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에 대놓고 적어 놨듯이 스포일러는 없지요.



- '겟아웃' 보다도 훨씬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겟아웃'이 미국이란 나라에서 흑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에 대한 현실을 호러 버전으로 '펼쳐 보여준' 작품이었다면 '어스'는 거의 작정하고 벌이는 선동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느낌입니다. 이야기의 재료들도 워낙 구체적이어서 (문제의 그 '캠페인'이라든가) 더더욱 그런 느낌이구요.

 다행히도 조단 필은 현재 아주 재능이 폭발하는 상태여서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봐도 재밌고 무서운 영화로 완성되어 있긴 합니다만. 정말로 작정하고 그런 걸 신경 안 써 버리면 좀 쌩뚱맞아지거나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장면들이 몇 있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의 스펙터클(?) 같은 경우엔 정치적 메시지를 제거하고 본다면 그냥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죠. 극중 인물 대사 그대로 '해괴한 퍼포먼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니까요.



-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 영화가 흑인 배우들을 활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둠 속에 숨어 살던 '그림자'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건지, 아님 그냥 흑인의 모습을 최대한 흑인답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뭐 감독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영화의 흑인 배우들은 정말로 검습니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좀 바보 같은 문장인데 어쨌거나 사실이 그렇습니다. 지금껏 본 영화들 중에 흑인들이 이렇게 검게 나오는 영화를 본 기억이 없네요. 흑인은 검다, 라는 당연한 사실을 영화의 비주얼과 비장센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써먹고 호러 효과를 강화하는 데까지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그래서 보는 내내 '본격 흑인 호러 영화'라는 어처구니 없는 표현이 떠올라요. 정말 조단 필은 본인의 정체성에 충실한 사람인가 봅니다. 


 근데 그러고보니 그동안 헐리웃 호러 영화에서 흑인 배우들이 이렇게 전면에 배치돼서 이것저것 다 해 먹는 작품을 본 기억이 거의 없네요. 그동안 미국 호러는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영화에도 백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긴 하는데 뭐 비중들이 그리 크지 않아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그냥 흑인들 얘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 주인공 & 도플갱어 역을 맡은 루피나 뇽오. 전 노예 12년도 안 보고 블랙팬서도 안 봐서 이 분을 이 영화로 사실상(...이유는 잠시 후에) 처음 봤습니다만. 일단은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구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 예쁘게 잡히는 몇몇 장면에선 이목구비가 그냥 그림, CG 캐릭터 같더군요) 그리고 도플갱어 연기에서 다시 놀랐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괴상한 연기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 하나요. ㅋㅋㅋ 

 그리고 사실 한 번 더 놀랐는데. 이 분의 출연작 중에 '깨어난 포스'가 있는데 도무지 본 기억이 없어서요. 단역이었나? 하고 역할을 검색해 보고는... 허허허허허허허허. '그것'의 광대 역할 같은 경우도 쨉도 안 될 배우 외모 낭비였네요. ㅋㅋㅋㅋㅋ

 암튼 대단히 인상 깊은 연기였습니다. 영화제 같은 데서 주연상 받아도 될 호연이었지만 장르상 아마 그럴 일은 없겠죠.



- 사람들 반응이 대체로 호평인 가운데 이야기의 개연성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많이 보이던데...

 뭐 그건 사실 맞습니다. ㅇㄱㄹㅇ ㅂㅂㅂㄱ라고나 할까요. '겟아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건 그래도 핵심 아이디어의 무리수 딱 한 가지만 눈 감고 넘어가주면 그 외엔 대부분 깔끔하게 풀리는 이야기였거든요. 반면에 이 영화는 핵심 아이디어의 무리수 하나를 눈 감고 넘기고 나면 두 번째가 등장하고, 두 번째를 넘기면 세 번째... 이런 식으로 개연성 면에서 걸리적 거리는 느낌이 계속 이어져요. 전 뭐 진작에 포기하고 그냥 '이건 우화다!'라고 받아들여 버렸습니다만. 그런 껄쩍지근함 때문에 영화 평이 깎여도 어쩔 수 없겠죠.



- 뭐 이제 대충 마무리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겟아웃'이 아주 화끈하고 미끈한 한 덩어리의 이야기였다면 '어스'는 복잡한 부품들로 잘 짜맞춰진 이야기라는 느낌입니다. 

 이야기의 깔끔함이나 에너지 같은 측면에선 겟아웃이 낫다는 느낌이지만 어스는 어스대로 또 그 부품들의 정교함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겟아웃' 쪽이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고 좀 더 마음에 들지만, '어스'의 클라이막스 대결씬의 연출과 이후의 이야기 전개가 어우러지며 주제를 부각시키는 모양새를 보면 완성도 면에서 '어스'가 '겟아웃'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더 정교하게 발전한 듯한 느낌까지 들었네요.


 결론은, 둘 다 보세요. ㅋㅋㅋ 재밌게 잘 만든, 그리고 생각할 꺼리까지 던져주는 좋은 영화들입니다.




 ....에다가 사족을 하나만 덧붙이자면.


 세상 일 중에 '인류의 보편성'을 발견해서 끄집어내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남의 나라 사정에 기반을 두고 전개되는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그리고 그래서 중요한 디테일들을 잘 알아채지 못 하고 보다 보면 좀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스'를 보고 가장 제대로 즐길 수 있을 사람은 1. 미국 흑인 2. 그냥 미국인 3. 자본주의 다인종 사회 시민들 4. 그냥 자본주의 사회 시민들... 뭐 이런 순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보다시피 저 같은 토종 한국인 관객 같은 경우엔 이미 순위가 한참을 뒤로 밀리지 않습니까. ㅋㅋ 뭐 그냥 웃자고 만든 영화들이야 순위가 이렇게 밀려도 괜찮은데. 이렇게 진지하게 각 잡고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타지인의 입장에서 관람하는 건 뭔가 좀 애매한 기분이에요.

 어쨌거나 영화가 재밌으니 괜찮습니다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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