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막차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봤습니다. 기대보다 더 좋았어요.


직장인은 출근을 해서 직장인으로 살고, 퇴근을 해서 개인으로 삽니다.

두 정체성은 때로는 충돌하지만, 사실은 공생관계입니다. 회사일이 너무 한심하고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순간은 종종 찾아오지만, '그래 이게 내 삶의 전부는 아니잖아' 하면서 우리는 또 출근을 하죠.


첩보원도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퇴근이 없습니다. 

사적인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은 첩보원에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조지 스마일리와 카를라가 그 분명한 예입니다.

둘이 대면했을 때 스마일리는 카를라에게, '자네나 나나 이제 무슨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닌 직장인이고, 아내랑 안락한 생활을 누려'라고 회유합니다. 은퇴하고 개인의 삶 살라는 거죠. 카를라는 약점을 발견했다고 속으로 웃었을 겁니다.

그 날 카를라가 죽음을 각오하고 소련으로 돌아간 건, 그에게 직장 외의 삶이란 없어서 퇴직이 곧 죽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모범 직장인 빌 헤이든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이 영화의 교훈입니다.

우정? 연애? 직장에서 한 큐에 해결하지 뭐.

그러나 사내연애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건 금방 드러났죠.


게다가 더 심각한 게 빌 헤이든은 회사가 하는 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만약에 빌 헤이든이 마음껏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듀X 같은 인터넷 게시판에 "유럽 자본주의 제국주의는 완전 썪었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인가요?" 하고 떠들고 공감 받으며 써커스를 그저 직장으로 견디며 사는 수도 있었겠죠. 나는 먹고 사느라 다니는 거지 회사에 꼭 공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직장은 개인으로서의 삶까지 완전히 회사와 일치하지 않으면 다닐 수 없는 곳이기에, 그가 유일하게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예 작정하고 이중간첩을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게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콜린 퍼스가 울었을 때 저도 울었습니다.


그러므로 회사는 조직을 위해서라도 직원의 워크 앤 라이프 발란스를 챙겨줘야 합니다.

새 조직장으로 부임한 조지 스마일리가 자기 출세하느라 헤어지게 만든 부하 애정사부터 챙겼기를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70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22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739
82252 [Djuna人] 듀게에 혹시 드럼 치시는 분 계신가요? [5] 이인 2012.02.19 1058
82251 쇼핑 중독의 세계 [15] loving_rabbit 2012.02.20 4086
82250 [윈앰방송] 올드락 나갑니다 ZORN 2012.02.20 692
82249 1박 2일 1시즌 마지막을 보고.. [1] 라인하르트백작 2012.02.20 1664
82248 [스포일러 포함] 케이 팝 스타에 대한 한 가지 질문 + 오늘 방송분 잡담 [8] 로이배티 2012.02.20 2487
82247 절판된 시집은 어디서 구할수있나요? [1] 가벼운계란 2012.02.20 776
82246 [바낭] 오늘은 저의 탄신일입니다. [35] miho 2012.02.20 1089
» (스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사생활이 없는 직장인의 비극 [9] 호레이쇼 2012.02.20 2862
82244 [바낭+질문] 후지타 사유리와 데라야마 슈지 [2] 멍멍 2012.02.20 1649
82243 [듀나iN]검사장 직선제에 관련한 의문... [1] 마으문 2012.02.20 730
82242 영화 디센던트와 아티스트에 대한 잡담 [2] 베이글 2012.02.20 1400
82241 박원순 아들 병역기피 MRI 사진 확보된 이후의 사람들의 반응+의견이 궁금합니다. [12] 잠시만요:p 2012.02.20 3309
82240 지난 3일간에 걸쳐 드디어 [2] 예언사냥꾼 2012.02.20 801
82239 다이어트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이유, 100권 프로젝트 읽은 책들.. [8] being 2012.02.20 3708
82238 잠이 안와서 심야 바낭 [14] 에아렌딜 2012.02.20 1954
82237 잠 안와서 찌질력을 흘려봅니다 . [3] 타보 2012.02.20 1296
82236 스따-ㄹ-벅스 텀블러를 사고나서 잡상 [5] 루아™ 2012.02.20 2724
82235 [코빅] 라이또 정규리그 우승 확정 [5] 가라 2012.02.20 1744
82234 범죄와의 전쟁 조금 다른 이야기(스포 주의) [2] 루아™ 2012.02.20 1900
82233 미스A 신곡 '터치' 뮤직비디오. [7] 자본주의의돼지 2012.02.20 248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