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라는 말은 영어의 gang에다 우리말의 패거리 할 때의 패를 붙여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하죠. 동두천에서 첨 만들어져서 유행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 말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깡패들은 있었죠. 무뢰배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요. 요 근래 선거방해라던가, 아니면 여의도 앞에서 가스통 들고 단합대회 하시는 분들 때문에 많이들 신경이 쓰이나봐요. 그 훨씬 이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지금으로부터 50년전, 그러니까 1960년 즈음이어요. 썩고 또 썩다 못한 자유당 정권이 어떻게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 시기. 정치깡패들이 활개를 쳤죠. 깡패면 깡패지 왜 정치깡패냐 하면 깡패 일을 하면서 정치일에 참여했거든요.

 

정치깡패들이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해요.
상인들에게 받은 돈 정치자금으로 상납하거나,
야당의원으로 나선다는 사람 집에 찾아가서 두들겨 패고 너 선거 나가면 죽는다고 으름장 놓는다거나,
여당 너무하다고 시위하는 사람 길거리에서 때리거나...
아, 그런 일도 있었네요. 야당 의원들 욕하는 포스터 붙여놓은 뒤 그거 떼는 사람들 패는 일도요.

 

드라마에선 이게 멋지게 다뤄지지만, 그 땐 부삽, 갈고리, 벽돌... 심하면 손도끼 같은 무시무시한 소도구들이 동원되었지요. 심지어 죽는 야당 의원들까지 나왔어요. 뭐, 당시 최대 번화가이던 단성사 앞에서 총이 발사되는 일까지 있었으니... (이건 야당 의원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지만 자유당의 부패가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시위를 벌이거나 모임을 가지거나 했지요. 그걸 방해하는 것도 정치깡패들의 일이었습니다. 수법은 대충 이렇습니다. 자유당에 반대하는 사람들 - 이를 테면 민주당이 모임을 가진다면 이런 테크트리를 밟습니다.

 

1. 미리 섞여있다가 집회가 시작되면 주최측에 욕설을 퍼붓거나 물건을 던지며 난동을 부린다.
2. 제지하는 주최측 사람들과 몸싸움이 벌어진다.
3. 소란을 벌였다는 이유로 경찰이 모임 자체를 금지해버린다.

 

...이게 전부? 하겠지만 의외로 잘 먹혀들어갔습니다. 경찰들도 한통속이라서, 오히려 깡패들이 사달을 일으켜주기를 목 빼고 기다렸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마이크를 꺼버리고 집회 자체를 해산시켜 버렸죠.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수법이죠?
피해를 본 사람들이 경찰에게 호소를 해도 누군지 잘 몰라서... 라는 말로 핑계를 댔고요.
검찰이 깡패들을 체포하려면 미리 정보를 줘서 달아나게까지 했고요.

 

이런 깡패들의 난장이 피크에 도달했던 것은 장충단 집회 방해사건이어요.1957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그리고 이승만의 라이벌이던 조병옥이 장충단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을 때 이걸 방해하기 위한 여당 측의 정치깡패들이 몰려들어 시작 전부터 1000명이나 모여있었대요. 그래서 결국 집회가 시작하자마자 깡패들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때리고, 마이크를 불태워버리고, 돌을 던졌죠. 치안을 담당하고 깡패들을 막아야 할 경찰의 행방이 묘연했던 건 당연한 일이고요.

그런 일이 하도 거듭되다보니, 기자들을 비롯해서 모두 알아보게 되었죠.
그 놈이 그 놈이거든요. 야당 쪽에서 분통을 터뜨렸지요.

"아놔 , 정체 불분명하다더니 정체 분명하잖아!"

그러자 자유당 쪽은 "대통령을 욕하다니 너 징계" 쪽으로 나갔습니다. 야당이 분통을 터뜨리며 퇴장해버리자 여당들끼리 결정하기도 했고요.
어디서 본 거 같기도 하죠? 에이, 수십년 전이라니까요.

 

장충단 사건 당시 동원된 깡패들에게는 설렁탕을 먹을 수 있는 회수권 두 장에 택시비 200환이 지급되었대요.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사람을 마구 때리는 데 고작 그 정도냐 하겠지만,
뭐, 유다도 예수님을 은화 30전에 팔았는 걸요.
깡패들 중에는 당시에 선전했던 거 마냥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 안 되면 북괴가 쳐들어온다"를 순진하게 믿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다 자기 욕심 있고 먹고 살려고 그랬던 거지요. 깡패들이 일자무식일 거 같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당시 기준으론 고학력자들이 많았지요. 당시 전쟁 막 끝나서 취직 힘들고 하니, 일단 돈 되는 깡패로 몰린 사람이 많았던 거죠.
그러니까 당장 이익에 눈이 멀어 나쁜 일도 거침없이 했던 거죠. 자유당 뒷돈 받아가며 선거장에서 설쳤던 반공청년단도 그렇고.

 

그래서 사람들이 깡패들에게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냐 하면 그건 아니어요.
자꾸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이건 뭔가 아닌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죠. 그냥 정치하는 사람들 말고요, 나라 안에서 공감대가 생기기 시작한 거여요. 그러다 3. 15 부정선거가 벌어지고, 고려대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깡패들에게 맞게 되고, 이런 어이없는 일이 자꾸 벌어지자 못 참게 된 사람들이 일어나서 4.19로 이어지게 되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자, 깡패들도 경찰들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답니다.

 

그 뒤로 정치깡패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잘 아실거여요, 드라마도 만들어졌으니...
이렇듯 충성(?)을 다한 깡패들이지만 자유당 높은 분들에겐그냥 필요하니까 쓰는 사냥개였을 뿐.
자유당이 무너진 다음 들어선 군사정권은 이전 썩은 정치 청산한다며 정치깡패 중 유명한 사람들 몇몇을 조리돌림(진짜루) 시킨 뒤 교수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국토건설단이라는 노가다를 뛰게 했지요.
그렇게 해서 깡패가 뿌리 뽑혔다면... 나중에 삼청교육대도 없었겠죠.

어르신들은 예전을 회상할 때 이전 깡패들은 그래도 의리가 있었다, 라고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들은 자기 편인 사람들에겐 한없이 친절했고, 적인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깡패였고, 쏠쏠한 이익을 찾아 이리저리 디볐고, 죽음과 위험 앞에서는 겁을 집어먹기도 했고, 그리고 가족에게는 소중한 아들이자 부모였지요.
그냥, 사람들이었던 거 같아요.


언젠가 그 때 깡패일을 하다가 이젠 노인이 된 분의 인터뷰를 봤는데, 여전히 그 옛날 누구누구 흠씬 두들겨 팬 걸 자랑하는 걸 보고 이런 분들은 아마 죽을 때까지 변함없겠다 생각은 했어요.

 

p.s : 솔직히 현대사는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자신은 없습니다만.
또 이런 건 웬지 직접 발로 뛰며 취재를 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네요.
자료조사 대충해서 간단히 소개하는 정도로 그치겠습니다. 더 잘 아는 분들이 소개해주시리라 믿어요.
역시 현대사를 보니 엄청 우울해져요. 자료 찾는다고 신문 봤다가 엄청 우울해졌습니다. 부정선거 쓸까 했는데 나중으로 미룰래요. 일단 고대사로 도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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