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곽노현

2011.11.15 02:41

hj 조회 수:2173

 이어지는 글입니다. 역시 죄다 소설입니다.



검찰이 곽노현의 피의사실을 언론에 뿌리기 시작했을 때 주목할 점은 역시 그 타이밍입니다. 심지어 '같은편'인 정두언마저도, '놀라운 타이밍이다' 라고 트윗을 날렸다가, 그 발언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깨닫고 다시 '타이밍만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할 정도였으니까요. 예. 정두언은 별 생각없이 진심을 흘린 셈이 되었지만, 이 타이밍은 그야말로 너무나 절묘하여, 그것이 기획된 것이라고 해도 놀랍고, 기획된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박명기가 전격 체포되고 언론에 검찰이 이 사실을 알린 것은, 오세훈이 시장직 사퇴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 8월 27일이었습니다.



10월의 서울시장재선거가 확정된 바로 다음날 알려진 곽노현 수사의 타이밍을 정치적인 것이 아니고 순전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우연입니다. 반면에, 이것을 정치적인 것이고 기획된 타이밍이라고 가정했을 때에는, 검찰은 이미 서울시장 재선거가 치루어질 것을 미리 알고 거기에 맞춰 일정을 잡아 놓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세훈은 검찰의 수사발표일정을 미리 알고, 그에 따라 사퇴발표 시기를 조율했다는 것이 됩니다. 이 양쪽의 일정을 맞출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서, 이전까지는 순전히 소설이었던 김어준의 '오세훈대권 가카기획설' 이 갑자기 힘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오세훈대권 가카기획설' 을 외면하기 어려운 것은, 곽노현 수사시점에서 이 음모론이 너무나 잘 짜여진 스토리를 획득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획된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 타이밍에 대해서 두가지 의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왜 검찰은 곽노현 카드를, 서울시 주민투표때 쓰지 않고 이 시기에 썼는가. 애초에 서울시 주민투표는 오세훈의 유상급식 대 곽노현의 무상급식의 구도였기 때문에, 주민투표때 쓰지 않고 아껴두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카드입니다. 두번째로, 왜 선거가 끝나자 마자 바로 오세훈 사퇴와 곽노현 수사를 발표하였는가. 서울시장 재선거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오세훈은 9월 30일 이전에만 사퇴를 하면 되었습니다. 물론, 여권에서도 시장후보 선출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긴 했습니다만 이쪽이 교통정리가 간단한 데 비해, 재야는 접어두고 민노당과의 단일화만 생각하더라도 야권은 조금 더 정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오세훈은 8월 26일에 사퇴하면서 야권에 두달 가까운 시간을 준 것입니다.



첫번째 의문에는 이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오세훈이 주민투표를 밀어붙일 시점에서, 주민투표 패배 - 오세훈 사퇴로 인한 서울시장 재선거가 기획된 것이라는 겁니다. 만약, 서울시장 재선거가 없었다면 이 시기는 그냥 그저 그런 재보선 시기이고, (물론, 박태규의 귀국에 시기를 맞춘 것이라는 또다른 음모론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 카드는 그대로 허공에 날아가버립니다. 애초부터 주민투표에 전력을 다해 이기겠다는 기획이었다면 곽노현 카드는 그때 쓰였어야 합니다. 곽노현 카드가 오세훈의 사퇴 직후에 쓰여짐으로써 "주민투표에 지고 시장직을 사퇴한지 삼일만에 부활해 대권에 도전하리라" 는 김어준의 예언이 설득력을 갖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두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검찰의 행보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이 27일 박명기 교수를 체포한 이후에, 최초로 소환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곽노현교육감의 부인이었습니다. 소환 이유도, 기소사유가 될 후보자 매수의 직접적인 증거라고는 할 수 없는, 자금의 출처조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녹취자료, 각서 등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하다가, 9월 2일에는 전격적으로 곽노현의 자택을 압수수색합니다. 이것은 양쪽으로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중들에게는, 곽노현이 정말로 중죄인이라는 메세지를, 곽노현 본인에게는 이 수사가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압박의 메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곽노현은 당선무효형을 받으면, 보전받은 약 35억원의 선거비용을 토해내야 합니다. 반면에 기소 이전에 교육감직을 사퇴하면 보전비용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검찰은 아예 기소 시기를 9월 24일 무렵에 하겠다고 고지까지 했습니다. (실제 기소는 9월 22일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9월 30일 이전에 곽노현이 사퇴하면 10월 26일의 재선거는 서울시장-서울교육감 동시 재선거가 됩니다.



정말 굉장한 타이밍, 절묘한 우연이 아닙니까. 애초에 오세훈은 당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서 과감하고 신속하게 서울시장사퇴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곽노현이 교육감재선거시기를 결정하는 날짜인 9월 30일 이전까지 사퇴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 된 것입니다. 본격 '사퇴권하는 검찰' 과 함께 말입니다.



자, 이러면 판세가 이상해집니다. 오세훈은 애초에 곽노현과의 대결구도로 판을 짜왔습니다. 이 패배의 책임을 지고 곧바로 사퇴를 하면서 서울시장 재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그 곽노현은 부정한 이유로 검찰에 기소되어, 선거비용 보전비를 내놓지 않으려고 잽싸게 사퇴해 버림으로써 교육감선거까지 함께 열리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과연 다시 개혁진영의 교육감이 당선될 수 있겠습니까. 다른 한편으로, 보수진영의 교육감을 선택하면서 서울시장은 개혁진영의 후보에 표를 던지는 것이 합당하게 여겨지겠습니까. 그리하여 보수진영이 서울시장은 물론, 교육감 자리까지 되찾아 온다면, 오세훈은 '비열한 곽노현'과 맞서 정의를 지키고 자신의 몸을 던져 보수의 가치를 지킨 진성 보수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기로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김어준은 크게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 나꼼수는 마치 게임을 하듯이 판세를 읽고 판에 개입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읽은 수에 맞추어 상대가 꼬박꼬박 수를 두어주니, 흥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서울시장 선거에 돌입하면, 계가도 나쁘지 않습니다. 지난 지방선거만 하더라도 피의자의 신분으로 온갖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명숙은 오세훈과 접전을 벌였으며, 노회찬의 표를 합치면 보수진영의 표를 앞섭니다. 그 사이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SNS 를 통한 젊은 자유주의자 들의 정치참여도가 희망버스를 통해 확인되었고, 주민투표에서의 여세를 모아간다면 서울시장 탈환과 총선승리까지도 바라볼 기세였습니다. 아싸 됴쿠나~ 를 외치려는 그 찰나에, 자신의 계산에 전혀 없었던 수가 나와버린 겁니다.



나꼼수의 대응은 신속하고 대담한 것이었습니다. 이 대응은, 김어준의 기질하고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정치적인 것에는 정치적으로, 감정적인 것에는 감정적인 것으로, 나중에 책임질 것이 있으면 그때가서 책임을 지고. 라는 간명한 태도로 나서버린 것입니다. 애초에 정치적인 수사가 분명해 보이는데, 이것을 왜 논리적이나 도덕적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 김어준식의 정의론입니다. 여기에서 만약 도덕적으로 곽노현을 비난해 버린다면, 정치적으로는 애매한 포지션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넌 도덕적으로 나쁜 놈이고, 너같은 놈이 교육감을 맡으면 안돼. 그렇지만, 교육감 재선거는 안 했으면 좋겠으니, 9월 30일 이후에 사퇴해주면 안되겠니 (35억은 니가 알아서 하고)" 와 같은 이상한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은,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서, 교육감 재선거를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결과까지도 모두 받아들이는 제스쳐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을 입증하려고 박근혜 대통령과 오세훈 차차기까지 받아들인다는 것이 과연 '도덕적인' 일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들을 죄다 쓸어버리고, 김어준은 감성적인 접근을 취했습니다. 곽노현의 수사는 정치적 쇼일 뿐이다. 곽노현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어차피 대법원까지 가면 그때는 정권 바뀌어 있고 곽노현의 유무죄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되어있다. 왜 우리가 상대편 좋은 일을 해주고 있냐. 라는 지지의 태도를 명확하게 취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김어준의 기질과 함께, 곽노현 수사에 있어 그때까지 대중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몇가지 사실들 - 각서라고 한 것은 박명기의 메모일 뿐이고, 녹취자료에는 곽노현에게 유리한 정황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곽노현이 선거비 보전 합의사실을 알았던 것은 합의로부터 4개월 이후였다 - 을 주진우기자의 정보원을 토해 나꼼수팀이 알고 있었던 덕이기도 합니다. 검찰의 거의 노골적인 표적수사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당분간은 이쪽에 크게 꿀릴 것이 없다는 계산을 자체적으로 한 것이겠죠. 김어준의 접근은, 감정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곡을 찌르는 측면이 있을 뿐더러, 정치적 수로 볼 때는 신속하고 적절한 한 수입니다.



"비겁하게 쫄지 말아" 라는 김어준의 지적은 유권자나 지지자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민주당과 곽노현 당사자를 향한 메세지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민주당을 향해 쫄지 말고 함께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해라. 왜 정치적 공세를 정치적으로 받아치지 못하냐. 라는 주문을 함과 동시에, 곽노현으로 하여금 함께 책임질테니 사퇴하지 말고 버텨달라 라는 메세지를 보낸 것이죠. 김어준은, 곽노현의 건을 놓고 논리적인 논쟁이 붙었을 때에, 유불리를 떠나 논쟁하는 것 자체만으로 이쪽이 불리해 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꼼수에서 김어준은, 감성적인 언사들을 잔뜩 늘어놓은 후에, "이것으로 이 떡밥은 쉬었어. 다른 아젠다 내놔" 라고 자신만만한 듯이 이야기했습니다만, 김어준 스스로가 그것을 믿었다기보다는, 상대가 그렇게 믿고 자신의 뜻대로 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라 보입니다. 곽노현이라는 아젠다를 얼른 테이블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먹혔을까요? 어느 정도는 먹히고 있었습니다. 검찰의 최초의 공세가 수그러들고, 다른 사실들도 하나둘씩 알려지면서 동정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안철수라는 또 하나의 신의 수가 등장합니다.



(너무 늦어져서 시의성은 점점 떨어지는 철지난 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다시 기약없는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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