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표준음)

2019.05.31 04:22

안유미 조회 수:501


 1.가끔은 그래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걸 남이 하는 걸 보고,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죠. 여러분도 종종 그런일이 있을거예요.


 예를 들면 임산부석이요. 나는 임산부석에 별생각없이 앉곤 했는데...어느날 만원인 지하철에서 한 남자가 임산부석에 부리나케 앉는 걸 보자 참 안좋아 보였어요. 임산부석 정도는 냅두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그 후로는 임산부석에 더더욱 잘 앉지 않아요.



 2.술집도 그래요. 내가 하는 걸 남이 하려고 하면 좀 달리 보여요. 오래 전 같이 다니던 띠동갑 녀석이 있었는데, 그는 술을 마시고 돌아올 때면 '형, 다음엔 내가 살께.'라는 말을 하곤 했어요. 빈말 같아서 별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은 그가 저녁을 먹으며 오늘은 자기가 술을 사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동안 하던 빈말이 아니라 정말이었던 거죠.


 그런데 막상 그가 술을 사겠다고 하니 돈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가 열심히 번 돈을 그렇게 몇시간만에 꼴아박는다고 생각하니 말이죠. 그래서 가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다른 데를 갔어요.



 3.그리고 그 일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요전에 차이나가 말했어요. 차이나와 한번 술집에 갔었는데 맥켈란18이 없었거든요. 이건 나중에 써볼 여담이지만 최근엔 맥켈란18이 좀 구하기 어렵긴 했어요. 어쨌든 그래서 그날은 다른 걸 마셨더랬죠.


 얼마 후 차이나를 만나 거리를 걷는데 그가 말했어요. '저번에 그 맥켈란인지 뭔지 말인데, 나도 마셔보고 싶어. 다음에 가게 되면 그땐 내가 살께.'라고요. 말은 고마웠지만 역시...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어요.


 '아냐...그런 데 가서 그렇게 헛돈 뿌리는 거 아니야. 돈이 너무 아까워. 어쩌다 같이 갈일이 있으면 내가 살께.'


 라고요. 



 4.휴.



 5.말을 내뱉어 놓고 보니 내가 너무 뻔한 소리를 해서 신기했어요. 그래서 멋적어서 덧붙였어요. '와하하, 이런 평범한 꼰대 소리를 내가 하다니.'라고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그게 보통인 거죠. 보통으로...정상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데 가서 돈을 쓰는 건 아까워요. 차이나는 돈을 잘버는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쏜다고 해서 별 손해가 날 건 없지만 그래도, 보통의 기준을 적용하면 정말 아까운거죠. 그걸로 할 수 있을 다른일들을 생각해 보면요.



 6.그래요...다녀 보니까...역시 올바르게 사는 사람을 만나면 뻔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왜냐면 걱정의 기준도, 조언이나 충고의 기준도 상대에게 맞춰지게 되니까요. 


 그게 재미없게 들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정상적인 기준에서 남들과 말을 섞게 되면 나 또한 뻔하고 재미없는 소리밖에 할 수 없게 돼요. 



 7.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헛소리도, 그걸 보는 사람이랑 실제로 만나게 되면 할 수가 없게 되죠. 듀게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이나 차이나나...한번씩 물어 오거든요. '가끔 듀게에 쓰는 자살하겠다느니 하는 소리는 무슨 뜻이야?'라고요. 그러면 이렇게 둘러대긴 해요.


 '아, 그건 그냥 관심 끌고 싶어서 하는 소리야. 트위터에서 노는 애들도 툭하면 그러잖아? 자살하고 싶다느니 막 그러면서 관심 달라고 하잖아. 그런 헛소리 신경쓸 거 없어.'


 정도로요. 하지만 역시...만나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역시 그 후론 듀게에 자살할 거라느니 어쩌겠다느니 하는 소리는 쓸 수가 없게 되죠. 이걸 쓰면 누군가 보고 신경쓰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8.여러분은 악기를 다뤄 본 적 있을지 모르겠는데...음악 수업을 시작하거나 오케스트라가 시작되기 전에 모두가 악기의 음을 맞추는 시간이 있죠.(내게는 그 과정도 음악 비슷하게 들리지만) 어쨌든 다같이 모여 조율을 하다보면 결국은 모두의 악기의 현과 음이 똑같이 정렬돼요. 빨리 맞춰내는 사람도 있고 늦게 맞춰내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은 같아지는 거죠. 모두가 같아지고서야 연주를 시작할 수 있고요.


 타인을 만나는 것도 그것과 비슷한 일이예요. 계속 일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원래 정해져있는 '표준음'이 뭔지 상기하게 되곤 하죠. 


 그야 그 표준음에 맞춰 악기를 조율할지 말지는 내 자유긴 해요. 하지만 한가지는 알아둬야 하죠. 너무 사람들을 안 만나고 살면 표준음이 뭔지조차 잊어버리고 살게 된단 걸 말이예요. 표준음이 뭔지 알면서 일부러 청개구리 짓을 하는 것까지는 정상인으로 사람들이 봐 줘요.


 그러나...어떤 음이 표준음이었는지조차도 잊어버리고, 자신이 내는 음이 표준음이라고 믿으며 사는 사람은 괴물이 되어버리는 거죠. 원래는 정상적인 생김새였지만 혼자서 살아가다가 골룸이 되어버린 스미골처럼요.


 혹시나 해서 쓰지만 위에 한 말은 비유예요. 음정에 관해선, 나는 절대음감이 있으니까 무인도에서 500년 있다가 나와도 음은 안 틀리죠. 나의 안에 우주의 법칙이 정해준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늘 울려퍼진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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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 때문에 일부러 이번 주 금요일은 방을 잡아놓지 않았었어요. 이제 와서 보니 잡아 놓지 않은 게 후회되네요. 시간이 비었거든요.  


 내일 낮은 고속터미널-삼성역을 갈거예요. 쇼핑하고 밥먹고 5시 전에 기생충을 보려고요. 기생충을 보기에 삼성역 mx관이 좋다고 들어서요. 시간은 별로 안남았지만 같이 볼 분 있나요? https://open.kakao.com/o/gJzfvB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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