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0 01:56
거의 막차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봤습니다. 기대보다 더 좋았어요.
직장인은 출근을 해서 직장인으로 살고, 퇴근을 해서 개인으로 삽니다.
두 정체성은 때로는 충돌하지만, 사실은 공생관계입니다. 회사일이 너무 한심하고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순간은 종종 찾아오지만, '그래 이게 내 삶의 전부는 아니잖아' 하면서 우리는 또 출근을 하죠.
첩보원도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퇴근이 없습니다.
사적인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은 첩보원에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조지 스마일리와 카를라가 그 분명한 예입니다.
둘이 대면했을 때 스마일리는 카를라에게, '자네나 나나 이제 무슨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닌 직장인이고, 아내랑 안락한 생활을 누려'라고 회유합니다. 은퇴하고 개인의 삶 살라는 거죠. 카를라는 약점을 발견했다고 속으로 웃었을 겁니다.
그 날 카를라가 죽음을 각오하고 소련으로 돌아간 건, 그에게 직장 외의 삶이란 없어서 퇴직이 곧 죽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모범 직장인 빌 헤이든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이 영화의 교훈입니다.
우정? 연애? 직장에서 한 큐에 해결하지 뭐.
그러나 사내연애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건 금방 드러났죠.
게다가 더 심각한 게 빌 헤이든은 회사가 하는 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만약에 빌 헤이든이 마음껏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듀X 같은 인터넷 게시판에 "유럽 자본주의 제국주의는 완전 썪었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인가요?" 하고 떠들고 공감 받으며 써커스를 그저 직장으로 견디며 사는 수도 있었겠죠. 나는 먹고 사느라 다니는 거지 회사에 꼭 공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직장은 개인으로서의 삶까지 완전히 회사와 일치하지 않으면 다닐 수 없는 곳이기에, 그가 유일하게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예 작정하고 이중간첩을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게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콜린 퍼스가 울었을 때 저도 울었습니다.
그러므로 회사는 조직을 위해서라도 직원의 워크 앤 라이프 발란스를 챙겨줘야 합니다.
새 조직장으로 부임한 조지 스마일리가 자기 출세하느라 헤어지게 만든 부하 애정사부터 챙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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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내가 그래왔고, 그러는게 당연한건데' 라고 생각하는 직장상사라면 더더욱 가능성은 희박해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