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부터 낌새는 있었지만, 이번 편에서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심지어 '완전'한 것처럼 보였던 캐릭터들조차 새로운 틀 아래에서 다시금 갈등하게 만듦으로써 제다이의 존재를 프리퀄의 아둔한 꼰대 집단에서 훨씬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존재들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부터 만족스럽습니다. 그 동안 이 시리즈는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포스의 균형'을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다크사이드를 타자화하며 폐기하고 거부하여야 할 대상처럼 표현해 왔죠. 진정한 '균형'을 말하는 건 사실상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부러 팬들이 2년 내내 물고 뜯던 떡밥들을 죄다 폐기시킴으로써 제다이vs시스, 스카이워커 콩가루 가문 내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한정짓지 않겠다는 의지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기존의 스타워즈 이야기에선 늘 변두리에 존재했던 제다이, 시스 외의 캐릭터들을 전면으로 끌어오는 선택이 매우 좋았습니다. 과거의 스타워즈들을 보면 내적 갈등은 늘 제다이만의 몫이었습니다. 한은 회색의 영역에 걸쳐 있는 인물이었으나 그것이 매력적으로 그려졌을 뿐, 스스로 선택하고 미끄러지는 과정이 진지하게 그려진 적은 없었죠. 랜도 같은 경우조차도 그가 선인인지 악인인지 관객과 주요 인물들의 판단의 객체로 등장했을 뿐 개인의 내적 갈등이 제대로 조명받은 바는 없습니다. 그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미 선인으로 확정된 다음부터이고요.

그러나 라스트제다이에서는 레이, 벤, 루크, 레아 뿐 아니라 포, 핀, 로즈, 홀도 등 수많은 캐릭터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대하여 회의하거나 그 판단으로 인해 실패하고 다시금 어떤 선택을 하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그려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카지노 행성 시퀀스도 핀과 로즈가 그러한 과정을 따라가는 것을 그려내기 위한 선택이었고요. 

루크는 가르침 중에 "포스는 제다이가 갖는 힘이 아니라 만물에 존재하는 힘으로 만물을 연결한다"고 말합니다. 영화는 그 연장선 상에서 포스,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로 대표되는 내적 갈등이 제다이(혹은 포스 센서티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극중 인물들이 겪는 모든 좌절과 실패, 흔들림이 포스의 순리 안에 있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프리퀄 내내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선택된 자' 타령을 했던 것과는 아예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죠. 


여기서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연출로 관객에게 어떤 판단들을 종용합니다. 그리고 그 섣부른 판단들이 필연적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도록 설계해 두었습니다. 마치 나홍진의 '곡성'에서의 연출 방법론을 연상시키더군요.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자신의 판단을 회의하고 수정해 가야 합니다. 이로써 영화는 관객조차도 라이드사이드와 다크사이드 사이의 회색 지대로 관객을 인도함과 동시에, 극중 인물들이 끝없이 고뇌하고 갈등함으로써 연결되는 포스의 순리 안에 관객이 동참하게끔 합니다. 몇몇 부분에서 삐그덕거리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저는 전반적인 수준에서 이 정도에 이르는 연출을 ('제국의 역습' 정도를 제외하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흔한 영웅 서사를 위한 컨셉 정도로만 여겨졌던 제다이, 포스, 라이트사이드, 다크사이드의 개념들은 모두 인물들의 삶 속에서의 선택과 실패, 그리고 실재하는 관객들의 일상과도 연결되어 비로소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스타워즈 클래식 삼부작, 로그원에서 그토록 그려내고자 했던 '그 모든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는다는 것'의 의미를,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모든 스타워즈 영화들을 통틀어 가장 이질적으로, 그러나 가장 적확하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진행되는 행성은 흰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지는 행성입니다. 흰색은 빛, 라이트사이드의 상징이라 볼 수 있고, 붉은색은 시리즈 전통상 다크사이드의 상징입니다. 흰색이 붉은색을 품고 있는 그 행성의 존재는 그 자체로 포스와 제다이의 형상화나 다름이 없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영화는 서사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굳이 반란군 병사 한 명이 붉은 물질을 맛보더니 '소금'이라 말하는 장면을 삽입합니다. 시리즈 내내 다크사이드, 악, 빛의 대립항인 어둠의 상징처럼 쓰이던 색이 이제는 성경 속 예수의 가르침에서 언급된,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에서의 '소금'으로 그 의미가 변화한 것입니다. 이는 기존의 라이트사이드/다크사이드의 이분법을 폐기하고 흰색 안의 붉은색 또한 세상을 정화시키는 소금처럼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언급함으로써 진정한 '포스의 균형'을 이야기하는 장치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 위에서 영화 내내 내적 갈등을 겪어 온 모든 인물들이 모여 마지막 혈전을 벌이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클라이맥스가 진행된다는 점은 그 자체로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루크는 말합니다. "나는 마지막 제다이가 아니다." 

마치 그 과정을 거쳐온 모두가 포스의 순리 안에 있으며 모두가 제다이나 마찬가지라는 듯 말입니다.

클래식 삼부작, 프리퀄의 그 지옥같은 삼부작, 한 편의 시퀄과 로그원을 거쳐서야 비로소 제다이의 길을 극중의 모든 캐릭터들에게, 나아가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까지 확장시킨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울려퍼진 그 대사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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