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감사 인사

2012.02.13 20:11

에아렌딜 조회 수:2182

1.

오늘은 자동차 학원에 가서 주행연습을 했어요.

작년만 해도 제가 면허를 따러 갈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너 자꾸 우울하다고 해서 너 딴 생각 못하게 하려고' 신청하셨다네요. 돈도 없다시면서 자꾸 돈 쓸 일을 만드시는 어머니의 생각을 알 수가 없긴 하지만...

어쨌든 2차 시험까진 통과했고 내일이면 주행 시험이에요.

운전할 때 너무 겁을 먹어서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지난 주에 연습했을 때보단 오늘이 조금 더 나았어요.

내일 시험 때 잘 쳐야 할 텐데. 지금 자꾸 방향등 표시를 끄고 켜는 걸 잊어버려요. 주차도 어렵고...

 

 

 

2.

날씨가 추워요.

어제는 무척 따뜻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춥군요.  어제 너무 따스하기에 '정말 봄이 오는 걸까' 생각했는데 날씨가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리다니.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고 가끔 물방울이 얼굴로 떨어져 내리곤 하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이 도시는 분지 지형인지 유독 가물어서 전국적으로 폭우가 쏟아진다는 소식이 들릴 즈음에야 비가 오곤 하는 동네지요. 비가 안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퍽 적어요. 살기 좋은 도시라고는 하는데.

눈은 정말 안 내려요. 제가 산 20여년 동안 눈이 쌓일 정도로 내린 건 10번도 안 돼요.

그런데 전 너무 추위를 타요. 만약 다른 지방에 가서 산다면 여기의 배로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른 곳에 가서 살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을 벌려면 언젠가 여기를 떠나야 하겠지요. 여긴 너무나 작은 곳이니까요.

 

 

 

3.

얼마 전 부끄럽게도 죽겠네 어쩌네 하며 남겼던 글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진작에 했어야 하는데, 왠지 멍해져 있어서 이제서야 생각났네요.

제 인생에 이만큼 관심을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댓글이 많이 달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유명인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너무 오버겠지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게 죽겠느네 어쩌네 하며 철없다는 시선을 받거나 무시당하는 게 당연할 것 같은데.... 괜히 송구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언가 재치있는 인사는 못 하지만...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4.

전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물건이든, 행동이거나 배려이든)를 받는다는 것에 상당한... 아니,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거부감이라고 하면 조금 어감이 이상하지만...

왜냐하면 뭔가 받았으면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어서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게 당연하달까... 누군가에게서 뭔가 받으면 어떻게 돌려주지, 라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게 돼요.

또 한편으론 제가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불신으로 가득찬 인간이에요. 어렸을 적에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충격 때문인지 전 누군가를 믿기가 어려워요.

특히 겉치레의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잘 구분할 수가 없어요. 제가 눈치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그냥 예의상 하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은 어떻게 구분하는 걸까요?

게다가 남의 혐오를 잘 사는 편이라 저에게 뭔가 잘 해주는 사람도 드물었어요.

아무튼 이렇다보니 누군가 나에게 잘해준다거나 좋은 것을 주거나 하면 '왜 나에게 이런 걸 해 주는 거지?' 이런 생각부터 들어요.

혹은 나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좋은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순 없다, 는 생각이 들지요... 나에게 뭔가 좋은 것을 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나보다는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편이 더 세상을 위해 나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돌려줄 것이 없는 뻔뻔한 사람이니까요.

 

언젠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아무 은원도 남기지 않고, 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가능하면 지워버리고 싶은 저로선... 누군가의 호의도 받기가 참 힘듭니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에겐 그 배를 돌려주고 싶은데, 그 마음에 따라가지 못하는 한심한 내 모습이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뻔뻔스럽게 받아버리곤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의 부담은 어찌할 수가 없지요. 세상 모든 것은 일방통행이 아닌 것을요.

 

얼마 전 어느 따스한 분의 감사한 제의가 있었습니다만... 어떻게 답장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저로선 받기 벅찬 고마운 말씀을 해주셨지만, 받을 수는 없어요.

전 그렇게 좋은 인간이 아닌데... 왜 저에게 그렇게 마음을 써주시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마음쓰지 마세요. 당신의 귀한 마음씨는 저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누구나 각자의 길이 있잖아요. 내가 홀로 고독한 길을 걸어가서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그것은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결국 내 길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하니까요.

전 단지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한 조각이나마 받았다는 사실에서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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