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집단휴진 관련

2014.03.09 02:09

행인3 조회 수:1821

어떤 계기로 갈등이 가시화 되었을 때, 계기가 된 사안 자체가 아니라 평소에 오래 묵혀두었던 불만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것 같습니다. 신한카드 등 카드회사에서 개인정보유출사건이 터졌을 때 왠지 액티브엑스에 대해 억울하다는 ('그렇게 귀찮게 했는데도 다 참아줬는데 이렇게 문제가 생기다니!') 이야기가 저부터 생각이 났었는데, 사실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요구/저장/유통하는 과정도 문제이고, 웹표준에서 고립된 한국의 인터넷 환경도 문제겠지요. 사실 두 문제는 논리적은 필연성은 없지만 역사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시 두 문제가 별개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세 가지 요구사항 (1) 원격의료 반대, (2)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반대, (3) 의료보험수가 인상을 내걸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략적으로 주장하시는 당위는 공공의료를 지키기 위함이지만, 협회가 대변하고 있는 주체는 1,2차 의료기관을 소유/운영하시는 의사분들로 보입니다. (1) 원력진료 서비스, 그리고 (2) 의료법인 자회사를 통한 대규모 자본의 시장진입이 의미하는 것은, 영세한 골목시장에 대형유통업체가 인터넷 쇼핑몰까지 같이 하면서 뚫고 들어오는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동네슈퍼 주인들이 차례로 문을 닫고는 대형유통업체체인의 직원으로 다시 문을 여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일단 슈퍼주인들에겐 엄청난 재난이지요. 그리고, 자본이 아무데나 그런식으로 난리를 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오직 자본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슈퍼에서 물건을 사던 동네 주민들 입장에서든 슈퍼주인이 누구인지는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예전에 동네슈퍼에서 살 때는 가끔 상한 귤도 있고 그래도 뭐라 얘기도 못하다가, 지금은 대형체인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좋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이 그렇게 모든 시장에 비집고 들어와서 날뛰는 것이 당장 그 시장밖에 사람들에겐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경계해야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적 의미가 큰 시장을 그 사회밖의 자본이 소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죠. 하지만 실제로 (1), (2)가 의미하는 바는, 의료시장에서 이익을 실현하는 자본의 소유자가 중소형 병원 사장/의사분들에게서 대규모 투기자본으로 이동하는 것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의료보험수가는 훨씬 더 오래된, 더 중요한 문제이고, 그리고 '의료 영리화'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협회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1. 우리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이익만을 실현하는 무자비한 자본에게서부터 국민을 보호하려 한다.
2. 그런데 우리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만 일하면 의료수가가 너무 낮아서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의료상품/서비스를 팔아왔다.
3. 그러므로 의료수가가 개선되면 우리는 국민의 건강만을 위해서 일하겠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각각은 맞는 말씀들인데 논리적 연관은 없어 보입니다.

의료보험수가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의료보험금은 너무 조금 내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보험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보험회사가 병원에게 줄 수 있는 돈은 굉장히 적겠지요. 그런데 이걸 당장 본인 병원을 운영하시는 현장에서 해결하는 방법은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그래서 낮은 수가를 매꿀 수 있는 진료를 권유/선택하는 임기웅변으로 버텨온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보험적용이 되는 (즉 의료서비스가 정말 필요한) 환자들에게 투입되는 시간과 시설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해야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고, 이는 현의료보험제도의 비효율성을 의미하겠죠.

아마도 제가 정말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한의사협회가 '이 모든 것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다'라고 내거는 대의명분이겠지요. 그 명분을 얽기 위해서 관련없는 얘기들을 한데 묶으려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약간 어그러지는 논리 때문에요. 물론 한국에서 '우리는 현실적인 (즉 고도의 전문직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건강에 더 중요한 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고 싶다'고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취하는 전략적 입장이라고 해도 말이죠.

아무튼 저는 이분들의 파업에 지지를 보냅니다. 각자 자신의 정당한 이익을 제도화하기 위한 다른 모든 파업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