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83분. 장르는 스릴러라는데 체감은 호러에 가까워요. 스포일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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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엔 저 집도 안 나오고 주인공들도 저런 옷 안 입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들의 소망을 그린 포스터인 셈.)



 - 뽀샤쉬한 예쁜 집 탁자 위에 갓난 아가를 올려 두고 행복해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만, 모델하우스였네요. 얘들이 여기서 자기 집 놀이를 하는 이유는 문자 그대로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이 없어요. 그냥 자기 집이 없는 게 아니라 머물 곳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도 안 하는 휴일에는 이렇게 짐을 다 싸들고 (라고 해봐야 캐리어 둘 정도) 모델하우스에서 궁상을 떨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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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훼이크다 이것들아!!!)


 대략 어떻게 된 사연이냐면. 남자는 만만찮게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가 연락도 끊고 사는 아빠 하나가 가족의 전부. 여자는 사실상 고아. 성장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어린 나이에 덜컥 애를 만들어 버려서 뭐 먹고 살 특별한 기술도 없고. 남자는 배달 대행 일을 하고 여자는 유모차 끌면서 아파트에 광고 전단 붙이러 다니면서 하루 벌어 간신히 하루 먹고 삽니다.


 그래도 대견한 사람들이에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부 사이도 좋고 자기들 자식도 끔찍하게 아낍니다. 일도 되게 열심히 하고 참 다들 양심적이고 착해서 주변에 민폐도 전혀 끼치지 않지요. 그런데 다만...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간신히 모은 보증금 200만원을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 당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거구요. 그렇게 모델 하우스와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다가 아가가 다쳐서 병원비로 수십 날리고. 좌절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갑자기 남편이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맨날 배달해서 친해진 할머니가 미국으로 가족 보러 간다고 한 달간 집 좀 봐달랬대요. 오오 드디어 한 달이지만 공짜로 우리 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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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 하우스!!에 도착한 주인공 가족. 둘 사이에 보이는 저 캐리어가 세 사람 세간의 전부입니다.)



 - 하지만 장르를 보면 실상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영화도 그걸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아요. 저 할머니 얘기할 때 남자애 표정이든 말투든 이건 백퍼 구라인지라... 런닝타임이 절반쯤 지나면 구체적으로 그게 어떻게 된 건지도 대수롭지 않게 보여주고요. 사실 여자도 남편의 얘기를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도 지치고 힘드니 될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걍 믿는 척 하는 느낌. 결국 그 행복한 기간 동안 남자도, 여자도 속마음은 불편해 환장할 지경이고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긴장 만땅인 상태로 안절부절... 이게 포인트인 영화입니다. 패를 다 대놓고 보여주는데 그게 이미 극복할 수 없는 초강력 패인 거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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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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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절부절)



 - 보면서 '이런 영화가 왜 이제 나왔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뭐 '기생충'이 이미 있긴 합니다만 제 느낌에 그 영화에서 집이라는 공간은 계급 구조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설국열차'의 기차처럼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집은 그냥 집이에요. 생존을 위한 필수 공간이고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들은 합법적으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처지의 인간들이 되구요. 의미 없는 비교지만 그 '집'과 '생존'에 대한 절박감으로 따진다면 기생충의 주인공들은 이 '홈리스'의 부부에겐 쨉도 안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내용이 시작부터 끝까지 그 집이라는 소재에 철저하게 집중을 해요. 그야말로 '본격 부동산 스릴러/호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도 아주아주 한국적인 리얼리티를 팍팍 집어 넣어서 만든. 보는 내내 진저리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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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내 잡아내는 그림들이 대학생 때 자주 보던 어휘들을 계속 떠오르게 합니다. 고독. 단절. 인간 소외 등등.)



 - 한 가지 재밌는 점이라면. 막상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게 별로 없는 영화입니다. 처음에 그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는 사정 자체가 많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보통의 '범죄극' 이야기들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대부분이 참으로 평범하고 익숙하기 그지 없습니다. 근데... 그게 워낙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보니 보는 내내 정말 숨이 턱턱 막혀요.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구요. 게다가 치트 아이템 하나가 있지 않겠습니까? 많이 어린 아가요. 살 집이 없어서 이런 아가를 하루 종일 데리고 돌아다니며 돌봐야 한다는 상황부터가 정말 끔찍한 악몽이죠. 특히나 직접 육아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정말 정말 저엉말로 끔찍하다는 생각을 영화 내내 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가 그랬어요. ㅋㅋㅋ 게다가 그 아가는 갓난 아가 주제에 연기(?)도 잘 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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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태로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니 그 자체로 호러인 거죠.)



 - 그렇게 내내 갑갑하고 애잔하고 긴장되는 분위기를 정말 철벽같이 유지하는 가운데, 이야기의 후반 전개가 또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계속 나쁜 일들이 생기고 또 생기고 추가되긴 하지만 특별히 강력한 사건은 안 벌어져요. 계속 비슷한 상황이 유지되는 가운데 변하는 건 사건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멘탈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힘든 상황에서도 참 심성들 곱고 열심히 살아 보려 몸부림을 치던 이 어린 부부가 조금씩 조금씩 양심을 잃고 도덕 관념을 내다 버리게 되는 거죠. 그걸 차분하게, 차근차근 보여주는데 도저히 주인공들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는 게 점점 더 힘들어져요. 그리고 당연히도 이들에게 해피 엔딩 같은 게 찾아올 리가 없으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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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열심히, 정직하게 잘 살아 보려고 몸부림을 쳐 보는데요... 사장님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요...)



 - 뭐 더 얘기할 게 없네요.

 본격 대한민국 부동산 아포칼립스(...) 스릴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입부의 작은 비약을 제외하면 신문 사회면 같은 데서 흔히 볼만한 소소한 소재들을 가져다가 정말 징글징글하도록 리얼하고도 공포스럽게 엮어 놨어요.

 뭐라 특별히 찝어 말할 곳은 없지만 그냥 전반적으로 연출이 단단하고 배우들도 (아가까지!) 잘 해줘서 보는 사람을 끝까지 숨막히게 밀어 붙이는 작고 강한 영화였습니다. 그냥 장르물로 봐도 아주 훌륭하고, 사회성 드라마로 봐도 부족함 없이 탄탄하구요.

 찾아보니 임승현 감독이란 분은 이게 장편 영화로는 데뷔작이고 전에는 주로 호러 위주의 작업을 했다던데, 그래서 이렇게 영화가 호러 분위기가 났나 싶기도 하구요. 암튼 기억해 둘만한 이름이란 생각을 합니다. 아직 OTT엔 없고 전 올레티비 비싼 요금제 덕에 추가금 없이 봤습니다만. 보실 수 있는 분들은 한 번 보세요. 전 아주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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