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버릇)

2016.12.06 21:27

여은성 조회 수:770


 #.휴...하루의 1페이즈가 끝나가네요. 엿같은 자투리 시간이예요. 뉴스룸이 끝날 때까지 결정을 해야 해요. 오늘을 끝낼지 2페이즈로 넘어갈지요.


 

 1.스스로를 알아가는 건 재미있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내가 어떤 행동을 왜 했는지 알아낼 때마다 김이 새버리곤 해요. 알고 나면 그게 다 하찮은 반작용이거나 저급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거든요. 자신이 뻔하고 얄팍한 인간이라는 걸 연달아 깨달으면 누가 기분좋겠어요?



 2.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보니 아는 것이 많은 것과 똑똑한 건 별개인 것 같아요. 사실 지식이 많고, 심지어 그 지식을 목걸이처럼 잘 꿰어서 사람들 앞에 흔들어 댈 수 있는 녀석들도 그걸로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걸 잘 하는 건 아니니까요. 무언가를 꿰뚫어보거나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것...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두가지 능력이죠. 나도 둘 중 하나라도 잘하고 싶어요.



 3.내겐 어떤 버릇이 두 개 있었는데 이젠 없어요. 음...술집에 주구장창 가던 시절에도, 나는 몇년간 술을 잘 몰랐어요. 리처드기어가 귀여운 여인에서 그러잖아요. '그런 건 몰라. 나의 첫 차는 리무진이었어.'라고요. 그가 잘난 척하려고 하는 대사가 아니라, 그만큼 차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뜻으로 하는 대사였죠. 나는 처음 술을 마시기로 작정하고 술집에 간 날 하이엔드급 술을 먹을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고 묻는다면 얕보이기 싫었거든요. 듀게에 썼듯이 그 날은 사장과 모든 직원이 추리닝을 입고 온 나 한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요. '저 녀석이 이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까?'라는 느낌으로요. 


 그리고 문제는 거기엔 와인도 안 팔았어요. 내가 그나마 아는 술은 와인이었거든요. 그래서 '여기선 어떤 술을 시켜야 얕보이지 않는 건지 검색하고 올 걸...'하다가 어쩔 수 없이 초 비싼 걸 시켰던 거예요.


 그래서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 처럼 20대 초의 어느날 이른바 '양주'라고 통칭되는 싸구려 위스키라는 걸 처음 먹어보고...어느날 조금 좋은 위스키를 먹어보고 또 어느날 아주 좋다는 위스키를 먹어보고 또 어느날 최고의 위스키라는 걸 먹어보는...그런 식으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무지에서 오는 불안함이라고 해야 할 지 처음 몇 년 간은 처음 마셨던 것과 비슷한 정도...아니면 그보다 좋은 걸 시키곤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술이 아니라 직원이 기뻐하는 술 말이죠. 


 아,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요. 여기서 말하려는 버릇은 꽤나 허름한 옷을 입고 술집에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귀찮아서 아무거나 입는 거 말고 매우 허름해 보이도록 공들여서 허름하게 입는 거요. 비싼 곳에 갈수록 말이죠. 내가 왜 그랬는진 정확히 모르겠어요. 처음 술집에 간 그 날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다고 추측해 보는 정도예요. 



 4.휴



 5.위에 두 개라고 썼는데 그 중 하나는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거였어요. 그건 저번에 썼었죠. 서울에 있는 어디선가 가위를 빌려서 머리를 깎고 오자 누군가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는 일화요. 그야 그 사람에게 그 말을 들을때까지 똑같은 말을 백번쯤은 듣긴 했지만 중요한 건 메신저니까요. 그 사람이 그러지 말라고 했을 때에야 그 버릇은 끝났어요.



 6.이 버릇을 (잠정적으로)끝낸 건 Q예요. 사실 할로윈데이가 마침 월요일이니 그렇게 입고 Q의 가게에 가볼까 하고 있었는데 할로윈데이에는 모임을 하기로 작정해 버려서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나는 365일이 할로윈이잖아요. 이런 건 자랑인 게 아니라 나는 뼈빠지게 일해봤자 식대, 차비, 법인카드도 받을 수 없고 연하장도 안 오는 일을 하니까요. 장점이라곤 복장 지적을 안 받는 거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살려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어느날 그렇게 입고 가 봤어요.


 물론 룸에는 안 가고 테이블에 앉았어요. 룸에 들어가면 나의 허름한 모습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잖아요. 그러고 있는데 Q가 안쪽에서 나와서 카운터로 가다가...방향을 틀어서 내 쪽으로 왔어요. Q는 앞에 앉아있는(테이블은 보조착석이니) 사람에게 '가서 X번 룸 셋팅 좀 해 줄래.'라고 말하고 내게 말했어요. 5분 있다가 X번 룸으로 가라고요. 그럴 돈을 안가져왔는데 룸차지는 받는 거냐고 물어보니 뭐랄까...수퍼내추럴의 샘이 루비를 바라볼 때의 그 표정으로 나를 잠깐 바라보다가 '안받을께.'라고 말했어요. 그 표정을 보니 룸차지를 받아도 가야 할 것 같긴 했어요.



 7.자리를 옮기고 Q가 '너 다른 데서도 이러고 다녔냐.'라고 물어봤고 나는 의외성을 위해 가끔씩 그런다고 했어요. Q는 나에게 이런 건 이제 졸업하라고 했고, 그날 가게를 마무리하면서 '은성이는 엉까는 버릇 좀 고쳐야 돼.'라고 했어요. 대충 알 것도 같으면서 잘 모르겠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돌아와서 네이버사전에 검색해 봤는데 '엄살부리다, 엉기다, 느물느물하다 의 뜻.'이라고 써 있어서 더욱 알 수 없게 됐어요. 어쨌든 그 후로는 그러지 않고 있어요. 솔직이 너무 재사회화를 잘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예요. 누군가 말했듯이, 어떤 것에 너무 잘 적응해버리면 다음 변화에 대비할 수 없다는 말을 믿는 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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