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9 19:28
'노동 귀족'이라는 호명에 따라 보수 언론의 지면에 불려나오는 대기업 공장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대략 5천만원에서 6천만원 선이다. 작년 말,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을 주도했던 코레일의 경우, 6천3백만원이었다.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 4천불이니, 코레일 평균 연봉의 수령자를 맞벌이를 하지 않는 4인 가족의 가장으로 가정할 경우, 그 금액은 중산층이라고 불릴 수 있는 기준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동 귀족'라는 호명이 일반 시민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답변을 하기 위해선 국세청의 소득 관련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소득을 신고한 국민 약 1,890만명 중 절반인 943만명이 14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소득을 벌어들인다. 반면 상위 10%의 연소독은 7,100만원 대이며, 전체 소득에서 이들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4.3%에 달한다. 이런 통계 자료로 따져보자면, '노동 귀족'들은 '정규직'이라는 안정적인 토대 위에 대략 소득 상위 10%와 20%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노동 귀족'이라는 호명이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와 계층으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고 상상했던 이들의 소득이 예상보다 많을 때, 상대적인 박탈감의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다시 적대의 감정으로 변모하게 마련이다. 물론 이들의 평균 연봉을 확인한 후 노동 조합을 조직해 '임금 인상 투쟁'에 나서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못하다.
바야흐로 비정규직 천만 시대, 소득 신고자의 절반이 월소득 140만원으로 겨우 버티는 이 양극화의 거센 공세 앞에서, '각성'보다는 '질시'가 좀 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진통제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런 측면에서 '노동 귀족'의 반대편에 놓인 일상의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도 '사기꾼"이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본래 이 단어는 "남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른들의 일상 언어에서 이 단어가 등장할 때는 그 의미의 폭은 좀 더 좁아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누군가를 속이는 사람'이라는 본래 의미는 달라지지 않지만, "그 누군가가 발화자 자신이 될 때, 이때의 사기꾼이라는 단어는 '내가 일상 생활에서 소비자로서 상대하는 전문직 종사자들'를 향하게 된다.
그러니까 대략 의사나 약사, 변호사, 세무사 등이 '사기꾼'으로 호명될 수 있는 잠재적 직업군인 것이다.여기서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역전되어 있다. '노동 귀족'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다.서비스 제공자가 보통 사람들은 엄두내지 못하는 드높은 진입장벽을 통과해 지니게 된 전문직 자격증, 그리고 그것이 암시하는 전문 지식과 고급 정보의 보유가 이 관계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다. 문제는 소비자인 '나'가 그들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왜냐면 그들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전문 지식과 고급 정보로 나를 속여서 자신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소비자인 '나'보다 그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그들을 '노동 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듯이,소비자인 '나'보다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정당한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노동 귀족이라고 호명하는 보수 언론이나, 현대 의학에 지속적으로 의심의 시선을 건네며 신뢰할 수 없는 대체 의학에 관한 기사를 싣는 진보 언론은, 사실 서로 다른 거울에 비춰진 우리 시대 소비자주의의 맨얼굴이다.)
어쩌면 '노동 귀족'과 '사기꾼'이라는 두 단어는,한국의 '이른바' 중산층이 '야매'의 시대를 통과하며 절차탁마한 불굴의 소비자 정신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열쇠말인 지도 모르겠다.
박해천 선생님@ecri11 의 트윗 내용인데 내용이 괜찮습니다. (이 분 책도 훌륭해요. 추천합니다.)
철도노동귀족들이 패했듯이 사기꾼의사협회도 패할 가능성이 높죠.
그리고 그들도 모두 자본의 힘 아래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되겠죠.
다른 노동자와 좀더 평등한 대우=좀더 낮은 임금이요.
대기업 철도와 대기업 병원으로 가득찰 미래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냉전시절에 이런 농담이 있었죠. "공산주의는 평등하게 가난한 체제다. "
대한민국이야말로 이 농담에 잘 어울리는 국격을 세우는 중입니다.
첫 문단에 1인당 GDP로 나누어서 중산층 여부를 구분하는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유시민씨가 방송에서 한 말로 알고 있는데,
GDP라는 것은 말그대로 대한민국 내에서 1년간 발생한 부가가치의 총 합이니까요.
그중에 가구 소득으로 계산되어 지는 비율이 별도로 있습니다.
코레일의 임금이 많냐 적냐를 판단하려면 통계청이나 국세청에서 제시하는 중산층 기준 같은것으로 기준을 잡아야 옳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