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bara,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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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 니나 호스 주연.

통일 이전, 동독의 어느 해안가 동네가 배경입니다. 니나 호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바바라는 베를린의 큰 병원 의사였어요. 그런데 출국희망을 했다가 좌천되어 이곳 병원으로 옮기게 되고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됩니다.

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된 동독을 떠나기 위해 서독 출신 애인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준비하고 도모하는 것이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내용이고 그러는 중에 이곳 시골 병원의 의사와 환자들과의 일상 접촉이 일어나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어요. 

오랫동안 보고 싶어한 영화였는데 미루다가 이제 봤어요.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멜로 영화로서 새로 간 시골 병원에 의사로서 나무랄데 없는 소명의식과 품위를 지닌 동료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나 역시 의지가지 없는 소녀 환자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 극의 극적인 장치라고 용납하고 감상하게 될 때, 영화의 긴장이 스민 침착한 분위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좋은 영화로 느껴진 큰 이유는 일단 배우의 설득력 있는 외모와 성격 구현에 있습니다. 니나 호스가 과장하지 않는 비극의 주인공 같은 태도로, 영화 속 대사에는 새침하다, 무뚝뚝하다라고 표현되는(제가 보기엔 다수의 등장인물들이 우열을 가리기 어렵게 무뚝뚝했습니다만) 냉정함과 믿음직함을 소유한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감독의 힘이 크지만 그 주문을 뛰어넘는 분위기를 이 배우가 끌고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또한 배경이 꽤 영화 분위기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바라는 언제나 주변의 감시하는 눈길을 살펴야 하는 처지인데 배경인 시골 마을은 조용함 속에 바닷가 특유의 바람이 숲과 들판을 일렁이게 하면서 긴장감을 불어 넣어요. 위의 사진처럼 자전거를 끌고 바람부는 숲과 들을 지나는 장면이 잦은데 긴장과 아름다움이 함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시골 지역의 폐쇄성, 조용함이 깔린 가운데 그 속에서 허용된 것으로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한 자락을 슬쩍 보여주면서 바바라의 결정이 뜬금없는 것이 아님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저처럼 잘 구현된 희생의 스토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시다면 이 영화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같다는 말로 짧은 추천 마무리합니다. 시리즈온에서 봤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이 세상의 한구석에'(2016)라는 일본 에니메이션을 봤습니다. 

사전 정보는 전혀 없었고 그냥 우연히 클릭했는데 순한 맛이 괜찮아서 계속 보게 되었습니다. 히로시마 출신의 소녀가 결혼하여 43년부터 45년까지를 히로시마에 이웃한 쿠레에 살며 전쟁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멀리서 원폭 구름도 목격하고요. 전쟁통에 이래저래 참으로 고생 많이 하는 선량하고, 생활의 지혜는 넘치지만 단순하기 그지없는 인물들의 일상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영화 거의 막바지에 일왕의 방송을 듣고 울분을 토하는 주인공을 보며 놀랐습니다. 이전까지는 전쟁 피해자로만 그려진 일반 국민들의 일상과 순진함에 대해서, 실제로 그렇게 살았으니 그렇게 그렸으려니... 봐 줄만 했는데 이 부분에서 단순 감상자인 저는 저런 반응을 보이는 에니메이션이 별 문제 없이 국내 넷플에 올라와도 되나 싶었어요. 

영화를 다 보고 검색했더니 감독이 원작 만화를 조금 줄였고 반전 메시지가 너무 노골적이라 여겨지는 부분을 모호하게 처리하긴 했으나 반전의 의미가 맞다는 인터뷰가 있더군요. 감독의 보충설명이야 어쨋든 아무 정보없이 본 저는 그 장면에서 주인공이 '(지금까지 참아온 보람없이) 물 건너온(한국이나 중국 등을 뜻하는 듯) 콩이나 쌀로 내가 이루어져 있으니 그 결과로 이렇게 폭력에 져야하는가'라고 대사를 하는데 미국의 폭격만이 폭력으로 정리하고 억울해 하는 게 의아하였습니다. 누가 일으킨 전쟁인가는 쏙 빼놓고 우리가 쓰는 폭력으로 이겨야 되고 남이 쓰는 폭력에는 지는 것이 불가인가 싶더라고요. '이렇게 폭력에 져야하는가'라는 대사를 두고 아군적군 다 포함한 '전쟁의 폭력'이란 말로 이해한다면 항복방송에 그렇게 절망적으로 울부짖는 것이 이해가 안 되더군요. 주인공이 대놓고 우는 건 이 장면이 처음이었거든요. 우익의 눈치도 보고 두루 해석의 여지를 두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가졌습니다. 

저 장면을 보는 순간 의아함과 불쾌함이 있었어요. 원작과 에니메이션에 다 지식이 전무한 순진한 감상자인 제 느낌이 잘못된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도 있고. 게시판에 혹시 보신 분이 있으실까요. 제가 잘못 본 것인지. 

부천영화제 비롯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해서, 그래 뭐 너네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이런 너그러움인가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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