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다보니 제가 듀게에 공포영화를 추천하는 날도 오는군요. ^^ 


사실 공포영화라기보다는 섬뜩하고 슬프고 강렬한 로맨스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로맨스 영화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건 주인공이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추한 존재라는 점이죠. 


추한 존재를 볼 때 느끼는 공포와 연민이 이 영화들을 끝까지 긴장감 있게 보게 만드는 동력이 되더군요. 



1. Freaks (1932) 


제목이 보여주듯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여주인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형적으로 생겼어요. 


어린아이의 몸에서 성장을 멈췄거나 다리가 없거나 뭐 그렇게... 별로 무섭진 않지만 보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지는 모습들이죠. 


그런데 그 인물들이 무섭고 고통스럽게 그려지는 게 아니라 조금 웃기기도 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나와요.  


난장이 주인공은 아름다운 여주인공을 사랑하지만 (역시나)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하죠.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중요한 건 분위기인데 이 영화는 상당히 강렬하면서도 복잡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켜요. 


무섭기도 하고 혐오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나고... 


(쓰고 보니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다 일어나네요. ^^) 


보는 내내, 그리고 결말까지 섬뜩하면서도 뭔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이상하게 비극적인 느낌을 주는 영화예요. 


온통 추하고 기형적인 인물들로 가득한 영화,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의 긴장감과 카타르시스가 대단한, 


참 인상 깊은 영화였어요.  



2. The Unknown (1927) 


Freaks를 보며 느꼈던 감정들에서 혐오감과 화를 조금 빼고 슬픔과 고통과 안타까움을 조금 더하면 


The Unknown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이 되죠. ^^ 


원래 상영시간은 63분인데 일부가 분실됐는지 50분짜리 영상으로 봤지만 이 영화가 주는 비극적인 느낌은 무척이나 강렬해서


영화를 본 후 무성영화 중에서 공포영화에 어떤 게 있나 싹 다 찾아봤을 정도였어요. 


특히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론 채니를 보며 진짜 비극은 이런 캐릭터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하고 사악한 존재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일까지 저지르고 


관객들은 두려움과 연민 속에서 그가 감당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지켜보죠.    


어쩌면 공포라는 감정은 숭고함이라는 경험을 갖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지도 모르겠어요. 


공포영화가 보여주는 잔인한 아름다움은 선한 인물들의 달콤한 사랑 얘기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강도로 마음에 새겨지는 것 같고요. 저는 세 편의 영화 중에서 이 영화가 제일 좋아요. ㅠㅠ 


 

3. The Penalty (1920)


위의 두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주인공은 상당히 추하고 사악해요. 


단지 그가 육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장애를 갖게 된 억울한 상황이 그를 추하고 악한 사람으로 만들었죠. 


그는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아 복수하려고 하고요. 


이 영화에서는 사랑이 아니라 복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시작부터 충격적이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긴장감이 쌓여가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계속 궁금하게 만들죠. 


남자주인공 역의 론 채니가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끝까지 분위기를 휘어잡기 때문에 


결말이 무척 마음이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사악한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고요.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으면서 영화들에 대해 설명하려니 힘드네요. ^^ 


(최대한 스토리를 모르고 봐야 재밌거든요. 특히 The Unknown은 그냥 아무 것도 모른 채 봐야 돼요.) 


세 영화 모두 별로 무섭지는 않은데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들이에요. 


2와 3은 무성영화지만 <노스페라투>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같은 무성 공포영화를 보면서 깜박 잠들었던 


분들도 이 영화들을 보면서 주무시진 못할 거라고 감히 장담해 봅니다. 


별로 무섭진 않은데 이상하게 영화들에 긴장감이 넘치거든요. 


혹시 이 영화들과 비슷하게 강렬한 영화를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요. 좋은 영화는 같이 봐야죠. ^^


다 쓰고 나니 옛날 영화들에 관심 있는 분들도 별로 안 계실 것 같고 어쩐지 허무해져서 노래 한 곡~


Blossom Dearie - I'm Old Fashio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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