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타이틀)

2017.06.07 16:22

여은성 조회 수:905


 #.요전에 올린 일기인 최순실 글에서는 타이틀이 없는 설움에 대해 짧게 썼어요. 하지만 늘 말하듯이 모든 일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동시에 있거든요.


 아무런 타이틀 없이 상대와 만나면 나라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호감이 있긴 있는 건지 아닌지 파악이 가능해요. 건방지고 무례하지만 매력적인 여자가 상대라면 소소한 반전을 가하는 소시민적인 재미도 있고요. 물론 타이틀이 있어서 편리할 때도 분명 있겠지만 대체로 내 성미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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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어떤 자들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작가 타이틀을 써먹어 보라고 해요. 사람들에게 당신이 작가라는 걸 알리면 관계의 진전과 확장에 도움이 될 거라고요. 하지만 절대 그러지는 않아요. 그러면 그들은 알아서 좋게 해석을 내려 주죠. 


 '여은성님에겐 그게 있어! 작가 타이틀을 세속적인 목적으로 써먹지 않겠다는 고결함! 고집!'


 ...하지만 그럴 리가요. 


 왜냐면 작가라는 것...인터넷 어딘가에서 연재를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건 과녁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거거든요. 누군가는 '그게 왜 과녁이 되지?'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세요. 원래부터 늘 했던 말과 행동을 그대로 했다는 이유로 조리돌림당하는 세상이잖아요.


 

 2.게다가...언제나 쓰듯 나는 얄팍하고 재수없는 놈이라서요. 조리돌림당하는 것 이상의 일을 겪을 거란 말이죠. 직업을 잃게 될 수도 있는 거죠. 상대가 나를 백수라고 알고 있으면 도저히 건드릴 수가 없다가도, 내가 작가라는 걸 알면 어떻게든 나를 귀찮게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이미 작가라고 밝혀지거나...밝힘 당한 곳에서는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가 없는 거죠.(예를 들면 듀나게시판 같은 곳이요.) 매우 이상하게도, 나의 언행은 법적으로 고발당할 구석이 없더라도 미움을 잘 사는 편이라서요. 앞뒤 자르고 이리저리 편집해서 어딘가에 올리면 공공의 적이 될 거예요. 


 그래서 어딘가 갈 때마다 백수라고 하는 건 기만 전략이 아니라 방어 전략인 거예요. 상대가 나를 공격할 수 없도록요.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르죠. '뭐? 문제삼아지면 직업을 잃게 될 정도의 언행을 하고 다니다니!'라고요. 하지만 아니예요.


 백수 여은성이 하면 문제삼을 수 없지만 작가 여은성이 하면 문제가 된다니! 그럼 이건 내 탓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세상 탓인 거죠. 안 그런가요?



 3.반대로, 원래라면 할 수 없을 말과 행동을 자신의 입지를 무기삼아서 시도하는 녀석들도 꽤 있어요. 그런 녀석들이 반격당하는 건 자업자득이죠. 


 나야 무기로 삼을 입지나 브랜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입지로 삼을 만한 게 있어야 할 수 있는 언행이라면 처음부터 하지도 않을 걸요.



 4.휴.



 5.전에 알던 교수의 페북에서 동료 예술가의 성추행을 언급하며 '놀랐다...남자로서 젠더이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라고 하는 뭐 그런 글을 봤어요. 그리고 나무위키를 보니 아예 문화예술계 성추문 항목을 만들어서 정리해두고 있더군요. 솔직이 타이틀을 무기삼아 갑질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건 이해가 안 돼요.


 성추행범들의 욕구는 인정해요. 그들은 남자고 어떤 남자들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욕구를 드러내고 분출하는 데 그들은 너무나 많은 칩을 걸었어요. 자신의 밥줄이라고 하는 칩...그 전체를 걸어버렸단 말이죠. 나라면 겁나서 못 그럴 거예요. 그것이 갑질이든 성추행이든간에 밥그릇이나 경력을 걸고 시도한다면 너무 위험하잖아요? 애초에 그런 건 밥그릇일 뿐이니 절대적인 권력으로서 작동할 수 없기도 하고요. 흠. 하긴 제대로 된 권력이 없으니까 그거라도 써먹은 거겠죠 뭐.


 흠. 하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요. 신이 우리 인간들을 만들 때 나쁜 짓을 잔뜩 저지르고 싶도록 만들었잖아요. 그리고 인간들은 나쁜 짓이나 멍청한 짓을 하면서도 자신만은 괜찮을 거라고,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죠.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요?



 6.어렸을 때는 작가가 꿈이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인식이 달라져버려서 그런지...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그건 빛나는 직업이 아니라 그저 노동자일 뿐이라고 여기게 됐어요. 그리고 어떤 타이틀이나 기대감을 입는다는 건 내게 맞는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옷에 나를 맞춰야 하는 일이고요. 직업의식이라는 것...그건 받는 금액과는 상관없이 타이틀을 입어버린 이상 지켜야만 해요. 귀찮은 일이죠. 설령 두 시간만에 사라지는 한 달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지켜야만 하는 거예요. 그게 규칙이니 어쩔 수 없죠.


 하여간 작가든 정치가든 교수든 뭐든, 명성이나 타이틀을 걸고 나대면 언젠가는 반드시 보복당해요. 사람들은 문제삼을 수 있다고 여겨지면 문제삼기를 포기하지 않으니까요.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절대 문제삼아지지 않을 힘은 오직 하나, 구매력 뿐이죠.



 7.어제 밤에 늘 듣는 말을 또 들어서 그냥 써봤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리고 역시 다른 사람들이 왜 자꾸 자기소개를 백수라고 하냐고 궁금해해서요. 문제는, 이 세상엔 자신이 위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지만 타인을 끌어내리기 위한 노력은 얼마든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간이 워낙 많다는 거예요. 백수라고 하는 건 상대에게 심술부리거나 기만하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내 버전 중 가장 강력한 버전을 소개하는 것뿐이지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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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약간 쓰자면, 언제나 밝은 면을 찾아내는 나는 '문제삼는 pc한 사람들'을 얼마쯤은 좋아해요. 문제삼는 pc한 사람들이 세상의 억제력으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웬 작가나 기자나 교수, 평론가, 의사 같은 인간들이 설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나대는 걸 싫어하는 건 결코 아니예요. 애초에 설치고 나대고 과시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다만 밥그릇은 밥그릇이고 자의식은 자의식이잖아요. 그 둘은 확실하게 구분지어져야 한다고 여기고 있어요.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한다면 직업의식과 자의식은 절대 양립해서는 안 되는 성질이라고 확신하거든요.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인 밥그릇과 에고 둘 다를 동시에 챙기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아요. 나대고 싶으면 비용을 치르면서 나대야죠. 공짜로 나대려는 인간들은 끌어내려지는 게 옳아요. 

 나는 나대기 위해 타이틀까지 숨겨가며 살고 있는데 자신의 밥그릇을 자신의 타이틀로 내세우고 살면서 에고까지 챙기려는 인간들이 늘 짜증났어요. 요즘은 그들이 말이나 행동을 실수할 때마다 일침을 놔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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