자가 많고, 그 중에는 사고력보다는 행동력이 더 앞서는 사람들이 끼어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그러나 노무현의 지지자에서부터 수원FC 의 서포터에 이르기까지, 일단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렇지 않은 집단이 또 어디에 있더란 말입니까. - 예에 대하여, 황우석과 심형래를 들먹이며 비판하는 것은 허망하고 공정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글의 서두의 반성에서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타자화하여 괴물로 그려내는 것이며, 일종의 폭력입니다. '너는 황빠나 다름없어', '이건 심빠들이 하는 짓이야' 와 같이, 타인에게 일종의 레테르를 붙이고 더이상의 의견 개진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이야말로, 실은 황빠나 심빠들이 행했던 폭력과 같은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노빠', 나 '유빠', 와 같이 안좋은 의미의 범주화가 불편합니다. 노빠 라는 말은 어떻게 쓰입니까. 노무현의 지지자들중에서 가장 편협했던 사람들의 특징을 기반으로 '노빠' 라는 개념을 상정하고서는, 너무도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지지자들에 대해 무비판적인 비아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은 조선일보의 특기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괴물과 싸우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한가지만 더, 짧게. 이것은 저 스스로도 정리가 잘 안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물음 형태가 되겠습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좌파들을 향한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고, 믿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좌파적인 신념이라면 - 그것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한 세상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그 행복해야 할 '보다 많은 사람' 은 어디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이것은, 비판이나 비난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저주, 좌파라면 피하기 힘든 도그마에 가까운 것이라 하겠습니다. 1%건, 2%건 지금의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니, 적어도 그만큼의 숫자라도 신념을 지키고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언젠가 10%가 되고, 20%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을 증오하게 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아, 물론 이것은 어떤 답을 바라고 던지는 질문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선거 직후에 게시판에는 어쩔 수 없는 미움들 - 네, 저는 그 미움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알고있고, 심정적으로는 물론 이해합니다. 여기서, 누가먼저 시작했고... 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 이 떠돌았고, 저는 좀 막막했습니다. 좌파에게 증오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증오가 1%에 대한 99%의 분노가 아니라, 99%를 향하고 있는 1%의 증오라면, 그것은 더이상 좌파적인 것이 아니지 않나. 어쨌거나 적어도 90%에 대해서는 똘레랑스를 갖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아마도 많이 아픈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여 조심스럽게 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도와 합리적 보수 진영의 사람들 역시, 좌파 진영에 대해서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십사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10%가 되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것이 되고, 20%가 되면 정말로 세상이 바뀝니다. 지금 한줌도 안되는 숫자라고 할지라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균형에 기여하고 있는 바가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저, 조금만 미움을 덜어내고, 개인단위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합시다. 



또 글을 쓸 여력이 생긴다면, 반드시 선거와 나꼼수와 곽노현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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