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지뢰밭)

2017.08.25 17:06

여은성 조회 수:499


 #.원더우먼에 나오는 악역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해요. '인간들은 전쟁을 통해 위대해질 기회를 얻는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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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올해의 증시는 비유하자면-아주 오랫동안 지뢰밭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랫동안 지뢰를 밟지 않고요.


 누군가는 이러겠죠.'지뢰밭을 걷는 건 나쁜 거잖아? 위험하니까.'라고요. 그야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게 누구든, 지뢰를 한 번도 밟지 않고 지뢰밭을 한 시간 동안 걸어다녔다면 신에게 사랑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할 거예요. 


 이 기분만큼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거예요. 오직 지뢰밭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죠.



 2.하지만 누군가가 한 시간 동안 지뢰밭을 걸어다니고 지뢰를 밟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걸음, 다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지뢰를 밟을 확률은 계속 높아져만 가는 거예요. 지뢰밭을 계속 걸어다닌다면 언젠가는 지뢰를 밟고 말거니까요.


 그러나...한 시간 동안 멀쩡히 지뢰밭을 걸어다니는 스릴을 맛본 사람이 이제 와서 냉정함을 되찾고 지뢰밭을 떠날 수 있을까요? 아니, 좀 더 걷고 싶을 걸요. 그 때부터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서라도 계속 지뢰밭을 걷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의 운에 취하거나 공포에 취해서 점점 이상해져갈 거예요.


 여기가 지뢰밭인 걸 잊고 정말 산책을 즐기거나 아니면 다음 발걸음에야말로 지뢰를 밟고 말 거라고 공포에 질려 이상해져 버리거나...어떤 형태로든 이상해져가는 거죠.  



 3.누군가는 이러겠죠.


 '지뢰라느니 운이라느니 하는데 지금 이거 주식 얘기 하는 거잖아? 주식을 운빨 싸움처럼 묘사하다니.'


 라고요. 하지만 글쎄요...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할 수 있는 최선의 옥석 가리기는 늘 하고 있지만 결국 추려낸 수십 개 종목 중에서 마지막 몇 개를 선택하는 건 감각으로 결정해야 하죠. 그래서 주식이 오르고 내리고는 운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대학생 때까지는 주식이 오르면 '난 역시 똑똑해!'라고 기뻐하긴 했지만...



 4.휴.



 5.오늘도 지뢰를 밟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지뢰밭에서 나가지도 않았죠.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도 지뢰밭에서 시작해야 해요.


 그야 나는 정신나간 별종이 아니라서 지뢰를 굳이 밟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지뢰를 밟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뢰밭에 가지 않는 거란 것도 잘 알죠. 아니면 한동안은 지뢰밭을 나가 있기라도 하거나요.


 그런데 솔직이 할 일이 없거든요.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으니까요. 지뢰밭을 나가봐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굳이 지뢰밭에서 뭐하러 나가겠어요.



 6.최근에 블로그에 옮겨볼까 하고 내가 쓴 일기들을 죽 훑어보다가 웃었어요. 구정이나 추석...연휴 때마다 연휴는 너무 싫다고 투덜거리는 글을 꼭 썼길래요. 연례 행사마냥.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연휴에는 지뢰밭도 쉬니까요. 내게 유일하게 재미를 주는 지뢰밭이 며칠씩이나 문을 닫으니 도저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거죠.



 7.위에 쓴 원더우먼 악역의 대사...인간이 전쟁을 통해 위대해질 기회를 얻는다는 말은 영화 내에서 부정당해요. 나 역시 그걸 보며 '얼마나 할 일이 없는 놈들이어야 전쟁을 통해 위대해지려고 할까.'라고 비웃었어요.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쩐지 내 얘기 같기도 해서 슬펐어요. 늘 쓰듯이 이제는 뭔가가 될 수가 없잖아요. 빌어먹을 축구선수도 될 수 없고 빌어먹을 우주비행사도 될 수 없고 빌어먹을 예술가도 될 수 없죠.


 이 소름끼치는 현대 사회를 생각해 보세요. 나는 축구선수도 될 수 없고 우주비행사도 될 수 없고 예술가도 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채로 아주 오랫동안 살아 있어야 해요. 지나치게 발전해버린 기술이 사람들을 계속 살아있게 만들어 버리고 있죠. 그래서 주식투자는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일인 거예요.



 8.인간은 그렇거든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걸 꿈꾸며 살아가는 시기가 있어요. 스스로를 의심하지도 비웃지도 않는 시기죠. 아무리 고단하고 초라해도 언젠가 특별한 사람이 될 나를 상상하면 내면에서부터 샘솟는 듯한 기쁨의 빛을 느낄 수 있어요. 그것이 어린 사람들의 특권이고, 그 시기를 지나버리면 그 특권은 더이상 누릴 수가 없죠. 그래서 지뢰밭을 걸어다니는 것 같아요.


 지뢰밭에서 살아남은 날은 그래도 지뢰밭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되는 거거든요. 그게 이제 유일하게 남은,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서 어쩔 수 없어요. 여기서 나가지 않고 계속 어정거리다간 언젠가는 지뢰를 밟을 날이 올 거란 건 알면서도 떠날 수가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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