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흐트러진 구름>을 추천하신 c모 듀게님의 글을 보고 그동안 묵혀두고 있던 


이 감독의 영화 몇 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이 감독의 영화 세 편을 봤는데 저는 흐트러진 구름(Scattered Clouds, 1967)보다는 부운(Floating Clouds, 1955)을 


더 재밌게 봤고, 부운보다는 흐트러지다(Yearning, 1964)를 좀 더 좋은 영화로 봤던 것 같아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저는 여주인공 캐릭터를 좀 더 세심하게 과장 없이 보여주는 영화에 끌렸던 게 아닌가 싶네요. 


컬러보다는 흑백 영화가 이 감독에게는 더 어울리는 것 같고 여주인공으로 다카미네 히데코가 나오는 영화가 더 좋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 보려고 한 영화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When a Woman Ascends the Stairs, 1960)와 


산의 소리(Sound of the Mountain, 1954), 만국(Late Chrysanthemums, 1954)인데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를 보고 난 후 유튜브에서 츠루하치 츠루지로(Tsuruhachi and Tsurujiro, 1938)를 발견하는 바람에 


이 두 편을 봤어요. (예전에 이름을 영화제목으로 하는 영화를 찾을 때 o모 듀게님이 이 영화를 추천해 주셨던 기억이 나서... ^^)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는 술집을 경영하는 마담(?)의 이야기인데 스토리만 보면 정말 더 이상 통속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뻔한 이야기인데도 전혀 촌스럽지 않게 이상하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빨아들이는 힘이 있어요. 


일본 영화 중에 이만큼 여성 캐릭터를 가감없이 진실하고 매력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또 있었나 싶네요. 


다 보고 나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카비리아의 밤>이 떠오르기도 하고... 


지금까지 제가 본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 중에서는 이 영화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그 다음은 <흐트러지다> 


<흐트러지다>도 시동생이 과부인 형수를 짝사랑하다가 비뚤어지는 참 더할 나위 없이 멜로드라마틱한 이야기인데도 


그런 이야기를 감정의 과잉 없이 조용히 보여준다고 할까... 


(배우들은 나름 감정을 분출하면서 연기하는데 영화가 그걸 보여주는 방식에 과장이 없다고 할까... 뭐 그래요.)


하여간 나루세 미키오 감독은 아차하는 순간에 3류 영화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는 엄청나게 통속적인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진실하게 보여줘서 마치 정갈한 고전문학을 한 편 읽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몹시 신기한 감독이네요. 


<츠루하치 츠루지로>는 결말을 빼고는 다 마음에 드는데 사실 가능한 두 결말 중 어떤 것을 선택했든 제 마음에는 


안 들었을 것 같긴 해요. 이 감독의 1930년부터 1967년까지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 영화인데도 


어린 두 연인의 관계를 참 생생하게 묘사해서 감탄을 자아내더군요. 


이 영화도 참 단순하고 뻔한 애정영화 스토리인데 몇몇 장면들을 보면서 예전에 연애하다 싸우고 헤어지고 하던 일이 


떠오르는 걸 보면 이 감독은 단순한 대화 장면 몇 개로 삶의 핵심을 뽑아내는 참 신통한 재주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 감독의 영화들은 스토리나 대사가 단순해서 다른 고전 영화들을 볼 때처럼 대단한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아 보기 편하면서도 


다 보고나면 뭔가 고요하고 은은한 여운을 남기네요. 


하여간 결론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들은 쓸쓸한 가을날 보기에 참 좋은 영화인 듯해요. 


(대부분 로맨스 영화이고 여자가 주인공이고 비극적 결말 ^^) 


이 감독은 거의 90편에 달하는 상당히 많은 영화를 만들었던데 혹시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당장 못 보더라도 제목이라도 알아놓으면 언젠가는 보게 되더라고요. ^^ 


아, 츠루하치 츠루지로의 링크는 https://youtu.be/sizxkR5oNQM   


(영어자막이지만 대사 자체가 단순해서 그렇게 보기 힘들진 않았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6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1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13
121680 프레임드 #263 [2] Lunagazer 2022.11.29 122
121679 우루세이 야츠라 Only You [2] catgotmy 2022.11.29 277
121678 [넷플릭스] '엘리트들', 저엉말 신기한 시즌 6 [2] S.S.S. 2022.11.29 429
121677 잡담, 조개탕, 기부 [3] 여은성 2022.11.29 520
121676 플로렌스 퓨는 얼른 어른스럽게 보이는거고 실은 이렇게 어려요 [2] 가끔영화 2022.11.28 623
121675 상해에서 있었던 (반정부)시위 이야기 [5] soboo 2022.11.28 887
121674 프레임드 #262 [4] Lunagazer 2022.11.28 128
121673 [왓챠바낭] 용의자 X씨가 뭔 헌신을 하셨는지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댓글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9] 로이배티 2022.11.28 881
121672 이번 월드컵에서 또 하나의 콩가루 집안 벨기에 [12] daviddain 2022.11.28 790
121671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1] catgotmy 2022.11.28 242
121670 [넷플릭스바낭] 팀 버튼 버전 아담스 패밀리, '웬즈데이'를 봤어요 [14] 로이배티 2022.11.27 1248
121669 Irene Cara 1959-2022 R.I.P. [6] 조성용 2022.11.27 345
121668 흥미로운 다큐나 영화 추천해주세요 [2] 산호초2010 2022.11.27 347
121667 엡스타인의 그림자: 길레인 멕스웰(왓챠) [2] 산호초2010 2022.11.27 345
121666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축구계 바퀴벌레 커플 daviddain 2022.11.27 567
121665 오토바이 신호 위반 문제 [2] catgotmy 2022.11.27 266
121664 프레임드 #261 [6] Lunagazer 2022.11.27 136
121663 드라마 ' 너를 닮은 사람(2021)' - 약간의 스포 [4] 2022.11.27 453
121662 담벼락 넝쿨은 그렇게 꼭 붙어있을까 가끔영화 2022.11.27 137
121661 Red hot chili peppers - Under the bridge [1] catgotmy 2022.11.27 13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