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말씀하시는 기능적으로 촘촘히 잘 짜여진 각본이나 서정적인 연출, 섬세한 연기 외에도 '밀회'에 제가 열광하는 지점은 바로 디테일이예요.


사실 채널을 돌라다가 우연히 본 한 장면이 이 드라마에 완전 꽂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영우(김혜은 분)가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김희애 남편에게 양주를 뿌리고 (여기까지는 평범) 티슈를 한장 쓱 뽑아 던지는 장면이었죠.

이 디테일에서 저는 느꼈드랬죠. '헐 ㅋ 이 드라마 본방사수요 ㅋ'


양주를 뿌리는 것으로 자유분방 제 멋대로인 싸가지 부유층 자제 + 

티슈를 한장 쓱 뽑아 던지는 것으로 잘 교육받고 자랐으며 (김용건이 분한 아버지같은 철저한 비지니스맨 캐릭터 밑에서 자란 딸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더 그럴싸한 행동) 남자를 다룰 줄 아는 여성이 확 느낌으로 다가오는 씬이었어요.

한편 맥락을 알고보니 김희애 남편이 이 관계에서 얼마나 을의 위치에 있으며 평생 호구잡혀 살아왔는지도 짐작이가더군요.


그렇게 1화부터 정주행(?)하니 정말 충격적이더군요.

초반부에 김희애가 깜빡잊고 스커트를 입고 오지 않은 씬은 정말 최고입니다.(일단 펜슬스커트에 대한 제 페티쉬를 자극^^;) 

안에 이너스커트를 입는 고전적이고 단정한 오피스 레이디임을 보여주면서도 겉옷을 깜빡 잊고 올정도로 어딘가 맹탕인 구석이 있는 귀여운 사람임을 보여주죠.

특히 그 대목에서 김희애 캐릭터의 반응은 호탕하면서 센스있게 느껴지고

후에 비서가 사온 스커트를 입다가 문이 열리자 화들짝 놀라는 장면에서는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들죠.


2화를 보면 김희애가 유아인에게 몇가지를 묻다가 '그래도 어떻게 집에(...)피아노가 있었네'라는 대사를 하면서 중간에 약간 뜸을 들입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저런 말을 할때 뱉으면서 혹시 이것이 실례가 되는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뜩 들어 뜸을 들이는 것처럼요.

이를 통해 캐릭터가 신중하고 배려심이 있는 성품을 갖고 있다는걸 짧은 순간에 보여주는 듯 합니다.


2화 마지막 즈음에서 김희애가 유아인의 집에 방문했을 때 하는 대사들도 끝내줍니다.

'이선재 뭐가 이렇게 아프니? 발바닥이 막 타는 것 같다' '안괜찮은데 너무 웃겨'라니요!

상대가 기분나쁘지 않도록 애교스럽게 말하면서도 정확히 자신의 상태를 전달하죠. 과연 괴팍한 사모님들을 상대해온 관록이 돋보이는 화술입니다.

이 캐릭터가 사람을 대하는 법은 항상 이런 영리한 방식입니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도 막연한 짜증을 낸다거나 속내를 숨기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 법이 없어요.

한국의 영화, 드라마에서 이렇게 똑똑하게 처신하고 이해가 가는 캐릭터는 최근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디테일들로 쌓아올려진 김희애의 캐릭터는 정말 아름다워요. 그러니 (거의 초현실적인) 그녀가 마흔살이라도 20대든 30대든 반할 것같다는 설득력이 충분하죠.


2화에서 유아인이 기분이 한껏 좋아져 엄마와 여자친구를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씬도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저그런 트렌디 드라마였다면 유아인, 그러니까 남자 주인공은 절대 현재의 허울뿐인 여자친구에게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만을 (제일) 사랑하고 다른 과거나 미래는 허락되지 않으니까요.

거기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쩌다 엮인 여자친구라면? 대부분 계속 거부하고 절대 정을 붙이는 시늉조차 하지 않아요.

후에 시청자들기 보기에 '나쁜놈'이 될만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유아인은 이성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친구에게 사랑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평범한 스무살 남자애이기 때문이죠. 아마 스무살 무렵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다 생긴 여자친구에게 그냥 저냥 사랑한다고 하는 남자애들은 많을겁니다. 이게 현실적인거죠.

사실 그 나이때 사랑의 열병을 알기에는 우리 대부분은 너무도 가혹한 입시의 굴레에 놓여있었지 않습니까?(유아인 캐릭터의 경우에는 생계)

게다가 두 사람은 오랜시간동안 친구였습니다. 사랑이 뭔지는 몰라도 인간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분이 좋아 의미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할수도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부분에서 유아인 캐릭터의 나이대와 천진함이 드러나더군요.


김용건이 맡은 재벌 회장님 캐릭터도 좋습니다. 그 정도의 부를 쌓아올린 중년의 남성은 절대 순진하지 않죠.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어딘가 음흉하고 뒤로는 계산적인 면이 있어야합니다.

대놓고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거나 '뭬야!'하고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다 뒷목잡고 쓰러지는-_- 회장님들만 보다 한결 현실적인 회장님 캐릭터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심지어 최근작 별그대에서 자식의 악행에 참회의 눈물 흘리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_- 재벌회장이란 기이한 판타지를 보고나니 더더욱)

앞으로 클래식 마피아나 음대 입시 카르텔을 풀어가며 나올 예정인 악당역의 캐릭터들도 기대가 됩니다.


이것저것 제가 더 조잘대기에는 너무 많은 디테일이 숨어있는 드라마입니다. 간만에 정말 '웰메이드'라 불릴만한 한국 드라마가 나온것같아요.


듀게 여러분이 가장 좋았던 이 드라마의 디테일은 무엇인가요?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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