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의 형태로 작성해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10년 만에 칼 드레이어의 유작이자 걸작 <게르트루드>(1964)를 보고 또다시 이 영화에 완전히 사로잡혀버렸다.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하는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태에 이르러 이 추천 글을 쓰게 됐다.(이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4월 13일 토요일 오후 4시 30분에 마지막으로 상영된다.) 내가 장 뤽 고다르만큼 <게르트루드>를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게르트루드>를 일컬어 “광기와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 베토벤의 최후의 작품들에 비견할 만하다.“고 말한 고다르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며 이 영화에 대한 적절한 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감히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이해 여부를 떠나서 나를 매혹시키는 영화들이 있는데 <게르트루드>는 그런 부류에 속하는 영화 중의 하나다. 물론 전혀 이해를 못한 영화를 좋아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표현한 것은 내가 이 영화를 조금은 이해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나는 왜 <게르트루드>에 이토록 매혹된 것일까. 이 매혹의 실체를 밝히는 게 나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2003년 나는 국내에서 처음 열렸던 칼 드레이어 회고전에서 <게르트루드>를 처음 보았고 잘은 모르지만 뭔가 굉장한 것을 봤다고 느꼈으며 ‘감정의 우주를 보여주는 세기의 걸작’이라는 단평을 적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본 이후로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한 편으로 늘 나와 함께 했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의 선율부터 잊혀지지 않았다. 우아하지만 뭔가 광기를 머금은 그 멜로디부터 나를 사로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남편 카닝이 게르트루드를 부르고 게르트루드가 화면에 나타나서 ‘오페라’, ‘피델리오’라는 말을 할 때의 그 목소리는 듣는 즉시 내 마음 속에 각인되었다. 그 덴마크어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들렸는지 모른다. 덴마크어의 매력에 빠져들어서 그 말을 배우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게트르루드 역의 니나 펜스 로데! <게르트루드>는 그녀를 스크린으로 본 유일한 영화였지만 이 영화에서의 그녀의 연기는 영화사상 최고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말을 하지만 내면으로는 격정이 불타고 있는 미묘한 층위를 만든 그녀의 놀라운 연기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토록 이 영화에 매혹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본 이래로 니나 펜스 로데는 늘 내 마음 속에 있었으며 그녀와의 재회를 꿈꿨다. 물론 그녀말고도 위대한 여배우들은 많이 있지만 그녀 특유의 독보적인 매력은 온전히 그녀만의 것이다. <게르트루드>에는 꿈과 관련된 인상적인 대사가 나오고 이 영화 전체가 결국 게르트루드의 기억에 관한 것이며 어쩌면 죽은 자의 시선에서 과거를 회상하듯이 진행되고 있다는 면모마저 있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이 영화의 많은 것들이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속성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이번 관람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마치 현실 세계를 이탈해서 붕 떠있는 상태로 아름답고 황홀하지만 이내 사라져버려 슬플 것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게르트루드>는 하나의 꿈이자 기억인 것이다.

그리고 흑백 촬영의 아름다움은 또 어떠한가. <잔 다르크의 열정>(1928)을 포함해서 드레이어의 많은 영화들이 순화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게르트루드>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많은 이들이 꿈꿀 수는 있지만 결코 도달하기는 힘든 순수한 ‘결정체’ 같은 영화다. 불필요한 것은 다 버리고 오로지 엑기스만 남겨서 도달한 영화 예술의 어떤 경지를 보는 것 자체로 정신이 고양되는 느낌마저 들어 감동적이고 경이적이다. 순수한 이미지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이 영화의 촬영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꼭 한번 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의 신기한 점 중의 하나는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이 두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서로 시선을 거의 마주치지도 않고 마치 독백이나 넋두리를 하듯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으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고 그속에서 온갖 감정들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게르트루드>를 제외하고는 이런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말들로만 빼곡히 채워진 영화가 심리 묘사를 하려고 애쓰거나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많은 감정들을 표현하려는 시퀀스들로 가득 찬 영화들보다 더 복합적이면서도 미묘한 감정들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 <게르트루드>의 가장 큰 미스터리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감정의 우주’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단순히 두 사람을 앉혀놓고 대화를 오랫동안 하게 했다면 지루하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연극성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이것은 우아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뛰어난 화면 구성, 배우들의 시선과 몸짓 등 영화 속 모든 것을 통제한 드레이어의 미학적 고려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게르트루드>를 보면서 놀랐던 점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나로 하여금 더 이상 표면적인 리얼리즘을 보다 신봉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할마 쇠더베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태생적으로 연극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나 이렇게 인위적인 세계에서 구축된 영화가 다큐멘터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보다 현실적인 세팅에서 만들어진 영화보다 더 진실된 인간의 감정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정말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감독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현실의 사물이 아니라, 그 내면 혹은 그 배후에 있는 영혼입니다. 리얼리즘 그 자체는 예술이 아닙니다."라고 말을 한 드레이어는 옳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열정과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해야할 것 같다. <게르트루드>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은퇴한 오페라 가수인 게르트루드의 주변에는 변호사에서 장관으로의 상승을 꿈꾸는 남편인 카닝, 현재 그녀가 사랑하는 젊고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인 에를란드 얀손 그리고 과거의 연인이었던 유명한 시인인 가브리엘 리드만이 있다. 온전히 그녀만을 바라보고 사랑해주기를 원하는 게르트루드는 세 사람과의 사랑에 모두 실패하고 결국 고독의 길을 택한다. 이 영화는 게르트루드의 고독한 내면의 투쟁의 장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시종일관 표면적으로는 매우 고요하고 우아한 무드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그 어떤 액션 영화보다도 격렬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세계들간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고다르는 이 영화의 이런 면모에서 ‘광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게르트루드>가 전달하는 감정의 깊이는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를 볼 때 느낄 수 있는 파토스와도 맞먹는다는 생각이 들고 이번 관람때는 존 포드의 유작인 <일곱 여인들>(1965)에서의 닥터 카트라이트의 내면의 투쟁과도 닮아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존 카사베츠의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에서의 메이블까지 함께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르트루드>에서 신에 대한 대사가 나오는데 오직 신만이 게르트루드가 추구하는 사랑에 화답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게르트루드가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인간이 고독한 게 아닐까 싶다. 드레이어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게르트루드의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결코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마치 관객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게르트루드의 마지막 모습에서 이 영화를 만든 칼 드레이어가 겹쳐 보인다. 영화가 ‘나의 유일한 열정’이라고 말했던 드레이어는 그가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비타협적으로 그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했으며 혁신을 거듭하는 가운데 마침내 <게르트루드>에 이르러 그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고결한 영화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내면의 투쟁을 통해 고독하지만 고결한 상태에 도달한 게르트루드와 드레이어는 서로 닮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도 약간은 이것과 관련이 있는 듯싶다. 흔히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정작 영화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지금까지의 내 삶을 보건대 영화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 그러니까 나는 보답받지 못할 사랑을 어리석게 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몇 명 읽지도 않을 게 분명한 이 추천 글도 짧게 쓰려고 했는데 또다시 장문의 글을 쓰고 말았다. 내적으로 주체할 수 없이 불타오르는 <게르트루드>에 대한 열정을 나로서는 도무지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추천 글을 늘 결론적으로 무한 반복되고 마는 어리석은 열정의 기록이라고 칭하면서 마치도록 하겠다. 끝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동하는 분이 계신다면 <게르트루드>를 꼭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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