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에 대한 잡담

2019.07.2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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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 광고 콘셉트 회의에서 해외 감독들과 함께 박찬욱의 영화 이미지들도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평소 과격한 언사를 절대 하지 않는 J가 발끈하며 반발해서 좀 놀랐습니다. "그의 영화는 머리로 배운 버석버석한 놀음의 전형을 보여줬을 뿐이죠.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잠시 솔깃한 적도 있었으나, <박쥐>와 <아가씨>에서 없던 오만정도 다 떨어졌어요. 쇼맨쉽이 강하니 차라리 평론를 하면 잘하지 않았을까? 라는 기존의 판단도 철회했습니다. 어설픈 수재형의  어설픈 혁신이 칸에서도 먹혔다는 게 이해 안 돼요. 그의 작품은 진실성 1도 없어요. 뭐 예술이 다 그런 거 아니냐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의 비판을 듣고 있자니,  예전에 키에슬롭스키가 "고작해야 악동 타란티노의 '펄프픽션' 따위에 나의 '레드'가 졌다'고 비웃던 뒷 토로가 불현듯 떠오르더군요. - -

2. 15 년 전쯤이었나, 정성일이 박찬욱에게 내렸던 판정도 생각났습니다. "박 감독의 영화에 아무리 피가 난무하고 고독한 세월이 흘러도 그는 '삶의 무거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뉘앙스의 글이었어요. 그 글을 읽으며 제가 끄적댄 메모를 떠올려봅니다.
- 영화는 현실의 불합리에 부딪고 한계를 넘어서는 몸짓이어야 한다고 정성일은 생각한다. 반면, 박찬욱은 텍스트는 강렬한 대립소들에 의해 긴장이 조성되지만, 그 대립들이 상쇄되어 제로섬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원한다. 결국 그의 작품은 텍스트 바깥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3. 저는 그의 영화 중 두 편만 좋게 봤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올드보이>에서 다시 한번 동태복수(같은 모양으로 되돌려지는 복수)로 인간의 욕망이 빚은 비극을 조명했을 때 놀랐습니다. 하지만 한편 아쉽기도 했어요. <복수는 나의 것>이 사회의 계급 문제를 다루어 현실감을 확보한데 비해, <올드 보이>는 신화적 캐릭터인 우진을 내세워 비극의 원형을 극대화했죠. 그러므로써 고발에는 성공했으나 반성에는 실패해버린 게 아닌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적 흡인력은 강하나 설득력은 약해졌다고 느꼈더랬죠.
 
<올드보이>가 침묵의 미덕을 모르는 현대인에게 말에 관한 고전적인 메시지를 전한 건 훌륭했어요. "모래알이나 바위덩이나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한마디건, 백마디건, 어떤 결과를 빚을지 모르는 너의 혀를 조심하라며 혀와 이빨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집요함이라니! - - 
복수는 하는 자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상대에게 가하는 형벌이기 보다 자기자신에게 가하는 체벌에 가깝습니다. 독방에 갇혀 복수를 다짐할 때 대수는 더 이상 자신이 잃을 것이 없다고 믿었으나 그건 오산이었죠.  
"네가 해야 할 질문은 왜 널 가두었느냐가 아니라, 왜 널 놔주었느냐지."라는 우진의 대사는 박찬욱이 던진 강렬한 게임의 법칙이었습니다. 

근황이 궁금해서 오랜만에 '씨네21'에 들어가 검색해봤더니, 밑을 걷는 중이신지 가장 최근 것이 2년 전 소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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