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힘내요, 왕따

2011.12.31 18:50

LH 조회 수:2158


예전에 쓴 이야기였는데 가까운 후배가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라고, 해서 다시 써 봅니다.


오늘은 왕따의 이야기를 해보죠.
예전이라고 해서 왜 따돌리고 같이 안 놀~아 하는 애들이 없었겠어요. 낯선 곳에서 새로 이사온 아이에게 텃세도 부리고, 그냥 괴롭히는 게 재미있어서 괴롭히기도 하고. 어느 때는 천진난만하고, 그래서 더 잔인한 게 바로 왕따죠. 옛날에도 왕따가 있긴 했어요. 그 중 아이콘이라고 할 만큼 유명한 사람을 이야기해볼께요.

 

그 사람은 말이죠, 왕따가 되기 좋은 천혜의 조건을 여섯 가지나 타고 났어요.

 

첫 번째, 강릉에서 태어났어요. 지금 거기 사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서울에 비하면 나름 지방이자 시골이지요. 서울에 처음 전학왔을 때 - 어눌한 강원도 사투리에 좀 태도도 머쓱하고 그런 아이였을 거여요. 얼마나 이상했겠어요. 악의는 없더라도 그 애 이상한 말 쓰네? 하고 놀릴 수도 있을거여요.

둘째, 고아여요. 엄마는 16살에 하늘나라에 갔어요. 위로는 형이 둘 있고 아래는 동생 하나, 누이들도 셋이나 있었지만 엄마 없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새엄마한테 구박도 많이 받았대요. 게다가 아빠마저도 26살때 세상을 떠났답니다.

셋째, 가난해요. 부자라면 그래도 떨어지는 콩고물 노려서 친구들이 들러붙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런 거 없이 가난했어요. 아빠가 어떻게든 출세해보려고 했지만 끝내 못했다니까요. 게다가 가족이 많으니까... 뭐, 먹을 게 없어 굶주릴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아빠 뭐한다! 하고 자랑할 위치는 아니었고, 그래서 얕잡아보이기 딱 좋았어요.

넷째... 성격, 말인데요. 음, 이게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말하기 애매하긴 한데 진짜진짜진짜 진지했어요. 농담 안 하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지 직성이 풀리고, 문제 있으면 꼭꼭꼭 찔러줘야지만 되는 성미이고, 맘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짐 싸들고 시골 고고씽해버려요. 솔직하면 솔직한 거지만 그 솔직한 게 너무 날카로웠죠. "친구야, 네 결점은 말이지..." 하면서 A부터 Z까지 말하는 성미였으니까요.
해서 같이 일하던 다른 사람은 "쟤 왜 저래?" 하며 버럭! 화를 낸 적도 있었대요. 오죽했겠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친구 없어요. 진짜 없어요. 뭐 그런 성미 다 알고 다 받아준 성혼이라던가 정철 등등 몇몇 보살들이 있긴 했지만요.

다섯 째. 이것도 나름 중요한 건데 공부를 잘 했어요. 그냥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잘 했습니다. 13살에 초시에서 장원을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공부를 잘 하는 게 왜 왕따의 조건이 되느냐,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평균 석차를 하나씩 뒤로 미뤄버리잖아요. 얼마나 얄밉겠어요.

그리고 여섯 째... 가출 경력이 있었어요. 어쩌면 이게 큰 흠이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재혼한 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이이는 밤낮으로 울고 불고 통곡하다가 냅다 가출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불량청소년이 된... 건 아니고,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교를 들이팠죠. 그러다 그만두고 나오긴 했지만,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불교는 이단이었죠.
 
누구 이야기 하느냐고요? 아, 율곡 이이여요. 5천원으로 익숙하고 그놈의 이기론 때문에 시험 볼 때마다 뇌세포를 괴롭히게 만든 분이지만. 그 분이 소싯적 - 어쩌면 나이 들어서도 심한 왕따였다면 의외였다고 들릴지도 몰라요. 
그치만 사실이었어요.

 

스무 살의 율곡은 성균관에 입학을 했는데... 입학하자마자 본격적인 왕따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균관에 입학하면 공자의 신주를 모셔놓은 문묘에 가서 인사를 해야 했지요. 3일 내에. 그렇지 않으면 기숙사 밥도 안 나오고 학생으로 인정을 못 받았어요. 그런데 학생회장이 자기 부하들 풀어다가 길을 막은 거여요. 어디 중놈이 감히 들어오려고 하냐면서. 그렇게 해가 지도록 계속 막아섰는데도 이이는 태연했다고 하죠. 그 이후로도 계속, 학교에서는 이이더러 중이라고 배척했습니다. 아마 말로만 안 하고 옷에다 먹물 끼얹고 소지품 뒤엎고 하는 절라 유치한 훼방도 놓았을 거여요 틀림없이.

이렇게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 율곡 이이는 두 말할 것도 없었지만 공부는 아주 잘 했습니다. 그런 왕따를 뚫고 명종 19년(1564) 한 해에 과거 6개 분야 올 클리어 장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요. 그리고 그 전에 했던 장원 세 개 합쳐서 총 9개, 구도장원공으로 끗발을 드높이 날립니다.
덧붙이자면 그 때 왕따를 주도했던 학생회장은 이이가 합격하고도 하안참 뒤에야 겨우 꼴찌로 과거에서 합격했고, 이후로 소식이 없답니다.

이후로도 괴롭힘은 이어지긴 했지만... 율곡 이이는 아주 성공적으로 왕따를 극복해냈죠. 매번 시험 때 마다 이기론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마침내는 모자가 함께 한국조폐계를 장악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성공한 율곡 이이는 - 힘들고 왕따당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꾹 참고 열심히 해, 그럼 언젠가 풀릴 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에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으니까요.

허나 이이가 평생을 걸고 노력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개혁이었어요. 경장(更張)이라고 했죠. 세상의 나쁜 점을 없애고 새로운 시대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죠. 그는- 비록 여러 괴롭힘을 받고 벽에 부딪혔지만 꾸준히 그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흠모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조는 그를 퍽이나 좋아했고, 어떻게 잘 부비면 흔히 말하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이는 끊임없이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점이 뻔하지만 아무도 손대려 하지 않는 문제들을 고치려고 했지요. 그 중 하나만 예를 들자면 바로 서얼 차별 철폐였습니다.
서얼들은 어머니의 신분이 낮다고 해서 과거를 볼 수도 없고 관직에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만, 빼어난 인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이의 어릴 때 부터의 친구인 송익필 역시 그 중 하나였죠.

그렇지만 양반들은 서얼들의 재능을 인정해주기는 커녕 - 아예 앉는 자리도 따로 할 만큼 극심하게 차별했죠. 다들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이가 서얼들에게 과거 시험도 보게 하고 벼슬도 주자고 주장을 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이에게 적자 자식이 없고 서자만 있어서 그걸로 자신의 대를 이으려 하는 것이라고 흉을 보았습니다만. 정작 이이는 돈이 없어 자식들을 천민의 신분에서 풀어주지 못했고, 보다 못한 친구들이 대신 해줬었지요. 사실 율곡이 추진했던 여러 개혁의 내용들을 생각하면, 서얼 차별철폐도 결코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었을텐데 말여요.

 

지금도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한 때 당한 분들도 많이 있겠지요. 괴롭던 건 순간이고 지나고 보면 별 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사람의 마음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상흔을 남겨요. 
잘 이겨내, 라는 말은 어려워요. 그 순간엔 정말 죽을 듯이 힘들거든요. 당장 다가오는 내일을 맞는 게 괴로워서 죽고 싶을 지경인데 참다보면 언젠가 끝날거야, 하는 말은 정말 공허하게 들려요.
앞에서 말한 율곡도, 학교에서 괴롭힘 당할 때 태연했다곤 하지만 마음 속 마저 편안하진 않았을 거여요. 어쩌면 그가 평생에 걸쳐 그렇게 노력하고 힘들게 살았던 건 그래서였는지도 몰라요. 자신을 비웃고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했겠지요. 그런 탓인지 사람이 좀 팍팍하고 그랬지만.

 

모든 사람이 율곡 이이가 될 순 없어요. 될 필요도 없고요. 다만 이것만은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이는 자기가 왕따를 극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만약 그가 좋은 집에서 태어나고, 성격도 좋고, 그래서 탄탄 대로를 달렸더라면. 서얼 친구를 두지도 않았을 거고 세상의 아픈 곳들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봤더라도, 안 됐다며 혀를 차며 돌아서고 끝났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이는 그것을 보고, 다가가고, 어떻게든 치료하려고 애를 썼어요. 비록 완벽한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노력이 아주 헛된 것이었다고 함부로 말할 순 없어요. 아예 서얼들을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지도 않던 양반들이 넘쳐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래서 나중의 서얼들은, 이이를 통해서 희망을 얻었어요. 봐라, 저렇게 훌륭한 이이 선생도 우리 서얼들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라고요.

비록 율곡 이이의 평생에 따돌림과 괴롭힘은 견디기 어려운 상처였겠지만. 그걸 통해서 그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를 얻고,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알게 되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원동력을 얻었어요.

 

그렇게 보면 왕따를 당해보는 것도 아주 나쁜 것만은 아녀요. 세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내가 아파봤으니까, 다른 사람이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건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도, 좋은 선생을 두고도 배울 수 없는 거여요.

그러니까... 힘내라고 해야 할지, 잘 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그냥 잠깐 한 숨 돌리고 주변을 돌아봐요. 지금은 내가 죽을 듯이 힘들어서 미처 몰랐지만, 나처럼 많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을테니까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면 조금은 편해질 거여요.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왕따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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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대체 뭐하고 지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바쁜 한 해였네요.
그럼에도 2011년 한 해 수입 중 30만원이 넘는 건 죄다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이었다는 점이 좀 서글프긴 한데(어흑). 새해는 조금 잘 풀리면 좋겠네요.
이런 이야기하면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 된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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