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대화...1(홍대입구)

2017.08.26 20:39

여은성 조회 수:742


 1.요전 어느날 친구와 식사라도 할까 하고 연락을 해봤어요. 친구는 홍대입구에서 보자고 했어요. 주말에 홍대라니?! 지금 나를 테스트하는 중인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주말의 홍대는 복마전이잖아요! 사.람.이. 우.글.거.린.다.고.요.


 알고 보니 홍대에서 소설쓰기 모임이 있다나 봐요! 친구는 요즘 진지하게 글을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친 몸을 이끌고 홍대입구에 갔어요. 원래 목적은 해장을 하기 위해 부른 거였는데 소설쓰기 모임이 끝나고 저녁에 보자고 해서 해장은 혼자 했어요.



 2.저녁에 친구를 만났어요. 친구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모임원들끼리의 소설 강평에서 별로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네요?! 모임원들이 친구의 소설을 보고 별로 트렌디하지 않다고 했대요. 흠...개인적으로 그런 평은 이해가 안 됐어요. 글의 방향성은 작가의 개성이잖아요? 소설 모임의 강평이라면 보통 장르적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문장의 퀄리티가 괜찮은지 같은 걸 지적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어떤 장르에 손을 대느냐...어떤 테이스트를 가미하느냐에 대해서까지 지적하는 건 좀 이상했어요. 그래서 말했어요.


 '그런 건 신경쓰지 마. 그건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문제삼는 거나 같잖아? 어차피 너는 너 자신을 바꿀 수 없어.'


 

 3.전에 썼듯이 가끔 사람들이 연애 상담을 해 와요. 그리고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죠. 다른 놈들의 연애 훈수에 귀기울이지 말라는 말. 그저 네가 될 수 있는 더 나은 네가 되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말이요.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그야 작가들 중엔 '기술자'타입도 있어요. 마치 공장에서 기성품을 찍어내듯, 적절한 요소를 배합하고 적절한 품질 관리를 거쳐 적절한 이야기 상품을 만들어 돈과 바꾸는 사람들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그렇거든요. 온전한 자신의 글이 자신이 쓸 수 있는 글 중에서 가장 좋은 글인 거예요. 그래서 작가들에게도 결국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예요. 누군가가 네 글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해도 무시하라고요. 더 노력해서 네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너를 보여주라고요.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4.휴.



 5.친구는 미니언즈 티셔츠를 입고 홍대를 걸어다니고 있었어요. 요즘 운동을 해서 몸매도 멋있어졌는데 말이죠. 그래서 친구에게 늘 하는 말을 또 했어요. '너에게 부족한 오직 한가지. 그것은 자신감!' 이라는 말 말이죠. 그러자 친구는 자신감이 별로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말해줬어요. '자신감이 없어질 때마다 네가 누구인지 상기하라고.' 말이죠. 친구가 '내가 누군데?'라고 되물어서 정확하게 대답해 줬어요. 


 '네가 누구냐고? 17억원짜리 건물쯤은 대출 없이 일시불로 사는 사람이지. 그게 네가 알아야 하는 너인 거야.'


 친구는 그런 것들에 의해 자신감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했어요. 잘 이해가 안 갔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상은, 세상이 생각하는 내가 중요한 거죠. 내가 생각해낸 내가 마음에 들어봤자 그건 자기만족일 뿐이거든요. 자기만족은 곧 거짓말이고요. 그래서 말했어요.


 '최고의 네가 되는 것도 좋지만 가장 강한 버전의 너를 절대로 잊지 마. 네가 널 어떻게 여기든, 세상은 그 버전의 너를 가장 강하다고 여기고 있어.'


 말은 했지만 어쨌든...그럼 어떤 것이 네게 자신감을 생기게 해 주냐고 물었어요. 친구는 '그야 업적이지.'라고 대답했어요. '업적이라. 그러니까 타이틀을 말하는 거군.'이라고 하자 친구는 그렇다고 했어요.



 6.그래서 말해 봤어요.


 '이봐, 타이틀 따윈 귀찮을 뿐이야. 그냥 부자인 네가 여자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소문이 나면? 입증할 수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네가 역으로 털어버릴 수 있지. 그러나 네가 멘토 타이틀이나 작가 타이틀을 가지고 여자를 성추행했다는 소문이 나면 넌 한순간에 날아간다고. 웬 듣도 보도 못한, 가진 건 입뿐인 놈들이 지나가며 네게 한번씩 지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란 말야. 타이틀은 너를 강하게만 만들어 주는 건 아니야. 부자유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어.'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어요. '왜 여자를 성추행해야 하지? 나는 여자를 성추행하지 않을 거네.'


 이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어요. 성추행 말고도 이 세상의 많은 문제거리들이 내가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도 누군가가 그렇게 연출하려고 작정하면 세상에 내가 나쁜 놈인 것처럼 보이도록, 들리도록 만들 수 있거든요. 특히 작가같은 귀찮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요. 이것만은 말로 설명해봐야 무의미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어요. 



 7.식사를 마치고 어떤 바에 갔어요. 딜러와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바였는데 그 바는 입장료를 인당 15000원씩 받는다고 했어요. 친구는 검소하기 때문에 그런 곳엔 안 가죠. 그래서 뒤돌아 나와 커피숖을 갔어요.


 커피숖에는 모모 소설책이 있었어요. 내가 모모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친구에게 말했어요. 네가 안 보고 무시하고 있는 것들, 왕좌의 게임이나 브레이킹 배드 같은 이름난 것들은 다 봐야 한다고요. 친구가 다른 창작물에 관심이 없어도 친구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독자들은 그런 걸 봤으니까요. 작가라면 앞으로 상대해야 할 독자들이 어떤 수준에 이르러 있는지 알아야죠.


 내 경우는 그래요. 무언가를 배우거나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긴장하기 위해서'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을 봐요. 왜냐면,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쓰면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 중에 중~중하급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게 되거든요. 그러나 나를 긴장시킬 정도로 잘 만든 것들을 보면? 내가 만들 수 없던 좋은 걸 만들 수 있게 되지는 않지만 내가 만들 수 있는 것들 중에선 좋은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긴장상태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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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느낌표가 많은 글이네요. 이 글을 올린 건...조금 전에 친구와 나눈 대화가 인상깊어서예요.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했거든요. 소재 선정의 중요성에 대한 의견을 말했어요.


 '글쓰기에서 소재를 선정하는 건 산 위에 올라가는 것과 같아. 왜냐면 산 위에서 눈을 굴리면, 그 눈은 잘 굴러갈 수밖에 없거든.'


 친구와 나눈 대화를 좀더 쓰려다가...아무래도 토요일에 직접 불을 질러야 할 것 같아서 다음에 써야겠어요. 왜냐면 금요일이든 토요일이든 불을 지르기 전까지는 그건 그냥 금요일이거나 토요일이잖아요? 불금이나 불토가 아니라. 


 그리고 이 시간까지 아무도 토요일을 불토로 만들어 주려고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젠 직접 나설 수밖에요. 출격하면서 어벤져스2 쿠키에서 타노스가 한 말을 따라해야겠어요. 


 'Fine! I'll do it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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