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맨날 밥을 느리게 먹어서 속 썩이는 딸래미가 모처럼 열심히 빨리 먹어서 저녁 시간을 일찍 끝낼 것 같길래 "무시무시한 피노키오 보고 싶냐?"라고 물었어요. 모처럼 둘 다 숙제도 일찍 끝냈고. 두 놈이 다 끄덕끄덕 하길래 저녁 먹자마자 바로 틀어줬죠. 그 핑계로 저도 한 번 더 봤구요.


일단 애들부터 말 하자면, 재밌게들 잘 봤습니다. 공포도와 폭력성에 아직 극도로 민감한 애들인데 그냥 잘 보더라구요? 델토로가 폭력적인 건 다 나오지만 하나도 정확히는 안 보여주는 식으로 연출을 교묘하게 잘 한 듯. ㅋㅋ 모 캐릭터의 최후의 경우에도 제 눈에는 떨어져 부딪혀서 콰직 소리 난 게 다 보였는데 얘들은 한참 뒤에 '아까 그 사람은 어떻게 된 거에요?'라고 물어보더라구요. 후훗 순진한 것들.


유일하게 애들이, 정확히는 딸래미가 버거워했던 장면은 소년병 훈련소에서 빌런이 대놓고 속내를 드러내는 장면이었습니다. 폭력은 거의 없는 장면이었는데, 그냥 그 캐릭터의 어두컴컴한 행동이 압박스러웠나봐요. '저 그만 볼래요...' 이러고 인형 끌어 안고 자리를 뜨려고 폼을 잡았는데, 다행히도 그 장면이 그리 길지 않아서 잠시 후 돌아와서 끝까지 잘 봤습니다.


재밌는 건 엔딩에 대한 둘의 반응 차이였어요. 아들놈은 열 살 남자애답게 센 척 하면서 혼자 재미 없는 드립을 마구 쳐가며 우하하! 우하하하!!!! 하고 있는데 딸래미는 인형을 꼭 끌어 안고 심각하게 보더라구요. 울지는 않았지만, 해피 엔딩에서 그런 이별들을 보여주는 게 머리로 이해는 안 되어도 뭔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네요.


두 놈이 공통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건 피노키오가 무솔리니 놀리는 장면. 아무래도 노래 가사에 계속 똥이 들어가서 그랬던 듯 싶구요. (네, 아직 아가들입니다. ㅋㅋㅋ) 두 번째는 우리 귀뚜라미님이 '아버지는 말하셨지~' 할 때마다 봉변을 당해서 노래가 끊기는 개그였어요. 마지막에 기어이 그 노래를 완창하는 걸 보면서 계속 깔깔대며 웃더군요. ㅋㅋㅋ



덧붙여서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 재밌게 잘 봤습니다.

처음 볼 때보다 오히려 재밌게 봤어요. 아무래도 한 번 봐서 파악을 했으니 기대치 조정이 된 것도 있겠고. 또 이제사 이게 cg가 아니라 스톱모션이라는 걸 알고 보니 장면 하나하나가 다 감탄 덩어리더라구요. 이제 드디어 기술과 노가다 스케일 측면에서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넘어선 작품이 나왔구나 싶기도 하구요.



+ 자꾸 딸래미가 그 똥 노래를 불러달래서 죽겠습니다. 그 장면 다시 틀어놓고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요(...)



2.

티빙에 있길래 '총알 탄 사나이'를 봤어요.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짧게 시간 죽일 영화가 뭐 있을까... 하다가 골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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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제목 아래 적혀 있는 건 카피가 아니라 부제입니다. 그러니까 저걸 다 읽어야 제대로 된 제목이라는 거.)



 - 그 시절 기준 미국 입장에서 악의 상징이었던 인물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고르바쵸프에 이디 아민에 또 뉘시더라... 암튼 뭐. 거기에서 차를 따르던 남자가 갑자기 뜨거운 물을 여기저기 들이 붓고 두건을 벗으니 우리의 레슬리 닐슨씨가 나오겠죠. 그렇게 악당 정치가들을 다 쥐어패고 고르바초프의 머리를 걸레로 닦아서 얼룩을 없애고선 '이럴 줄 알았지!' 라며 혼을 내 준 후에 창 밖으로 탈출하면서 자기 소개를 해요. 나는 프랭크, 미국 경찰이다!!!


 왜 스파이도 아닌 경찰이 타국에서 남의 나라 정상들에게 이러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원래 그런 영화니까 넘어갑시다. 암튼 본격적인 줄거리는 우리의 레슬리 닐슨씨가 어쩌다 총 맞고 의식 불명에다가 마약 사범 누명까지 쓴 동료에 대해 조사하다가 팜므 파탈 만나서 연애도 하고, 얼떨결에 미국을 방문한 영국 여왕의 암살 음모도 막고 뭐 그런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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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주기로 '아직도 살아 있었네?'라고 저를 놀라게 했던 그 분. 올해 정말로 떠나셨죠.)



 - 1988년작이네요? 한국은 아니었던 것 같아 확인해보니 국내 개봉은 1990. 런닝타임은 85분이구요. 스포일러란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 영화구요.


 그 시절 한국인들에게 컬쳐 쇼크를 안겨줬던 영화였죠. 걍 헐랭하게 생긴 할배가 나와서 거침 없이 아무 짓이나 막(?) 하면서 무대뽀로 웃기는데 그 방식이 당시 한국 기준으론 꽤 충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국제 뉴스에서나 보던 유명인들을 거침 없이 쥐어패고 망신 시키고. 19금 섹드립을 마구마구 날려댐은 물론이고 애들용 만화에서나 봄직한 유치뽕짝 몸개그들까지 당당하게! 뭣보다 개연성 같은 거 다 그냥 내다 버리면서 유명한 영화를 갖고 흉내내며 웃기는 패러디 개그로 영화 한 편을 통째로 만들어도 된다는 게 참 신선했고 그랬습니다. 물론 뭐 여기의 거의 모든 게 해당되는 '에어플레인' 같은 영화가 먼저 있긴 했지만 일단 넘어갑시다. 인지도 차이가 있잖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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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기준 멀쩡히 살아 있는 남의 나라 여왕을 갖고 이런 개그를 치는 게 당시 기준 한국 어린이였던 제겐 참 쇼킹했습니다. ㅋㅋ)



 - 지금 보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낡은 영화입니다. 요즘 기준으로 볼 땐 성적, 인종적, 정치적으로 뭐 하나 멀쩡한 거 없이 다 거슬리는 것들 투성이구요. 뭐 보다보면 '아 그냥 저엉말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드립이나 막 던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안 불쾌해지는 기적이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요즘 세상에 나오긴 참 힘든 영화인 게 맞구요.


 문제는 그런 불편함이 아니라 그냥 이 영화의 개그 센스 자체가 낡았다는 겁니다. 안 웃겨요. 그래도 처음엔 추억 버프도 있고 해서 좀 피식피식하며 봤는데 이 영화의 개그 컨셉은 '물량전'이거든요. 드립 한 번 없이는 30초를 못 넘기는 수준으로 계속해서 비슷한 수준의 옛날 개그들을 던져대니 나중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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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당시엔 엄청 웃었죠. 인정합니다. 이런 '안전한 섹스가 제일이죠' 장면도 그 시절엔 정말 기발해 보였구요.)



 - 또 뭐랄까... 아무래도 옛날 영화잖아요? 요즘 비슷한 컨셉의 영화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21세기에 이런 스타일로 웃기려는 본격 코미디 영화들의 농담에 비해 이 영화의 농담들은 수위가 많이 약합니다. 그래서 역시나 심심. 좀 시큰둥한 느낌이 들구요.

 덧붙여서 영화(장르) 패러디 농담도 그렇게 본격적이지 않더라구요. 대충 하드보일드 형사물의 틀에다가 007을 끼워 넣은 정도인데 양쪽 다 그다지 존재감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쪽으론 (작품 완성도를 떠나) '못 말리는 비행사' 혹은 람보 쪽이 더 본격적으로 팠던 것 같기도 하구요. 혹은 위에서 이미 언급한 '에어플레인' 쪽도 그렇네요. 사실 전 '에어플레인'을 꽤 좋아합니다만. 그것도 지금 다시 보면 어떨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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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이렇게 엑스트라, 스턴트가 막 동원된 장면들은 그 쓸 데 없는 필요 이상의 노력 때문에 그냥 웃었습니다. ㅋㅋㅋ)



 - 암튼 뭐 '옛날엔 이게 그렇게 웃겼더랬지. ㅋㅋㅋ' 이런 기분으로 가볍게 잘 봤습니다만. 못 본 분들이 굳이 챙겨보실 필욘 없겠구요.

 티빙에 1, 2, 3편이 다 있는데 전 원래 1편만 봤거든요. 근데 후속편들은 역시 뭘 굳이... 이런 기분이네요.

 그냥 오래된 유적지 발굴하는 기분이었어요. 옛날 사람들(본인 포함!)은 이런 걸 되게 좋아했었다지! 오오 신기하네!! ㅋㅋㅋ

 이렇게 봤습니다. 끝.




 + 그 유명한 ZAZ 사단! 의 영화인 것인데요. 이후 이 분들 필모를 찾아보니 '무서운 영화' 시리즈 이후로는 뭐 거의 별 거 없다고 봐야겠군요. 그래도 제리 주커는 '사랑과 영혼'을 남기긴 했구요.



 ++ 리암 니슨 주연으로 리메이크된다고 합니다. 으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래 짤에 나오시는 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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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J. 심슨입니다. 험...;

 뭔가 요즘엔 이 사람이 죽이지 않았다! 는 쪽이 힘을 얻는 모양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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