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과 인정욕구...

2022.12.08 06:16

여은성 조회 수:521


 1.돈이라는 것은 정말 좋아요. 돈의 쓰임새 그 자체가 좋다는 게 아니라, 성취감을 얻기 위한 심볼로서 말이죠.



 2.왜냐면 연애라는 것은 이성을 많이 만나 보면 심드렁해지고 게임도 워낙 많이 해보면 새로운 게임을 잡아도 대충 얼개가 보여요. 이겨도 져도 별 감흥이 없어지죠. 여행도 많이 해 보면 빠꿈이가 되어서 어딜 가도 신선한 감정은 무뎌지죠.



 3.하지만 돈은 다르거든요. 5백만원을 큰 돈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투자를 통해서 5백만원의 수익을 내면 정말 기분이 좋단 말이죠. 이유가 뭘까? 글쎄요. 내 생각에 '돈'이란 건 엄밀히 말해 내가 욕망하지 않는 것이라서 그래요. 


 돈이라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거든요.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승부-또는 베팅-를 통해 얻는 것은, 그 경험이 아무리 반복적이고 익숙해져도 늘 설레는 법이더라고요.


 

 4.휴.



 5.어쨌든 그래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추구하거나 얻는 것으로는 설레임의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들이' 추구하는 것을 얻는 것은 아무리 해도 안 질리거든요.


 이래서 사람이란 생물은 혼자서는 살 수 없나봐요. 적어도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내가 얻을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는 용도로 써먹기 위해서라도 주위에 사람은 필요하죠.


 위에 썼듯이 '나'는 돈을 욕망하지 않거든요. 내가 무인도에서 혼자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돈이 아니라 야자수를 따러 다니고 있겠죠. 돈이라는 건 '나'도 아니고 '남들'만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욕망하기 때문에 목적으로 삼기에 늘 좋아요.



 6.아마 선사시대에 내가 태어났다면 혼자서 초원에 나가 맹수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남들이 그토록 잡고 싶어하는 맹수를 내가 잡음으로서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까...싶네요.


 그야 맹수를 잡는 건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르겠죠. 맹수를 잡은 다음에 그 맹수를 들고 마을에 돌아와서 자랑한 뒤에, 사람들이랑 나눠 먹는 것까지 다 해야만 인정욕구가 충족되었을 거예요.



 7.하지만 돈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냥 돈을 따는 그 순간에 이미 인정욕구가 80%쯤 충족이 되거든요. 그걸로 좀 모자란다 싶으면 번 돈의 일부를 들고 나가서 좀 쓰면서 남은 과시욕을 충족시키면 되고요. 


 음...하지만 역시 돈은 많이 쓰면 안 돼요. 왜냐면 옛날에는 '사냥감'과 '사냥감을 잡는 무기'가 별개였지만 요즘 세상은 아니잖아요?


 

 8.요즘 세상은 내가 잡아야 할 '사냥감'도 돈이고 그 사냥감을 잡기 위한 '무기'또한 돈이예요. 참 이상한 구조죠? 사냥감과, 사냥감을 잡기 위한 무기가 똑같다니 말이예요. 그리고 인정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 또한 돈이고요. 


 다만 인정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돈을 쓰는 건 돈이 아까워요. '인정욕구'와 '돈'을 저울질해 보다보면 돈이 더 아까워지는 시기가 찾아오니까요.


 왜냐하면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큰손으로 인정받기 위해 써야 할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거든요. 20대 때는 하룻밤에 100~200만원만 쓰면 많이 쓴 거지만 30대 때는 그보다 2~3배는 많이 써야 돈좀 썼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40대가 되면 거기서 다시 2~3배는 더 써야 큰손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요. 20대에서 40대가 되는 동안의 물가 상승까지 고려한다면 나이 앞자리 바뀔때마다 대충 2~3배씩 올라간다고 보면 되겠죠.



 -----------------------------------------------



 그러니까 '사람은 일이 있어야 한다'라는 속담은 정말 맞는 말이예요. 젊었을 때는 적은 출혈로도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저 속담의 진짜 뜻을 모르고 살거든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진짜 엄청난 부자가 아니고서는...아니, 설령 엄청난 부자라고 해도 사람은 노동을 통해 인정욕구를 채워야 수지가 맞는 거예요. 왜냐면 나이가 들면 필요한 출혈의 양이 너무 커져버리거든요. 인정욕구를 틀어막아 보자고 돈으로 그 구멍을 메꾸기에는 액수가 너무 커져버려서 돈이 너무 아까운 시기가 와버리는 거예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렇게 돼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3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9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431
122010 마르셀 프루스트 되찾은 시간 읽어보기 [2] catgotmy 2023.01.02 225
122009 비 오는 오후의 음모 daviddain 2023.01.01 266
122008 환혼 오늘자.. 라인하르트012 2023.01.01 270
122007 새해입니다. 신년 계획은 세우셨나요. [3] 해삼너구리 2023.01.01 334
122006 덕담이 잘 나오지 않는 새해 첫날이지만 [3] soboo 2023.01.01 393
122005 프레임드 #296 [4] Lunagazer 2023.01.01 111
122004 새해복많이받으세요^^ [10] 라인하르트012 2023.01.01 246
122003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 영화처럼 2023.01.01 193
122002 [핵바낭] 1년 잉여질 결산 + 올해 마지막 날 잡담 [23] 로이배티 2022.12.31 671
122001 영알못이라 지루하기만 했던 아바타 [14] daviddain 2022.12.31 748
122000 프레임드 #295 [2] Lunagazer 2022.12.31 110
121999 ㅋㅋㅋ ㅎㅎ - 초성체를 생각한다 [3] 예상수 2022.12.31 318
121998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ND 2022.12.31 256
121997 [근조] 사진작가 김중만씨 [1] 영화처럼 2022.12.31 391
121996 '피그' 보고 잡담입니다. [8] thoma 2022.12.31 362
121995 Paramore - Ain't it fun catgotmy 2022.12.31 107
121994 송구영신무지개쇼 왜냐하면 2022.12.31 158
121993 (스포) [가가린] 보고 왔습니다 Sonny 2022.12.31 308
121992 호날두 사우디 이적 공식화 [1] daviddain 2022.12.31 169
121991 새해 직전 본 여러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1] 조성용 2022.12.31 46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