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47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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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은 듯 하면서도 은근 번잡, 잡다구리 게으른 느낌도 들고. 평소의 넷플릭스 포스터 이미지라 하겠습니다.)



 - 런던입니다... 만 미래의 런던이죠.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 건 분명하고 환경도 많이 안 좋아진 듯한 뉘앙스지만 크게 티는 안 나요.

 암튼 그 런던의 빈민가 '더 키친'이 배경입니다. 주인공은 장례 업체에서 일하며 제대로 된 1인용 아파트 하나 마련해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으로 가득한 젊은이 '이지'구요. 오늘도 보람차게 손님들에게 약을 팔아가며 실적을 올리고 인센티브도 얻었는데... 그러다 진행 중인 장례식 하나의 주인공이 과거의 자기 지인이라는 걸 알게 되어 들어가 참석, 혹은 구경을 해요. 문제는 그 식에 있었던 망자의 유일한 혈육, 어린 아들래미가 그런 이지를 보고 앵겨 붙으려 한다는 거죠. '키친'에서 주어지는 한정된 샤워 타임을 문 걸어 잠가 놓고 혼자 다 써버릴 정도로 이기적인 우리 이지군에게 이런 아이를 챙길 마음의 여유 따위 없지만. 그러다 이 녀석이 동네 폭력 조직(이라지만 '의적' 비슷하게 활동하는 놈들입니다.) 녀석들과 어울리는 걸 보곤 괜한 오지랖에 '그럼 이틀만 나랑 있자'고 약속을 해 버리네요.

 간신히 얻어낸 1인 아파트 입주권을 쓸 수 있는 유효 기간이 이틀 밖에 안 남은 가운데 이렇게 덜컥 어린애를 받아 정을 주기 시작한 우리 이지군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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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보면 딱 SF 액션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럽니다만. 사실 저 오토바이는 그냥 출퇴근용이고 정말 출퇴근만 합니다. ㅋㅋㅋ)



 - 그냥 신작이라고 뜨는데 때깔 좋아 보이고, SF길래 봤습니다. 

 일단 때깔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런닝타임 1시간 47분 중에 거의 1시간 40분은 빈민가만 보여주는 영화지만 암튼 때깔은 좋아요. ㅋㅋ cg도 그렇게 티나지 않게 잘 쓰였고, 뭣보다 미술적으로 꽤 제 취향이었습니다. 거대한 더 키친의 위용(?)도 맘에 들었고. 미래적인 디자인, 소품들과 그냥 현재의 빈민가 느낌을 위화감 없이 참 잘 섞었더라구요. 

 그리고 그런 시각적 설득력에 더불어 세계관도 나름 괜찮습니다. 사실 뭐 애초에 조금 미래적인 소품들을 제외하면 현재로 배경을 옮겨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세계관이라 그런 것이긴 합니다만. ㅋㅋ 그래도 어쨌든 설득력은 있어요. 요즘 같은 양극화가 꾸준히 진행되면 가까운 미래에 정말 이거랑 비슷한 꼴을 볼 수 있겠다... 란 생각이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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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더 키친'이에요. 구룡성채를 모델로 한 건가... 라는 생각이 얼핏 들더군요.)



 - 그런데 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로 위에서 한 얘긴데, 이게 SF이긴 한데 SF여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ㅋㅋ 일단 이야기가 정말로 지금 현재를 배경으로 해도 거의 아무 무리 없이 고쳐쓸 수 있겠다 싶을 정도에요. 굳이 미래일 필요도 없고 무슨 신기술 같은 게 나올 필요도 없거든요. 대충 2019년작 프랑스 영화 '레 미제라블' 같은 영화를 떠올려 봐도 거기 주인공들이 사는 빈민가와 이 영화의 '더 키친'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나 싶구요. 근데 그렇다면 굳이 설정을 이렇게 잡을 이유가? 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둘째도 사실 위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이야기가 정말로 그냥 진중한 사회 고발 & 휴먼 드라마용 스토리입니다. 이게 장르 구분을 보면 SF/스릴러라고 되어 있는데... 대략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ㅋㅋㅋ 궁서체로 진지하게 미래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가 불러온 비극을 이야기하는 드라마이고 클라이막스에서 벌어지는 일들. 특히 주인공들의 행동 같은 부분에서 장르물 느낌이 전혀 없거든요. 이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겠는데, 문제는 이게 다시 한 번 영화의 장르, 비주얼과 엇박자를 낸다는 겁니다. 그냥 현재를 배경으로 한 진중한 사회 고발물 같았음 나름 울림이 있었을 법한 엔딩인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음? 이게 마무리야?? 진심?' 이런 생각이 먼저 들어요.


 적다 보니 이게 참 뭔 소린지 못 알아 먹겠다... 싶어서 매우 거칠고 부정확한 비유를 들어 보자면. '블레이드 런너'의 세계관과 비주얼을 갖고서 '아무도 모른다' 이야기를 하면 어떻겠냐는 거죠. 아주 나쁘진 않겠지만, 왜 이렇게 만든 건지 좀 의아하지 않겠습니까. 이 영화가 대략 그런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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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주얼은 대략 마음에 들긴 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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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차림새의 아저씨들이 우루루 몰려와 사람 쥐어 패며 끌고 가고 건물 철거하는 이야기... 에 굳이 SF적 세계관이 필요하지 않은 나라에서 자라서 그런지 좀 시큰둥해지더라구요. ㅋㅋ)



 - 좀 아쉬웠습니다. 계속 말하지만 화면 때깔 좋고 세계관도 나름 그럴 듯 하고. 배우들도 대부분 잘 해줍니다. 게다가 부분적으로 장면 장면들을 각각 놓고 보면 꽤 잘 만들었다 싶거든요. 인상 깊은 장면, 뭐가 됐든 보기 좋은 장면도 적지 않고... 뭐 그러한데요. 클라이막스를 위해 차곡차곡 빌드업을 해가는 구나! 라고 생각하며 정적인 이야기를 기꺼이 즐기면서 막판까지 갔는데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이 갑자기 참으로 탈력감을 주는 거죠.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들과 별개로 벌어지는 큰 사건이 하나 있고 그 와중에 주인공들은 윤리적 문제로 절정의 갈등을 빚으니 이거랑 저거로 퉁 치자. 라고 생각을 한 건 같은데 뭐... 제 입장에선 그게 영 약해 보였습니다. 차라리 좀 과하게 드라마틱하더라도 그 '큰 사건'의 중심에 주인공들을 던져 넣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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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의 캐릭터는 괜찮았고, 배우들도 잘 했고, 드라마도 그 자체론 나쁘지 않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왜 굳이 이런 식으로?'라는 생각이 끝까지 떨쳐지지 않더군요.)



 - 그래서 음... 추천은 하지 않는 걸로? ㅋㅋㅋ

 다니엘 칼루야의 연출 실력이 궁금하시다면 보세요. 이야기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연출의 기본기는 꽤 탄탄하게 갖춘 듯 하니 앞날이 기대가 되더군요.

 소소한 스케일의 디스토피아 SF영화들 좋아하신다면 본다고 해도 굳이 말리진 않겠구요. 양극화 문제에 대해 고찰하고 고발하는 사회물 하나를 급히 봐야 할 사정이 있다(?)는 분들이라도 나쁘진 않으실 겁니다... 만. 음. 그냥 '레 미제라블'을 보시는 게 훨씬 낫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건 애매하군요. ㅋㅋ

 뭐 그렇습니다. 좋다가 말았달까요. 그냥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배우들의 미래를 기대하겠습니다.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영화의 '더 키친'이라는 곳은, 말하자면 철거가 예정된 판자촌 비슷한 공간입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불법으로 점유하며 살고 있고. 정부와 기업에선 이 사람들 다 쫓아내고 건물도 밀어 버린 후에 간지나는 새 건물을 짓고 싶어 하지만 사람이 있는 채로 건물을 날려 버릴 순 없잖아요? 그래서 수시로 급습을 해서 집 밖을 어슬렁거리다 미처 집안으로 대피 못한 사람들을 싹 다 연행해 가 버려요. 하지만 어차피 갈 곳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계속해서 버티구요. 근데 이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꼴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지가 여길 떠나 합법적인 자기 아파트를 갖기 위해 독하게 살고 있는 거죠.

 극중에서 이야기하는 바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구역이 여러 군데 있었지만 이제 거의 다 털려서 대기업의 공사판이 되었다는군요. 이걸 알아 두시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되겠구요.


 그래서 이 영화의 엄마 잃은 어린이 '벤지'가 이지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엄마가 유일한 보호자였기에 기댈 곳 없는 고아가 되어 버린 게 첫 번째이겠지만. 엄마가 생전에 벤지에게 이런 얘길 했거든요. "니 아빤 장례 회사에서 일하며 '더 키친'에 사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네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지만 널 보는 순간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그런데 엄마의 장례식장에 이 두 가지 조건에 딱 들어 맞는 남자가 찾아와 구경을 하고 있으니 이 놈이 내 아빠구나! 라고 생각을 해 버린 거죠. 그래서 벤지는 대놓고 이지에게 니가 내 아빠냐고 물어보지만 벤지는 참으로 오묘한 표정만 지으며 답을 회피합니다.


 암튼 이 어린애가 맨날 경찰과 대립하는 전과자 집단과 어울리는 게 걱정이 되었던 이지는 벤지를 데리고서 본인의 아파트 이주 전까지 이틀만 살아보기로 하는데요. 그 와중에 실수를 해서 애한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점차 정이 들며 감정을 쌓아가죠. 그러다 드디어 본인이 염원하던 1인용 아파트에 입주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오고. 아파트 회사를 찾아가 번뇌하던 이지는 '2인용 아파트로 업그레이드'를 문의해보는데 거길 가려면 당연히 돈도 훨씬 더 모아야 하고 또 자기 입주 차례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답변해주세요'라는 AI의 질문을 듣고 망설이던 이지는...


 그냥 장면이 바뀌고 이지는 벤지를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서 맛있는 아침을 사줘요. 신나게 먹는 벤지를 지켜보던 이지는 '잠깐 일 좀 보고 올게?'라고 말하며 자리를 뜹니다. 이거 뭔가 80년대에 굉장히 많이 봤던 장면이죠. ㅋㅋㅋ 네. 결국 당장의 1인용 아파트를 택한 겁니다. 이지는 그 코딱지만한 아파트에 들어가 애매... 한 표정을 짓고. 벤지는 배신감에 휩싸여 '더 키친'의 위험한 녀석들을 찾아가 이들이 벌이는 부자들을 향한 테러 행위에 동참합니다. 하지만 그게 정도가 심해지자 결국 부들부들 떨며 도망쳐서 이지가 살던 집에 들어가 짱박히네요.


 그리고 다음 날 쯤에 다시 공권력의 더 키친 털이가 시작됩니다. 근데 이번엔 사람들도 그냥 당하진 않아요. 위에서 말한 '위험한 녀석들'이 이번엔 경찰들을 공격하기 위해 덫을 쳐놓고 기다리다가 얘들을 고립 시키고서 막 공격하는 장면들이 나오구요. 어쨌든 나머지 경찰들은 더 키친의 내부로 들어가 사람들 쥐어패고 막 끌고 가는데... 이때 벤지가 위기에 처하구요. 그 순간 홀연히 나타난 이지가 벤지를 구해서 자기 살던 집으로 간신히 간신히 들어갑니다. 이 바닥 룰에 따르면 들어가서 문 잠그면 세이프에요. 건물을 부숴가며 끌어 내는 건 금기거든요. 


 그리고 그 안에서 이지는 분노하는 벤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응어리를 풀어줍니다. 보아하니 아파트도 포기하고 벤지를 위해 돌아온 것이니 벤지 입장에서도 계속 화 낼 필욘 없겠죠. 그러곤 둘이 나란히 서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벤지가 물어요. 이지, 당신이 제 아빤가요. 그러자 또 한참을 오묘한 표정을 짓던 이지가 힘겹게 쥐어짜내듯 말합니다. 나를 네 아빠로 삼는 건 어떻겠니.


 대략 미소로 화답하는 벤지. 둘은 손을 잡고 계속 창 밖의 난리통을 바라보구요. 그 순간 이들이 집 문을 마구, 거칠고 강렬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젠 문을 부수고라도 끌어내려는 건지, 어쨌든 둘은 여전히 손을 꼭 잡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그 순간 더 큰, 진짜로 뭔가 부숴지는 듯한 효과음이 들리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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